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19일, , 하루 하루 소중히
1. 우리는 지난 한 주간 뉴스에서 두 사람의 장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박원순 서울시장인데, 한참 일을 해야 될 때 인데, 그리고 나름 많은 사람들이 신뢰를 하던 사람인데,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있었고, 사망 원인도 바로 그 일로 인한 것이라는 충격적인 뉴스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뭔가가 계속해서 보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 한 사람은 백선엽 장군이라는 분의 장례인데, 우리나라의 6.25 전쟁 때 나라를 정말 위기에서 지킨 전쟁 영웅이지만, 그가 일제 시대에 친일파 행적을 한 것으로 인해 논란이 많이 되었습니다.
두 고인의 공통점은 ‘어떻게 장례를 치루느냐?’에 있었습니다.
박원순 시장은 서울시장이였기에 ‘서울시장으로 장례를 예우를 할 것인가? 아닌가?’에 많은 논란들이 있었고, ‘백선엽 장군은 대전 현충원에 안장을 할지 서울의 국립 현충원’에 안장을 할지를 놓고 많은 논란들이 있었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저도 지난주 토요일에 ‘선교사님의 장례’가 있었습니다. 미국 침례교 본부에 소속되신 선교사님이신데, 다음 달이 환갑이신 젊은 분이셨습니다. 이분은 11세 때부터 다리가 불편해서 불구의 몸으로 지금까지 사셨습니다. 장애인이지만 모임 중에서는 제일 밝으셨고, 전 세계를 다니시면서 많은 선교사들을 도와 주셨습니다. 저도 오래 사귀지는 못했지만, 지난달에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에 현관을 나오시다가 쓰러지셔서 그대로 숨이 멎었습니다. 유족으로는 사모님과 2남 1녀가 있었는데, 코로나로 모임이 어려운 요즘의 장례식장 분위기임에도, 정말 엄청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장례식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 선교사님이 어느 단체의 대표나, 영향력이 있던 선교계의 인물이라 온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선교사들의 친구가 되고, 선교사들을 돕는 일에 자신의 모든 삶을 바쳤기에, 정말 많은 분들이 어려운 발걸음에도 전국 각지에서 오셨습니다.
특별히 많은 사람들이 선교사님의 왕성한 활동을 기억하며, 감사의 말을 이었는데, 의사도 사망원인이 ‘심장마비’가 아니라, 이 분은 심장이 ‘이 땅에서 사용할 만큼 다 사용해서 이제 기능이 끝났다’라고 의사가 사망진단서를 내렸다고 합니다.
2. 성경 빌립보서를 보면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혀서 있는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AD 61-63년경 로마 감옥에 갇혀 있던 시기라고 전하고 있는데, 이 당시에는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서 사형을 당하거나, 경기장에서 사자나 맹수의 밥이 되는 일이 빈번한 시기라 바울의 상태는 ‘죽음’의 문턱에 놓은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빌립보서 2장에는 ‘에바브로디도’라는 사람의 이름이 언급이 됩니다. 그는 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하던 사역자였었고, 바울사도가 감옥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들은 빌립보 교회는 에바브로디도를 보냅니다. 빌 2:25을 보면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의 감옥에서의 어려움을 돕기 위해서 보내진 에바브로디도였는데, 빌 2:25,26을 보면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당시 열악한 환경속에 이동과 안정적이지 못한 주거환경과 그 당시에도 요즘 코로나와 같은 여러 전염병들이 있었을텐데, 에바브로디도가 심한 병에 걸렸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빌 2:30을 보면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라고 하는데, 바울 사도가 발견한 것은 병에 걸린 에바브로디도가 아니라, 병에 걸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하루 하루를 최선을 다하는 에바브로디도의 신실함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건강하고, 여력이 있을 때, 일을 하는 것과 우리가 병들고, 어려울 때,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일을 하기가 정말 어려운 상태 일 때,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귀하다’ 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3. 우리도 언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90편은 ‘모세의 시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모세는 시간에 있어서는 특별한 경험을 한 사람이였습니다. 히브리 사람이였지만, 이집트 공주의 아들로 키워지면서 왕궁에서 40년을 살았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권력도 있고, 힘도 있었지만, 그 ‘시간’에는 이스라엘 동족과 히브리인들을 위해서 그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한 ‘시간’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뭔가를 해 보려고 했을 때, 그는 이집트인을 살해하고, 도망쳐서 40년간 양을 치는 목자로 살았습니다. 도망자로 40년의 ‘시간’을 살았습니다. 화려한 이집트 왕궁과는 정반대의 삶을 사는 ‘시간’이였습니다.
그리고 80세라는 나이에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하는 엄청난 일의 지도자로 쓰임을 받는 시간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이 좀 더 젊고 힘이 있을 때, 부르시지, 힘도 없고, 권력도 없고, 인생의 노년기에 부르셨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그리고 한 가정이 어디를 이사하는 것도 힘든데, 당시 세계 최고의 국가인 이집트를 피해 남자 장정만 60 만 명이라는 숫자, 가족까지 하면 300만 이상이 되는 엄청난 숫자를 이끌어내는 일을 하는 ‘시간’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감당하는데, 불과 한 달 이내로 갈 수 있는 거리를 40년 이라는 ‘시간’을 광야라는 곳에서 보내게 됩니다. 작년 11월에 요르단과 사우디아라비아 국경의 모세의 출애굽 여정이 있던 광야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우리를 안내 해 준 선교사님이 해 준 말씀은 “광야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오직 하나 밖에 할 수 없는데, 그것은 기도하는 것 외에는 불가능 한 곳이 광야” 라는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정말 넓고, 광대하고, 지금도 이동이 쉽지 않은 곳인데, 무려 40년의 시간을 그 광야를 300 만명 이상과 이동했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고, 모세의 인생 후반부는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인생의 ‘시간’을 사용하였고, 120세가 다다를 즈음에는 인생의 가장 큰 목적이였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시간’을 허락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잠깐이라도 허락을 해 주셔서, 긴 광야의 고생길에서 경험한 어려움의 보상을 조금이라도 받았어야 하는데, 결국 ‘잠시’도 모세에게는 그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밟아 보지도 못하고 죽게 됩니다. 모세의 인생 ‘시간’은 참으로 특별합니다.
4. 인류가 최초로 달에 발을 딛게 되는 1969년 7월 20일에는 미국 나사가 쏘아 올린 아폴로 11호에 1930년대의 세 사람이 타고 있었습니다. 최초로 달에 첫발을 내딘 닐 암스트롱은 내성적이였기에 세계적인 영웅으로 추앙을 받으면서 살았지만, 그 유명세 자체를 싫어 했습니다. 어린 딸의 사망과 이혼 후에 심장병으로 2012년에 순탄치 않은 삶을 살다가 죽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달에 발을 디딘 올드린은 닐 암스트롱보다 먼저 달에 첫발을 내딛지 못한 열등감으로 우울증에 시달렸고, 혼외정사, 알콜중독, 두 번의 이혼을 겪으면서,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이 역사적인 시간에 달에 내리지도 못하고, 혼자 달 탐사선을 지키며 21시간 동안 홀로 사령선에 있었던 콜린스는 어느 누구도 기억해 주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자가 물었습니다. “왜 당신은 달 가까이까지 가서 내리지도 못하고, 그렇게 알려지지도 않게 살게 되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여러분이 놓친 사실이 있는데, 저는 지구로 돌아오는 첫발을 내 디딘 사람입니다. 다른 행성에서 돌아 온 첫 번째 기구인입니다. 그리고 제가 달에 내리지 못하고, 48분간 홀로 달 뒷면을 관측을 했는데, 달 뒷면을 관측한 인류 최초의 사람입니다.” 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콜린스는 자신에게 ‘부여한 시간’이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각도에서, 다른 의미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였고, 그러한 그의 삶은 계속적인 과학자로, 우주인으로, 공학자로 살게 되었습니다.
4. 적용 1
반면에 어떤 사람은 내게 주어진 ‘시간’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후회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뭔가를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매일 매일 주어진 시간을 쉽게 포기하거나, 유용한 시간을 놓쳐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간”에 대한 많은 명언 가운데 하나는 이 ‘시간’은 ‘가난한 자, 부자’, ‘배운자, 못 배운자’, ‘건강한 자, 건강하지 못한자’, ‘나이가 들은 사람, 나이가 젊은 사람’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다고 했습니다. 삶의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진 ‘하루’를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는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 중에서 제일 ‘젊은 날’입니다. 그리고 이 날은 오늘을 살지 못하고, 어제 죽은 사람이 가장 간절히 바라는 그 ‘하루’입니다. 잠시 후에 우리가 맞이할 2020년 7월 19일 점심시간은 우리 인생에 딱 한 번 밖에 안 오는 시간입니다. 같은 점심시간은 계속 다시 올지 몰라도, 2020년 7월 19일 점심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 만나는 사람도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 일지 모르는 사람이고, 아니면, 그 사람이 평생을 같이 만나야 할 사람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중요한 사람인데, 내가 소홀히 해서 정말 내 인생에 중요한 사람인데, 코 앞에서 놓칠 수도 있고, 정말 만나기 힘든 사람인데,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만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하루 하루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지난주에 돌아가신 선교사님도, 한 달 전에 같이 식사를 했을 때, 다시 만날 줄 알았습니다. 최근에 그 선교사님은 난민과 관련된 사역을 많이 하셔서, 같이 정보도 구하고, 미국 시민권자로 미국에서 가장 선교를 잘하는 선교단체에서 파송되신 분이기에 계속 만나서 같이 협의하고 일을 하려고 했는데, 이제 제게는 기회가 없어졌습니다.
시간에 대한 우리의 한계를 절실하게 느낍니다.
5. 성경해석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90편은 그러한 우리에게 ‘우리의 존재가 얼마나 작은 것인가’를 분명하게 알려주고, 반대로 ‘하나님은 얼마나 크신 분이신지’를 정확하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특히 이 시편 90편의 저자라고 알려진 모세가 이미 자신의 인생을 통해 경험된 ‘시간’에 대한 특별한 경험이 이 시편에 전체적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2절.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이시다
3절.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 티끌같은 인간을 대조
4절.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 밤의 한 순간, 일시적임을 알게하고, 하나님은 시간의 주인이심을 고백함. 너무나 작은 인간의 존재, 비행기에서 바라 본 인간, 우주에서 바라 본 인간.
5절.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 박원순 시장, 백선엽 장군의 죽음, 스티브 잡스, 수 많은 사람이라도 일시적, 잠시 후면 사람들이 기억도 못함.
6절.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 풀의 한계와 같은 인간
7,8절.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 그러한 우리가 주의 앞에 제대로 설 수 없음. 분노와 화 중에 한 정점.
9절.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산다고 하여도, 하나님을 멀리 떠나 살게 될 때의 한계를 이야기 함.
10절.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 인간들의 한계를 인식시키심, 칠십에서 팔십...., ‘날아간다’는 표현을 함, 우리의 연약함을 계속해서 깨닫게 함.
전반적인 시편 90편의 내용은 ‘우리의 인간의 한계’를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코로나 바이러스’ 하나에도 우리의 인생은 순식간에 무너집니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 보면 너무나도 연약합니다. 모세는 인생 전체를 통해 깨달은 삶을 통해 이 시편을 기록합니다.
6. 적용 2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 답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답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 라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날을 계수함의 지혜와 더불어 이 날들이 누구로부터 왔고, 누구에게로 가고, 누구를 위해 사용 해야되는 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되는지를 우리는 성경을 통해 잘 배워야 합니다.
얼마 전 “백세까지 살아보니” 라는 책을 쓰신 연세대학교 김형석 교수의 이야기를 읽어보니, 정말 새로웠습니다. 주변에 70세 정도의 분들의 삶은 지켜 보았는데, 80, 90세 분들의 이야기는 잘 못 들었는데, 교수님의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 2016년에 인도에서 하프타임 세미나를 들었는데, 이 세미나는 축구 경기의 전반전이 끝나고, 중간 휴식 시간인 하프타임을 잘 사용해야, 인생의 후반전을 잘 살 수 있다고 하는 취지의 내용을 중심으로 우리 주변에도 인생 후반전을 제대로 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강의를 통해 소개해 주었습니다. 저도 세미나 기간 동안 제 평균 예상 수명을 연구해 보니, 저는 98세가 나왔습니다. 은퇴는 65세에 하더라도, 33년을 더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때부터 저도 노년을 위해서 준비를 시작했었습니다.
처음에는 음악적인 꿈이 있어서, 은퇴를 하고 첼로라는 악기를 배워서, 노인 연주팀에 들어가서 연주회 활동을 한다고 적어 놓았는데, 생각해보니, 나이 들면 악기도 들고 다니기 무겁고, 악기 연주는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있어서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시간을 계획하면서, 그러면, 은퇴하고는 선교현장을 다니면서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핸드폰으로 촬영을 해서 선교사들을 유투버에 소개해 주고, 방송에 올려 주면서, 그들을 격려하고, 도울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일을 해야겠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나이 들어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코로나 19가 터지면서, 선교계에도 많은 일들이 생기고, 선교지가 멈춰지고, 많은 선교사님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방송을 통해서 코로나 19 이후의 선교에 대한 준비를 하게 해 달라고 요청을 하셔서, 지금 은퇴하고 할 일이 지금 시작이 되었습니다. 지난 6월부터 한 달에 7-8편의 선교방송을 기획하고, 준비하고, 촬영하고, 진행도 하고, 편집과 방송 총괄을 하고 있는데, 참 아이러니 합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시간의 주인’이 되신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생각을 예전에 하지 않았다면, 지금 많이 헤매게 되었을 것인데,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소중하게 붙잡고, 하나님이 주신 시간에 순종하고, 헌신을 하니, 하나님이 일할 기회를 주십니다.
예2) 30대 중반에 50대에 나의 모습을 생각하고 준비한 것이, 지금의 현실속에서 잘 쓰임 받고 있고, 지금은 60대 정도가 되었을 때 내가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고, 그 시간을 위해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내일의 하루를 연장해 주실지 어떨지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하루 하루를 하나님을 위해 계획을 하고, 귀하게 여기고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반드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실 시간을 주실 것입니다.
7. 우리는 히스기야의 이야기를 잘 압니다.
이사야 38:1-5을 보면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나아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니
이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생명과 시간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인식 시켜 주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함으로 우리가 날마다 주께 나아가야 합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시간의 주인이 되신 주님께 온전히 우리의 삶을 맡기고 드려야 합니다.
나의 때, 나의 시간이 아닌, 주님의 때, 주님의 시간으로 우리가 하루 하루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8. 적용 3
본분 시편 90편 14을 보면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저는 이 말씀이 하루 아침을 시작하면서 우리에게 새 호흡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 앞에 예배하며, 기도하며, 찬양 가운데, 주를 날마다 고백하며 하루 하루를 살아가라는 말씀으로 기억을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시작을 하라는 말씀으로 받습니다. 매일 아침 예배를 드리고, 큐티를 하면서, 오늘 하루를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고, 하루를 살겠다고 기도하며 주께 나오는 사람을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좋은 시계를 살 수는 있지만, 시간까지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시간을 주시는 하나님께 최선을 다해서 우리의 하루 하루를 사용해야 합니다.
가만히 우리의 시간을 살펴보십시오. TV 앞에 앉아서 채널을 돌리는 시간, SNS를 의미없이 검색하는 시간, 유투브나 동영상 프로그램에 들어가서 나오지 못하는 시간, 게임에 버리는 시간, 그 외에도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귀한 시간을 너무나 많이 버리고 있지는 않은지를 우리는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도우셔서, 시간을 잘 사용하고, 지혜롭게 사용할 줄 아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90:17에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 라고 간구합니다.
시편 90편의 결론입니다.
티끌 같고, 지나가는 풀과 같은 연약한 우리의 존재들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날을 지혜롭게 계수하며, 그 분께 영광을 돌리고, 하루 하루 주신 하나님의 은혜 속에 거함, 그 분을 예배하고,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주의 능력과 힘으로 도우셔서 견고하게 감당할 힘을 달라는 기도로 시편 90편이 마쳐집니다.
이 시편을 기록한 모세 자신의 시간도, 자신이 그렇게 계획을 하려고 해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인생을 살면서, 분명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시간에 관한 주권을 경험하며, 이 시편을 통해 우리에게도 지혜를 얻기를 간구하는 마음으로 이 시편을 기록합니다.
오늘 우리의 하루, 하루, 정말 주님이 주시는 귀한 하루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한 부름이 있어서, 우리에게 내일이 안 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과 오늘은 우리 모두가 같이 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을 후회 없이 귀중하게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기를 원합니다.
의미 없는 하루가 아닌,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하루를,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귀하게 쓰여지기를 기대합니다.
감옥에 있는 바울을 돕기 위해 왔지만, 오히려 죽을 병에 걸려 어려움을 당한 에바브르디도, 그러나 그러한 상태였음에도, 신실하게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려는 그의 모습이 바울에게 도전이 되었고, 빌립보 교회와 초대교회, 그리고 오늘의 우리에게도 도전이 되어집니다.
우리에게 주신 하루 하루를 정말 기쁨으로 우리 주님 앞에 귀하게 사용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시 90:12을 다시 한 번 읽고 우리의 마음에 새기고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