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620일 에스겔 13:1-4,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우리는 이번 코로나로 인해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제 막내가 지난주 목요일 고등학교 졸업식을 했는데, 코로나 이전의 졸업식과 다르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후배들 앞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들과 선생님들과만 조촐하게 졸업식이 진행이 되었습니다. 이제 대학교 입학을 해야 되는데, 학교를 갈 수 있을지 아니면 온라인 수업을 해야 될지 모르는 불확실성에 살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신앙인들에게 제일 힘든 것은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어려워졌습니다. ‘예배보다 더 우선시 되는 것이 안전이 되다보니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우리의 믿음 생활이 점차 움추려 듭니다. 괜히 모였다가 무슨 낭패를 당하게 될까봐 조심스러워집니다.그런데 이러한 흐름이 장기적으로 지속이 되면, 우리도 모르게 모이지 않는 것이 굳어지면서 우리의 신앙이 약해질 것이 염려가 됩니다.

 

사실 기독교의 신앙은 박해를 하고 핍박을 하면, 더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보고, 찬송하면서 더 부흥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도 모르게 세상과 타협을 하든지, 하나씩 하나씩 우리의 삶에서 제한된 삶이 되면,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도 모르게 주님을 떠나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정말 더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 가운데 이슬람이 가졌던 기독교를 역사속에서 사라지게 했던 방법들을 통해서 교훈을 얻을 수가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코로나 시대를 살게 된 우리가 기억해야 될 몇 가지 중심 주제가 있습니다.

 

1. 우리 세계기독교 역사에서 유럽 기독교인들에게는 중국에서 시작된 종교인 유교와 도교, 인도에서 진행된 불교는 큰 위협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이슬람은 기독교와 엄청난 갈등과 대립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지리적, 교리나 종교 행태 면에서도 기독교와 흡사한 요소가 많으며, 적극적인 선교를 강조하는 공격적인 포교 방식에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2. 이슬람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생겨났는데, 사우디아라비아의 변방에 거주하던 자들이 파죽지세로 영토 확장했는데, 공교롭게도 초기 정복 지역의 대부분이 기독교 초기 선교역사에 매우 중요한 지역들이였습니다. 초기 기독교 선교의 확장 지역보다 이슬람 선교의 지역이 더 넓게 확장되었습니다.

기독교는 이전에 타종교와 접했을 때, 한 번도 땅을 빼앗긴 적이 없었는데, 이슬람이 그 역사를 바꾸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다메섹(바울의 회심장소, 635년 이슬람에 정복됨), 시리아 안디옥(636), 예루살렘(638), 가이사라(640), 아프리카 북부 알렉산드리아(642),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698), 지브롤터 해협 근방 이베리아 반도인 스페인과 포루투갈(711)을 이슬람이 정복했습니다. (포루투갈, 스페인은 700년 이상 이슬람에 정복되었다가 회복됨.)

초대교회의 5대 관구(로마, 시리야,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틴노플) 가운데 3개가 정복됨. 로마와 콘스탄티노플만 살아남으나, 콘스탄티노플도 후에는 점령당합니다.

 

3.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슬람의 초기 정복과정은 칼과 무력, 정복 후에는 그 지역에는 다양한 형태의 제약과 차별 정책을 통해 기독교인들을 점진적으로 이슬람화 시켜 나갑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딮미(이슬람 치하에 사는 타종교인들)들 가운데 특히 기독교인들에게는 과도한 세금을 부과, 고위직책에 오를 수 없고 한직으로 제한했습니다.

외출시 무슬림과 차별되는 복장(주황색)과 신발을 신도록 정했습니다.

법적으로 증인의 효력이 없음,

외출시 말을 탈 수 없고, 칼을 지닐 수 없고, 무슬림을 피해서 다녀야 함, 무슬림들에게 자리 양보

수 많은 교회를 파괴하고, 잘 지어진 교회를 이슬람교 기도처소로 바꾸고, 이슬람 치하에서는 교회 신축 금지, 교회의 수리도 절대금지, 증축과 개축 금지,

교회의 타종 금지, 기도나 예배 시 밖으로 소리가 흘러나오면 안 됨, 십자가를 모두 제거함,

적을 숨겨주면 처형, 기독교인의 집은 항상 대문을 열어 놓고 자야 함(심리적 불안감의 극대화),

무슬림이 요청하면 기독교인은 3일 동안 머물도록 제공해야 한다. 기독교인의 집은 항상 낮은 곳에 지어야 한다.

언제라도 이슬람으로 개종 가능, 기독교인의 선교는 처형, 무슬림과의 결혼은 금지. 15세기에는 오스만 제국 시대 예니체리라는 전투의 선봉대에 기독교인의 자녀를 강제 징집. 육체 노동과 강제 노동과 이슬람 교육을 시킴. 기독교인의 신앙이 다음세대로 계승되지 못하게 막음.

이러한 이슬람의 기독교 해체 전략으로 기독교 지역들은 대부분 300년을 못 버티고, 이슬람 치하의 모든 교회들이 다 사라졌습니다. 초기에는 많은 교인들이 이슬람 지역을 떠났으나, 점점 기독교인들은 이슬람과 결탁해야 살 수 있다는 계산을 하면서 이슬람과 타협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기독교는 자연스럽게 사라졌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얼마나 버텼겠습니까?

 

특히 영적으로 견고하게 서지 못한 아프리카 교회(현지어로 된 모국어 성경의 부재- 당시에는 불가타라는 라틴어 성경만 사용), 북아프리카 지역은 여러 소모적인 신앙논쟁과 이단 논쟁들로 교회가 분열되어 있었는데, 이를 통해서 얻게 되는 교훈은 교회는 외부적 핍박에는 강하나, 내부적으로 스스로 나태해지면 무너진다는 것을 배웁니다.

 

4. 그런데 이러한 이슬람의 핍박 가운데 지금도 신앙을 지킨 교회들이 있습니다. 이집트의 콥틱교회 시리아 교회는 1,500여 년 간 이 핍박을 이겨냅니다. 이 지역의 특징은 자신들의 모국어로 된 성경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집트는 콥틱어 성경, 시리아는 페슈타 성경이 있었는데, 결국 그 어려운 핍박과 박해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핍박을 이기게 합니다.

 

5. 오늘 우리가 읽은 에스겔 13장에는 거짓 예언자들에 대한 비난과 저주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거짓 예언자들은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자들로, 이스라엘 전체의 신앙을 뒤로 물러나게 하는 사람들이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하나님의 예언의 영이 전달이 되었다고 자랑하면서 하나님이 진짜로 보내신 선지자들의 예언을 멸시하였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미래가 없는 시대를 살았고, 거짓 예언자들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 했던 바램인 이스라엘로의 귀환을 미끼로 삼아서 인기를 얻기 위한 예언들을 남발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거짓 선지자들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십니다.

에스겔 13:1,2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의 예언하는 선지자들에게 경고하여 예언하되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 문장은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자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저 느끼는 대로, 자신에게 유리한대로,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자기 살기 위해서, 정확한 말을 하지 않고, 진리가 아닌 것을 이야기 한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13:3을 보면 반복해서 그들에 대해서 표현합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어리석은 선지자라고 합니다. ‘본 것이 없이라는 말에 우리가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전하기 위해서 그 내용을 분명하게 보여 주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계시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계시는 추측과 다릅니다. 추측은 말 그대로 분명하지 않습니다. 예측에 지납니다. 반면 계시추측과 다릅니다.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퀴즈를 하나 낼 텐데, 제 지갑에 돈이 얼마가 있는지 정확하게 맞추시는 분께는 제가 제 돈을 다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틀리시면 부르신 액수만큼 제게 주셔야 합니다. 자 누가 시작해 보시겠습니까? .........

용기를 내서 말씀해 주세요. 잘 맞추면 코로나 기간 한 주 정도는 돈 걱정 없이 살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것 저것을 생각할 것입니다. 목사님이 현금보다는 한국에서는 카드를 많이 사용하니까, 현금은 별로 없을거야....아니야 그래도 기본적으로 들고 다니는 현금이 얼마는 있지 않겠어....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추측입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제 지갑을 열어서 얼마가 있다고 보여 줄 때 제일 정확합니다. 이것이 바로 계시입니다. 계시의 한자는 열다라는 와 보일 를 씁니다. 말 그대로 열어서 보여주다가 계시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이처럼 분명하게 하나님의 뜻을 선지자들에게 열어서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추측이나 예견이 아니라 정확하고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 포로시기, 오늘 에스겔서에서는 거짓선지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본 것이 없이 그저 자기 생각이나 느낌대로 전하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이야기 하고 다닌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에스겔 13:4에 보면 그런 그들을 향해서 황무지에 있는 여우 같으니라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우는 육식 동물로 이스라엘에서는 스스로 굴을 파서 지내거나 다른 동물의 집을 약탈해서 혼자 사는 동물로 알려 졌습니다. 오늘 에스겔서의 한글 번역본은 여우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영어 성경에는 자칼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어로는 슈알이라고도 하는데 이 슈알은 때로는 여우, 혹은 자칼로 통용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우는 주로 사냥을 해서 먹습니다. 반면 자칼은 사냥을 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 죽은 시체를 주로 먹습니다. 오늘 한글 본문에서는 이 자칼이라는 동물이 우리나라 땅에 살지 않기에 여우로 빗대어 표현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만약 영어 번역대로라면, 당시의 거짓 선지자들은 사냥하는 수고도 없이, 남이 먹다가 남은 죽은 시체를 먹는, 게으르고 악한 존재로 빗대어 표현한 것 일수도 있습니다.

 

6. 에스겔 선지자의 경우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정말 어렵게 받았습니다.

2:6,7을 보면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있으며 전갈 가운데에 거주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말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하지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4:4-7을 보면 이스라엘의 죄를 위해 390일을 좌편으로 누웠고, 유다의 죄를 위해 40일을 우편으로 누워있어야 했습니다. 밧줄에 묶이는 상징적인 행동을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기도 했고, 때로는 물과 음식도 제한되었습니다. 하루에 0.61리터, 우리가 보통 들고 다니는 500ml 생수 한 병 정도인데, 무더운 중동 더위에서 이것으로 하루를 버티기는 어렵습니다. 이처럼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면서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정 경험하면서 예언을 하는데, 거짓 예언자들은 남이 사냥해 놓은 쉬운 죽은 고기를 먹는 것처럼, 그 어떤 어려움 없이, 자기가 생각나는 대로, 쉽게 쉽게 전하니, 그들을 황무지에 사는 자칼과 같다고 영어 성경에서는 번역을 한 것입니다.

 

7. 반면 오늘 본문에서는 겔 13:1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3:2에는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13:3에는 주 여호와의 말씀에라는 내용으로 분명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라는 것이 전달이 되어집니다.

 

적용) 저는 이 짧은 4구절의 말씀이지만, 이 말씀속에 우리가 코로나 19를 이길 말씀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지금 코로나 19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이후의 시대를 예측을 합니다. 온라인이 강화 될 것이다. 배달 사업이 더 발달하고, 온라인 교육이나, 디지털 시대의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다. 미국과 중국 중심의 국제 질서가 사라지고, 세계 네트워크보다는 자국내에서 모든 것을 자생하는 시스템이 늘어 날 것이다. 특히 이를 위해 중앙정부의 역할이 그 어느때보다도 커질 것이다.’ 라는 다양한 분석과 전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눈만 뜨고 나면, 경제학자들, 의학전문가들, 교육 전문가들, 각 회사의 CEO들이나 여러 전문인들이 코로나 19 이후의 시대를 예견합니다.

저도 그런 분석 자료를 100페이지 정도 요약을 하고, 자료를 모아 보았는데, 모든 전문가들의 말에는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코로나 19 이후의 시대를 예측해야 되지만 불확실성속에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라는 표현들이 들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모두가 예측이고, 추축이지, 분명하지는 않다는 것을 기본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그렇게 이야기 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코로나 19 이전에 이런 예측을 한 사람들이 드물었습니다. 일부가 앞으로 오게 될 바이러스 재앙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지만, 지금 전세계가 코로나 백신, 치료약을 누구도 자신있게 준비를 하지 못했다, 어느 누구도 코로나 19 이후를 제대로 이야기 하고 예측한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8. 또 하나는 사람들은 내용이 빈약하고 부실하니까, 이 내용을 전하는 도구를 발전시킵니다. 코로나 19 시대에 가장 각광을 받은 것은 줌(ZOOM) 화상회의 시스템입니다. 이것이 발전되니, 경쟁사마다 비슷한 프로그램이 나옵니다. Meetings, TeamViewer, Hangouts, 라이브톡톡, 리모트미팅, 콜라보X 등이 나왔고, 웹과 세미나를 합쳐서 웨비나가 유행이고, 영국에서는 티오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처럼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나 대신 아바타가 계속해서 회의에 참여하고, 수업에 참여하는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아마 영화에서 보면 홀로그램이 나와서 가상공간에서 같이 대화하고, 이야기 하는 방식도 개발이 될 것입니다.

 

9. 저는 이렇게 정확하지 않은 미래, 그래서 내용보다는 외형에 신경을 써야 하는 인간의 한계속에 진정한 내용과 답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가운데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속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겔 13:2에 나온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입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라는 이 말씀의 앞, 뒤 좌우를 살피니,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면서부터, 그리고 많은 구약의 사건과 역사적 상황속에서, 신약성경의 곳곳에도 분명하고 정확한 흐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성경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이 중요한 말씀이, 우리 인간 삶의 정답이였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가 이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은 항상 답을 주셨고, 성경에서 보여 준 하나님의 해결 방법은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삶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변함없이 이야기를 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 우리가 코로나 19 이후를 위한 수 많은 세미나도 있고, 세미나 방식을 위한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의 수 많은 것들이 존재를 해도, 그것은 우리의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우리를 해결해 주는 진정한 힘은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라고 하신 이 분명한 가르침입니다.

 

초반에 설명해 드린 이슬람의 긴 박해 속에서 살아남은 이집트의 콥틱교회와 시리아 정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자국어로 된 말씀이 있었습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주의 뜻을 구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이기는 힘을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런 시간에 집중해야 할 것은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자칼 같이 시체들 속에서 썩어진 음식을 아무 수고 없이 먹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먹기 위한 수고와 노력에 힘 써야 할 것입니다. 자기 생각과 자기 느낌이 이 코로나 19의 시대를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위기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우리가 이를 위해 힘써야 합니다.

 

코로나19의 위기가 장기화 된다고 하는데, 이슬람의 기독교를 막기 위해 세운 전략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퍼지면서 100, 200년 뒤에는 붕괴가 되었습니다.

 

지금 어른들은 그래도 신앙생활을 하던 흐름이 있어서, 그래도 버티지만, 이 다음세대는 속수무책입니다. 이슬람 전략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흐지부지해지고,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면서 자연스럽게 붕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대로 밀려나가면 우리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10. ) 인도에 있던 우리 교회의 찬양대 이름을 짓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이름을 짓는데 잘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적합한 이름이 나오지 않아서 거의 2이나 걸렸습니다. 마침 서울대학교 성악과 합창단 팀들이 방문을 해서 같이 공연을 했는데, 각 교회에서 찬양대에서 솔리스트나 지휘자로 섬기니까, 적절한 이름을 하나 지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많은 이름들이 나왔는데, 한 친구가 더드림 찬양대라는 이름을 이야기 했는데, 한글로는 더 드린다이고, 영어로는 그 꿈(The Dream)이라고 하면서 의미를 붙여 주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인도에서는 마음껏 찬양을 부르기 어려웠습니다. 악보 구하기도 힘들었고, 찬양을 제대로 할 악기도 없고, 찬양 사역자는 거의 드물었습니다. 너무 열악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뒤로 물러나지 말고, 하나님께 더 드리자,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라고 마음을 먹고, 이름을 더드림 찬양대라고 지었고, 교회 전체적으로 이런 분위기를 이어갔습니다.

찬양집도 없고, 시스템이 부족하니까 옛날에 드리던 대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유투브나 여러 자료들을 보고, 더 많은 새로운 찬양을 불렀고, 음악을 제대로 가르쳐 줄 선생님이 없으니까, 오히려 유투브나 공연 영상을 보면서 그대로 따라 했습니다. 한국에 잠깐씩 나오면 찬양집회들 방문하고, 인도에서도 기회 되는대로 찬양팀 훈련도 하고, 더 많은 일들을 해 나갔습니다. 오히려 많은 찬양 인도자들이 나왔고, 더 많은 새로운 찬양으로 더 많은 예배를 드렸습니다.

 

히브리서 10:38,39을 보면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라고 했습니다.

 

11. ) 지난주 방송국에서 비긴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이 다시 시작이 되었습니다. 원래 이 프로그램은 유명한 한국의 가수가 자신들을 아예 모르는 외국에 가서 오직 음악성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거리 공연을 하는 프로그램인데, 지난주에 보니 코로나19로 외국에 가지 못하고, 한국에서 진행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 않아야 되기에 상암 경기장 주차장에서 차 안에서 공연자들을 보는 콘서트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공연자가 열심히 공연하면 차에서 듣고, 공연이 끝나면, 차의 헤트라이트를 비치거나, 클락션으로 박수를 대신하였습니다. 사람들의 표정과 공연자들의 표정에는 이전과 다르지만, 더 귀한 콘서트를 한 공감대가 통했는지 그 어느 공연보다도 반응이 더 뜨거웠습니다.

 

코로나 19 시대에 이렇게 음악을 이어간다는 것 자체가 말 그대로 비긴 어게인’, ‘새로운 시작이였습니다. 다음번에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공연을 계획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뒤로 물러나지 않고, 새로운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12. 우리의 신앙도, 뒤로 물러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더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특별히 기존의 방법이 이제는 잘 먹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Before Corona, After Corona라고 이야기를 할 정도로 많은 변화를 경험하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자칼처럼 기다렸다가 죽은 시체를 먹는 우리가 되면 안됩니다.

오늘 말씀처럼 우리가 적극적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라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어려운 시기에 이 말씀을 잘 들어야 우리가 살고, 이웃이 살고, 우리의 다음세대가 살아갑니다.

 

혹시 우리가 이번 코로나 19로 말씀을 놓친 것이 있습니까? 우리가 뒤로 물러나지 말고, 좀 더 나아가야 합니다. 말씀에 가까이 할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의 환경을 바꿔야 우리가 제대로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제대로 말씀 앞에 서야, 우리의 다음 세대 자녀들에게도 제대로 된 말씀을 먹일 수 있습니다. 말씀이 정답입니다. 추측은 정답이 될 수 없습니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도 동일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한 정답입니다.

이 정답을 놓치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정답을 우리의 다음세대에게도 분명하게 전해 주기를 힘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먼저 이 일에 증거가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으로 일어나는 하나님의 놀라운 부흥을 제대로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