3:1-5, "질문에 답변하시는 예수님"


코로나 19 이후 우리의 세계는 이전의 세계와 분명한 경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익숙했던 것들이 소용없게 되거나 새로운 방법으로 진행이 되어져야 하는 시기를 살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오랜 시간 동안 변함없는 틀을 유지했던 학교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확산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모이지를 못하게 되었고, 방학이 오래 이어지고, 개학을 한다고 해도 불안한 요소들이 많아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가운데 온라인 수업이 대안으로 나오면서 여러 시도들이 있지만, 아직은 그 효과가 충분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지난주 저희 교회 중고등부 학생들도 온라인 학습에 대해서 만족도가 그렇게 높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대학입시와 관련해서도 각 대학들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많은 등록금을 내고 다니는 학생들이 온라인 수업에 대한 만족도가 줄어들자, 등록금 반환 소송을 준비한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있습니다. 대학 교수들과도 통화를 해 보았는데, 온라인 시스템으로 바꾸고, 코로나 19로 인한 대처에 급급하지, 코로나 19 이후의 장기적인 교육적 대안을 가질 마음의 여유가 없어 보였습니다.

반면에 인터넷과 SNS에서는 코로나 19’에 대한 여러 전문가들의 전망과 대안들이 이야기가 되어지고, 이를 위한 새로운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고 있는데, 이를 지금의 우리의 상황과 적절하게 잘 조정하고, 적용하고, 발전시키는 데에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이 되어집니다. 또한 많은 교육기관의 중요성은 높아지지만, 코로나 19 이후의 변화를 다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 개개인들도 코로나 19 이후의 삶에 대한 질문들이 많습니다.

내가 일하는 곳이 코로나 19 이후에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사는 곳, 우리가 다니는 곳, 우리가 먹는 것 등에 대해서 우리 삶의 곳곳에 많은 질문들이 있습니다. 뉴스를 통해 수 많은 질문들이 나옵니다. 최근에는 이태원 확진자 관련 질문들이 엄청 나왔습니다. 돌아보면 우리의 삶은 질문들로 가득 찬 삶을 살고 있습니다.

 

성경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서도 한 사람의 질문이 시작이 됩니다. 바로 니고데모라는 사람의 질문이 시작이 됩니다. 본문에 의하면 그는 바리새인이며, 유대인의 관원입니다. 공적인 자리에서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 왔다고 합니다. 여러 해석들이 있습니다. 공직에 있기에 업무 후에 찾아 왔을 수도 있고, 당시 예수님에 대해서 날카롭고 비판적인 시선을 가진 바리새인들이 많아서 공적인 관원인 그가 예수님께 뭔가를 물으러 온다는 그 자체가 바리새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어서,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 밤에 왔다는 해석도 있고, 또 다른 한편은 정말 진지하게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 싶어서 그렇게 왔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요한복음 3을 통해 보여 주는 모습은 정말 진지하게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처럼 니고데모의 시절이나,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동일한 여러 질문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한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고, ‘인생의 참된 목적과 의미있는 삶을 위해서 질문을 하는 삶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본 작가 중에 한 사람인 사이토 다카시질문의 힘이라는 책에서는 보통 사람들은 질문에 답을 잘 하는 사람이 똑똑한 사람인 줄 알고 있는데, 자신이 관찰한 바에 의하면 더 똑똑하고, 탁월한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그들은 답보다는 질문을 잘 하는 사람들이다.라고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예화)제가 아는 선교사님 가운데 00 선교사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은 싱가폴 한인교회의 담임목사님이십니다. 해외한인교회로서 3,000명 이상이 출석하는 교회의 담임목사로서, 그리고 몇 백억에 달하는 교회건축을 잘 감당하시고, 목회를 잘 하셨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에게는 독특한 이력이 있습니다. 장신대에서 공부를 하시고, 목사 안수를 받고, 일반 대학원에 진학을 하셨는데, 동국대학교 대학원에 등록을 하고 불교학을 공부했습니다. 목사인데 불교학을 전공했습니다. 공부할 때 이야기를 들어보니 불교 모임도 많이 가고, 스님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학교를 다니면서도 불교학생회 모임도 빠지지 않고 가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모두가 목사인 것을 알고 있지만, 그를 비하하거나 거리감을 두지 않고, 불교신자들이 오히려 목사로서 더욱 자신을 존경한다는 것을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화려하게 주목을 받는 대형 한인교회의 목회 현장을 내려놓고 이란에 선교사로 파송이 되어서 대학에서 이슬람에 대한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계십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에게 전도하러 가거나, 개종을 시키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참된 구원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을 알기 위해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분명하게 알고자 이슬람의 중심에 들어가서 그들과 지내고 공부를 한다고 합니다.

저는 이 선교사님이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존경스럽습니다. 참 진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다른 종교의 사람들의 틈 속에 들어가 그들과 진지한 질문들을 통해, 참 진리되신 그리스도를 나누는 삶을 보면서 정말 귀한 선교사님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상합니다. 날마다 문제를 일으키는 것 같고, 입을 열면 당황스러운 이야기를 하는 이 30대의 젊은이인 예수때문에 계속 골치가 아팠던 바리새인들이 많았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나!, 기적을 일으키거나, 아픈 자들을 치료해 주는 역사를 보면서 정말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행하는 예수를 보면서, 기존에 자신들이 정해 놓은 답과는 전혀 다른 삶을 보여 주는 예수로 말미암아 적지 않게 당황도 하고, 놀라기도 한 상태인데, 그러한 공백을 깨고 니고데모는 진지하게 예수님께 질문을 하러 나아옵니다. 이런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3:2에는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라고 묻습니다.

3:4에는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 3:9에는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라고 하면서 계속적으로 예수님께 진지한 질문을 하게 됩니다.

 

적용) 저는 이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질문들을 하고 살아야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먹고 사는 일에 대한 질문, 우리의 필요를 위한 질문이 아니라, ‘우리 인생에 있어서 삶의 목적과 이유에 대한 진지한 질문들을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질문) 우리 인생이 이 세상에 사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우리의 인생을 헛되지 않고 의미 있게 살 수 있습니까?

우리가 가진 재능과 달란트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까?

코로나 19 이후의 시대에 하나님께서 저와 우리 가정과 우리 교회에 대한 생각은 무엇입니까?

주님 제가 앞으로 왜, 무엇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를 진지하게 물어야 되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질문의 시간이 없이 우리의 삶을 산다면,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삶의 방향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거나, 반대로 갈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분명하게 하나님께 질문을 해야 합니다. 이 하나님께 질문을 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요구하는 주문서가 아닙니다. 진지하게 나의 삶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그 질문에 답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의 모든 질문에 가장 분명하고, 바른 대답을 하셨듯이 항상 우리의 질문에 가장 분명한 답을 가지고 답변을 해 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코로나 19의 위기 가운데 세상 사람들의 수 많은 질문들과 같이 먹고 사는 것에 대한 질문도 중요하지만, 이 위기의 시기에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우리는 분명하게 주님께 구해야 할 것입니다.

 

예화) 초기 로마시대에도 오늘날 코로나 19와 같은 팬데믹이 있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AD 165년에 안토니우스 황제 때 로마의 군인들이 전쟁 후에 전염병을 가지고 로마로 돌아와서 퍼트린 것을 계기로 500만 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AD 260년경 두 번째 큰 역병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기독교인들은 몸을 사리지 않고 아픈 자를 도맡아 필요를 공급하고 섬겼습니다. 그러다 병이 옮으면 그 아픔을 자신에게로 끌어와 기꺼이 고통을 감내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다른 이를 간호하고 치유하다 사망을 자신에게로 옮겨와 대신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 중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반면 이교도들은 질병이 처음 발생했을 때 아픈 자들을 내쫓았고 가장 가까운 자부터 도망쳤으며, 병자가 죽기도 전에 내다버리고 매장하지 않은 시신을 흙처럼 취급했다고 합니다.

재앙이 찾아왔을 당시, 이교도와 철학자들은 무기력했습니다. 그 어떤 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죽음을 불러오는 전염병이 제국에 창궐했을 당시, 철학자들은 애매한 소리를 주절거릴 뿐이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분명한 신앙으로 을 제시했습니다. 다른 모든 신앙들이 의구심의 대상이 됐을 때 기독교는 설명과 위안을 선사했고, ‘행동을 위한 처방까지 제공했습니다.

충격에 휩싸인 생존자들은 실종된 친족과 친지를 위한 천국이 존재한다는 비전에서 따뜻하고 즉각적인 치유와 위로를 얻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역경, 질병, 폭력적 죽음이 일상을 지배하는 고난의 시기에 안성맞춤인 사상과 감정의 체계다(카르타고 주교 키프리안).”라고 사람들은 위기의 시대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겨나가는 그리스도인들을 보면서 시대적 답변을 얻었습니다.

이 큰 두 번의 팬데믹을 경험한 고대 고마제국은 이교도들이 대부분 사라지고, 그 역할이 상실이 되어지고, 위기의 시대에 적절한 행동을 했던 용기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기독교만이 참된 종교로 인정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되어집니다.

 

(예화 적용) 오늘날 코로나 19의 위기의 시대 수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답을 찾는 이 시기를 이기기 위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니고데모와 같이 주 앞에 나아와서 용기를 내고 삶의 문제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하고, 그 답을 주님을 통해서 발견해야 합니다. 진정한 답이 없는 이 시기에 사람들은 그저 먹고 살기 위한 답변을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분명한 답변을 보여 주어야 할 때입니다.

 

(선교예화) 우리 대한민국 주위에도 힘든 사람들이 많지만 국경을 넘어서면 정말 어려운 사람들이 너무나도 넘치고 있습니다. 지난 4월부터 15차례 화상회의를 하면서 전세계 선교사님들로부터 현장 소식을 들었는데, 손을 씻을 물이 아니라 마실 물이 없는 지역들, 특히 식량의 위기로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서 선교사들이 가진 것을 나누며 도울 때, 지역 주민들이 얼마나 감사해 하는지, 그런 위기 속에서 그들과 함께 고통을 받는 것이 오히려 감사하다는 선교사들의 보고를 듣습니다. 인도에서는 식량구호사업을 시작한 선교사에게는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통행증을 만들어 주면서 도와 달라고 하고, 선교사들이 현지인들과 같이 마스크를 만들어서 제공하면서 이웃들에게 큰 힘이 되어서 코로나 19 시대로 어려워졌지만, 오히려 많은 선교사들이 선교의 기회가 더 많이 열렸다는 보고를 받고 있습니다.

지금 러시아도 미국에 이어서 26 만 명이라는 확진자 증가로 세계 2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위기의 시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질문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우리 주님으로부터 답변을 받아야 할 때입니다.

 

그러기에 이 위기의 시기에 이제 우리는 더욱 주님 앞에 나아가서 질문을 하고 답변을 구하는 기도의 시간을 더욱 많이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수 없이 많은 위기에 분명한 답변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도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하신 그 분명한 말씀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위기의 시대이기에 더욱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기도의 자리를 지키면서, 우리 시대의 위기를 이겨낼 수 있는 하나님의 답변을 기다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니고데모는 밤의 한적한 시간을 통해 참된 답변을 구하러 나와서 주님으로부터 분명한 답을 가지고 갔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답을 아는 인생답을 모르는 인생으로 사는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2. 오늘은 스승의 주일입니다.

코로나 19 이후에 일어날 많은 변화 가운데 가장 많은 변화의 중심이 될 교육현장의 변화로 인해, 많은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수 많은 온라인 교육 플랫폼이 생기게 될 것이고, 수 많은 지식들이 오고가게 될 것이라고 미래학자들은 이야기를 하지만,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는 참다운 스승에 대한 갈급함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매뉴얼로 도움은 받지만, 매뉴얼이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제대로 된 가르침을 받아야 제대로 된 삶을 살게 됩니다.

코로나 19의 위기가 있지만,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좋은 스승, 지도자를 만나는 것은 앞으로도 중요한 삶의 변수가 될 것이고, 우리의 인생을 의미있고, 제대로 살게 하는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오늘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잘 만나게 되었습니다.

니고데모가 가진 바리새인의 편견, 유대인의 속 좁은 마음을 벗어던지지 못했다면, 예수님을 만나서 인생의 참된 답변을 얻지 못하고 살 뻔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제대로 만났기에 그는 예수님을 통해 얻은 답변으로 삶을 바꾸었습니다.

요한복은 19:39-40을 보면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최측근 제자들도 못했던 예수님의 장례를 니고데모가 감당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요한복음 3장에서의 예수님과의 만남 이후의 니고데모의 삶을 예측할 수 있는 본문이 오늘 요한복음 19장에 나옵니다.

 

오늘 그러기에 우리도 우리 인생에 분명한 답변을 주시는 예수님을 잘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아직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잘 만나도록 우리가 그들에게 예수님을 잘 알려야 합니다.

(적용) 코로나 19 이후 많은 사람들이 교회 걱정을 많이 합니다. 바이러스 확산 염려로 교회에 사람들이 잘 모이지 않을 것이라고 하고, ‘온라인 예배를 경험한 젊은층들이 잘 모이지를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경제의 위기와 이어지는 생계의 위기와 취업과 수 없이 문을 닫는 많은 사람들의 어려움으로 인해, 그들이 정말 갈급해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삶에 대한 진정한 답변을 찾기를 힘쓸 것입니다. 찾기 어려운 참된 해결책과 답변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도 초대 로마제국 시대의 기독교 교우들과 같이 제대로 된 삶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하나님으로부터 참된 답변을 듣고, 그 분명한 확신과 소망으로 이 위기의 시대를 기쁘게 살아가고 있다는 분명한 삶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적용) 오늘 우리 주위에 코로나 19로 인해 당하는 인생의 어려움을 풀기 위해 수 없이 많은 질문을 하는 니고데모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예수님이 우리의 참된 답변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우리의 삶으로, 복음전도로 더욱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려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져야 하는 분명한 사명입니다. 우리의 삶의 많은 질문도 우리 주님이 반드시 하나 하나 답변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먼저 니고데모가 되어 주님 앞에 용기를 내어 나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의 니고데모들을 참된 답변을 주시는 예수님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참되고, 진정한 스승이심을 우리가 확실하고 분명하게 보여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분명하게 역사하는 삶을 경험하는 코로나 19의 위기속에 승리하는 주님의 제자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