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16일, 계3:14-22, 하나님이 주신 자리,
1. 최근에 제가 일하는 KWMA(한국세계선교협의회)에 방학 기간을 맞이하여, 장신대 기독교교육학과 인턴들이 오고 있습니다. 학기 중 기관에서 인턴을 경험해야 되기에 장신대 교수님의 요청으로 저희 기관에서도 인턴들에게 일할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1인에 60시간을 채워야 되기에 지난 7월부터 계속 8명의 인턴들이 오고 있습니다.
인턴은 정규직원이 아니고, 임시직원이고, 돈을 벌기 위해 오기보다는, 일을 배우러 오는 이유가 더 큽니다. 그러기에 짧은 시간에 와서 할 일들이라 기관의 중요업무보다는 단순작업과 보안에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잠깐 있다가 갈 사람들이기에 정해진 자리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임시적 자리’이지, ‘안정되고, 보장된 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임시적 자리는 서러움이 많습니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사람으로 존중을 받아야 되는데, ‘임시’라는 존재로 여겨지고, 대우를 받는 다는 것은 겪어보면 매우 힘든 자리입니다. 임시이기에 차별도 받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자리가 언제 어떻게 없어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반 사회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사이에서 많은 갈등이 일어납니다.
언제 그만두게 할지 모르는 자리이기에 일을 알려주거나 시켜도 제대로 안 가르쳐 줍니다. 정성들여 가르쳐 줘도 금방 없어지고, 나오지 않을 것이기에 힘들여서 공을 들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2. 티벳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소수민족이였지만, 1950년 중국에 정복을 당하고 식민지가 되어서 지금까지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현지 선교사를 통해 티벳에서 대학을 다니며 총학생회장을 하는 한 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중국이 티벳을 정복하고 어려움을 준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 놓았습니다. 티벳의 수도 라싸에는 포탈라 궁이라는 아주 유명한 티벳 사람들의 자존심인 중국에 공산화 되기전의 정부 청사가 있었는데, 이곳의 절경은 호수에 비친 포탈라 궁입니다. 그런데 중국정부가 이 호수의 물을 다 빼고, 콘크리트를 부어서 여기를 인민광장으로 만들어 놓고 공산당이 이곳을 정복했다는 기념탑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참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이 이야기 하는 것 중에 더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는데, 중국이 티벳을 정복하고, 많은 중국 한족이 티벳이 진출을 해서 정치, 경제, 상권을 모두 장악을 했는데, 그러면서 티벳 젊은이들에게 유흥문화, 술과 도박을 가지고 들어 왔고, 거기에 빠진 젊은이들이 몰래 마약에 빠져서, 한참 티벳의 미래를 준비해야 될 젊은이들이 모두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살아야 된다는 것이였습니다.
그래도 ‘그러면 안되지?’ 라고 제가 질문을 던졌더니, “티벳에서 공부를 해도, 소위 대학을 나와도 중국정부에서 티벳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공직이나, 사회적 진출을 모두 막아 놓았다”고 합니다. 그 장벽을 뚫으려면 중국 한족들 밑에 가서 일을 해야 하고, 자신의 조국을 짓밟은 중국 공산당에 가입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열심히 공부하고, 일을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자신의 나라를 짓밟은 중국인들을 위한 ‘자리’이기에, 만약에 그런 일을 해도 티벳 사람들의 시선이 좋지 않아서 청년들이 미래를 준비하지 않고 자포자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미래를 위해 안정되고, 확실한 자리가 주어지지 않기에, 불안정적인 자리를 위해서 살려고 하니 인생을 쉽게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남의 나라 이야기 같았지만, 75년 전 일본의 식민지로부터 해방이 되지 않았다면 지금도 우리가 겪어야 할 아픈 이야기였습니다. 그때와 지금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 당시는 지금은 상상도 못할 아픔들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젊은이들이 자신의 미래를 위해 꿈을 꾸고 원하는 자리를 위해 수고하며, 준비를 하면 자신이 원하는 자리를 갈 수 있는 좋은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3. 그런데 그 때와 지금도 변하지 않는 것은 우리 모두는 이 ‘자리’에 대한 욕구가 있다는 것입니다. 전철을 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빈자리가 나면 빨리 가서 앉고 싶은게 우리의 본성입니다. 저도 매일 서울로 출근을 할 때 잠시라도 자리가 나면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반면, 제가 앉을 자리인데 욕심이 않은 사람들, 특히 자기가 앉아야 될 자리인데 앉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불편합니다. 언젠가는 제 옆에 난 자리를 젊은 청년 남자가 앉았는데, 계속 어깨에 힘을 주고 그 좁은 자리를 넓히면서 태연하게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모습이 아주 불쾌하게 여겨졌습니다. 술에 취한 것도 아닌데 너무 힘을 주어서 제가 그 자리를 일어나버릴 정도 였습니다.
사람들은 이 자리에 가격을 매겨 놓습니다. 비행기를 타면 확연하게 그 ‘자리 값’을 경험하게 됩니다. 싼 비행기표 자리를 구하면 맨 뒷 칸에 좌우에 사람이 꽉 끼인 자리를 타게 됩니다. 좁은 공간에서는 이 ‘자리’값이 더욱 치열합니다. 최근 아랍에미레이트에서 호주까지가는 비행기에 특별 좌석을 설치했는데, 그 자리에는 비행기임에도 쇼파, 침실, 그리고 비행기에서 욕조에 담긴 목욕을 할 수 있게 하고, 음식도 최고급 요리사가 비행기에서 직접 요리를 해 주는데, 그 비행기 ‘자리’값이 무려 우리나라 돈으로 9,600만원을 한다고 합니다. 200만원 정도면 갈 자리를 이렇게 비싸게 자리 값을 정해 놓았습니다. 비행기 전체에서 단 두 자리 밖에 없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럼에도 이런 것이 좋아보였는지, 자신의 삶에서 이런 ‘자리’를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소위 최고라는 자리를 얻기 위해 많은 노력과 투자를 하고, 때로는 좋은 자리를 얻기 위해 남의 자리를 빼앗기도 합니다. 남은 자리가 없어서 어려움을 당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내 자리만 잘 챙기면 됩니다.
4-1. 성경도 우리에게 이 ‘자리’에 대한 분명한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의 자리는 분명한 대조를 보여 주고 있는데, 하나의 자리는 하나님 없이 살아간 자들의 자리인 ‘죄의 자리’입니다. 인간 스스로 좋은 자리를 만들어 보려고 애를 많이 쓰고, 노력도 많이 하지만, 인간을 창조한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살아가며, 인간의 본성에서 나온 죄성으로 인해 결국 사망의 자리로 가는 자리입니다. 롬 3:10-18 에는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라고 했고, 결국 인간이 차지한 자리는 죄의 자리입니다. 롬 6:23에는 그 자리의 최후를 설명해 주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라고 했습니다.
4-2. 반면 하나님께서 사랑하고 택하신 자들을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자리는 죄인의 자리에 있던 우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분의 의로우심으로 인해 얻게 될 하나님의 의의 자리입니다. 롬 3:21-30에는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라고 하시면서 죄의 자리에 있던 우리가 의의 자리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자리를 얻게 되었음을 성경은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이 믿음으로 얻게 된 이 ‘의의 자리’는 임시적이지 않습니다. 롬 6:22에는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라고 했습니다. 이 자리는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자리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자리는 누가 빼앗지 않고, 없어질까봐 염려하지 않아도 될 자리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평생을 자리 걱정을 하면서 사는 우리들의 연약함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예배하신 자리는 하나님이 지켜 주시는 평안과 기쁨의 자리라고 하셨습니다.
시편 23:1-3을 보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자리는 우리를 피곤하게 하고, 불안하게 하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를 회복시키는 자리이고,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는 자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게 하도록 만드신 자리이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가도록 인도하시는 의의 자리입니다.
마 18:28을 보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라고 했습니다. 오래 서 있거나, 피곤할 때 잠시 의자에 앉으면, 우리가 아주 큰 쉼을 얻는 것 같이, 무거운 멍에를 지고 가는 우리에게 쉼을 주시는 자리를 주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27을 보면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자리, 위로의 자리, 우리가 새 힘을 얻는 자리, 우리가 정말로 필요한 자리를 아주 정확하고 분명하게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세상의 자리는 항상 불안합니다. 최근 뉴스에도 계속적인 집값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월세, 전세값의 불안으로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염려하고 있습니다. 결국 사람 한 명이 누워야 하는 자리를 놓고도 변동이 많고, 불안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자리는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른 평안의 자리라고 약속해 주십니다.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 만큼 우리의 필요를 잘 아시고, 분명하게 예비해 두신 자리가 있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가장 평안을 누리고, 기뻐하고, 행복하고, 감사하며 살아갈 자리를 잘 알고 그 자리를 예비해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하나님이 예비하심 믿음의 자리를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믿음의 자리를 주시겠다는 말씀이 곳곳에 기록된 성경의 약속의 말씀을 잘 읽고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자리를 잘 이해할 수 있고, 우리 인생의 기준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 인생을 헛되지 않게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예) 얼마전 이용규 선교사님께 이메일이 왔습니다. 제 기도편지를 보고 답변을 보내 주시고, 서로의 근황을 물었습니다. 이용규 선교사님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하버드대학교에서 중동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으신 분이십니다. 지금도 중동에 관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기에 하버드 대학교에서 이 분야로 박사학위를 받을 정도면 먹고 사는데, 아니, 자기가 어느 정도 누릴 자리들은 많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박사학위를 받고, 좋은 자리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몽골의 변방지역에 가서 새롭게 세운 대학의 교수 자리로 갑니다. 몽골국제대학교라는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 대학에 선교사 자리로 가게 됩니다. 가서 참 많은 일을 했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몽골국제대학교를 몽골의 미래를 양산하는 좋은 대학으로 발전시키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다 싶을 때, 명예가 올 때가 될 때 그 자리를 또 내려놓습니다.
지금은 인도네시아에서 다음세대를 양성하기 위한 대학을 세우고 총장으로 일을 하십니다. 말이 총장이지, 새롭게 대학을 세우고, 모든 것을 책임을 져야 하는 무거운 자리입니다.
이용규 선교사가 이런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 “내려놓음”이라는 제목의 책인데, 그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의의 자녀로서 찾아야 할 ‘자리’를 위해서는, 때로는 세상에서 추구하는 ‘자리’를 어떻게 내려놓는지를 잘 알려주었습니다. 삶으로 하나님의 자리를 추구하는 삶을 직접 실천해 왔습니다.
직접 만남을 가져보면 하버드 대학 박사 출신으로 얻었을 자리보다, 몽골과 인도네시아에서 하나님이 주신 자리를 통해 섬겼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중했는지를 많이 이야기 합니다.
5.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계시록에는 하나님의 자리에 대한 부분을 좀 더 자세하게 묘사해 놓았습니다. 요한계시록 4장을 보면 우리가 좀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도록 ‘보좌’라는 단어로 좀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때에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라고 했습니다.
“보좌위에 앉으신 이”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보좌를 이야기하고, 그 주변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사도 요한이 본 것에 의하면 하나님의 보좌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냥 의자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권위와 능력이 상징적으로 묘사가 잘 되었습니다.
요한 계시록 4장에만 이 ‘보좌’가 14번이나 나옵니다. 하늘나라의 영광스러운 자리들을 상상할 수 있도록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적용) 저는 이 영광스럽고, 광채가 나고, 감히 쳐다보기조차 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보좌에 대한 설명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보좌를 죄 많은 우리 인간에게 함께 앉도록 기회를 주셨다는 그 사실이 더 감격스럽습니다. 그것도 죄의 자리에 있어서 감히 하나님께 고개조차 들 수 없는 우리에게, 모든 죄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씻어 주시고, 우리의 지위를 하나님의 자녀로 세워 주셔서 감히 앉을 수 없는 자리에 앉게 해 주신 그 은혜가 더욱 귀하게 여겨집니다.
예) 제가 인도에서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사고를 당해서 전신마취를 하고 6시간 정도의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가끔 전철을 타고 다리 근육이 당기면, 노약자석에 빈자리가 날 때 앉습니다. 물론 어르신들이 오시면 바로 일어납니다. 노자는 아닌데, 약자의 개념이 있어서 잠시라도 앉으면 편합니다. 그런데, 아직은 그 노약자 자리가 사회적 시선에서 불편함이 있어서 오래 앉지 않습니다. 제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비해 두신 자리는 죄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죄가 많고, 인간이 덜 되고, 우리가 하는 짓을 보면 정말 앉을 자리가 아니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초월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 자리에 기꺼이 앉게 해 주셨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좌절하고, 절망하고, 일어설 힘조차 없는 최악의 절망의 순간에는 우리를 보호하시기 위해 주님이 곁에 서 계시고, 우리를 앉도록 해 주실 정도로 우리를 위해 주님이 우리의 자리를 분명하게 예비해 주셨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주님을 제대로 신뢰하지 않아서, 가장 좋은 자리를 예비해 주셨음에도 깨닫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자리를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의 자격을 보지 않으시고, 많이 배웠든지, 안 배웠든지, 부자든지, 가난하든지, 건강하든지, 건강을 잃었을 때에든지,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가장 큰 평안함과 기쁨의 자리를 우리를 위해 기꺼이 내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간혹 지하철에서 아주 어린 자녀를 자리에 앉히고, 부모가 그 앞에 서 있는 것 같이,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키시고, 힘을 주시기 위해서 항상 우리 곁에 계심을 성경 곳곳에서 수 없이 많이 기록해 놓은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그렇게 사랑을 받고, 자격이 없음에도 그 자리를 앉아서 누리다가, 다시 죄에 빠져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을 상실해도, 변함없는 사랑으로 다시 그 자리로 불러 주십니다.
6. 그 사례가 오늘 우리가 읽은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요한계시록 2,3장에 일곱 개의 교회들이 등장을 합니다. 여러 교회들이 칭찬도 받고, 대로는 책망도 받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라오디게아 교회는 책망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사도 바울의 동역자인 에바브라에 의해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극진한 관심 속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복음에 입각한 정상적인 성장을 하지 못하고, 결국 주님께는 한 마디의 칭찬 없이 책망만 받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 라오디게아 교회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미지근한”이라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당시 주변 환경에서 유래된 이야기인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지금의 터키 남부 지역에 파묵칼레라는 유명한 온천이 많이 나는 지역근처입니다. 저도 방문을 해 보니 참 아름답고 특별한 경치는 가지고 있지만, 이 지역의 물들은 철분과 석회질이 많아서 물을 미지근하게 먹으면 구토가 유발된다고 했습니다. 이 유래처럼 라오디게아 교회는 세상적인 타협을 해 나가면서 적당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그들의 모습이 주님으로부터 벗어난 것입니다.
더불어 3:17을 보면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스스로 잘났다고 합니다. 에베소 해안으로부터 아시아 내륙으로 뻗은 대로마 도로가 그 중앙을 지나가는 라오디게아는 군사 및 무역과 통신의 요지이며, 검정색 양모의 생산지로 당대 제일의 부유 도시로 성장을 한 곳입니다.
이 도시는 또한 금융도시로 정치인들이 거액의 신용장을 이곳에서 현금으로 바꾸어간 역사적 사실에서 그 규모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역사 자료에 의하면 AD 17년에 강타한 지진 복구 작업에 로마 정부의 지원없이 자체 힘으로 복구를 감당할 만큼 재정적 여유가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유명한 의학교가 있어서 많은 의약 상품들이 오고갈 부유층들이 많은 도시였습니다. 정말 좋은 자리에 위치한 라오디게아 교회였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칭찬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책망을 받았습니다. 물질적인 부가 영적인 부라고 착각한 것이 그 중요한 결점이였습니다. 풍족한 것이 오히려 빈곤을 낳았습니다. 주님 앞에 아무것도 제대로 없는데, 있는 것처럼 하고 살았습니다. 아니 영적인 눈을 뜨지 못했기 때문에 다 있는 줄 알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기의 자리만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이 가득한 교회였습니다.
적용) 그런데 여기에서 반전이 있습니다. 책망만 받고, 전혀 가망이 없을 것 같은 라오디게아 교회에도 하나님께서 회개하고, 주님을 온전히 영접하고, 받아들이면 영광스런 하나님의 보좌에 앉도록 기회를 주시겠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계시록 3:19-21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전혀 가망이 없던 상태였지만,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는 삶을 사는 자에게 ,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에 앉도록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큰 복음입니까?
전혀 가망 없고 책망을 받던 삶이였지만, 주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인해 인생이 완전히 변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음입니까?
적용) 우리의 힘으로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던 우리의 모습이 있었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되는 말씀입니까? 책망 받을 자리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를 공유하는 엄청난 특권을 주시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 얼마나 우리에게 큰 영광입니까? 저와 여러분은 이 엄청난 영광의 자리를 얻을 기회를 발견하지 않았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무엇보다도 회개해야 합니다.
가. 회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다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하루하루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 되도록, 나의 뜻과 욕심을 내려놓고, 그 분의 음성을 듣고, 그 분의 뜻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하고, 하나님이 주신 ‘자리’를 지켜 나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새롭게 살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가 이 귀한 자리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나. 회개의 삶을 우리가 삶속에서 이어가려면 오늘 계시록 3:20처럼, 문을 열고, 그 분이 내 안에 사시도록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 안의 중심, 의자를, 자리를 주님께 내어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꾸 내 생각대로 살고, 내 자리를 지키려고 주님을 제한하거나, 막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온전히 거하시도록 내 삶을 온전하고 성결하게 살아야 합니다.
오늘 내게 주신 자리를 주님께 감사하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주님을 높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리라고 인정하지 않고, 자기의 욕심에 이끌린 자리를 얻기 위해 살면서, 주님의 자리까지 요구하면 진정한 하나님이 주시는 자리를 얻을 수 없습니다.
(예화) 요셉의 인생을 보면, 자기의 자리가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다가 형들에게 모함을 당하고, 노예로 팔리고, 노예로서 집안일을 최선을 다했지만, 집 주인의 안내에게 누명을 쓰고 성추행범으로 감옥에 들어갑니다. 요셉의 삶의 자리를 보면, 뒤죽박죽 엉킨 것 같지만, 주어진 자리에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삶을 온전하게 드린 요셉을 통해 하나님의 크신 계획이 이루어지고, 애굽의 총리가 되며, 극심한 가뭄으로 어려움을 당한 가족들을 모두 건져내게 됩니다. 잘못된 자리를 앉은 것 같지만, 하나님 안에 거하고, 주님께 맡기는 삶을 살았더니, 하나님께서 요셉을 위한 더욱 귀한 자리를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예화)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광야에서 양과 염소를 치는 자리에 잇던 지극히 작은 자 였지만, 하나님은 주께 순종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예배하며, 믿음의 자리를 지킨 다윗을 여러 위험에서 건져 주시며, 이스라엘의 임금의 자리를 주시면서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이외에도 수 많은 사람의 간증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리를 위해서 살고, 하나님의 자리를 지켜 나아갈 때,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를 믿음으로 지켜 나갈 때 하나님은 더 큰 사랑과 은혜로 우리의 자리를 분명하게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지혜로워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자리를 지켜 나가는 것보다, 하나님이 우리의 자리를 지켜 주시는 것이 더욱 크고 분명하고 확실합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주신 자리를 믿음으로 잘 지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리는 임시적이거나, 곧 없어질 불안한 자리가 아닙니다. 우리 인생에게 가장 좋은 자리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죄로부터 벗어나, 믿음의 자녀로 살게 해 주신 믿음의 자리를 잘 지켜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자리들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를 함께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나에게 주신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과 사업의 장에서 나에게 만나게 해 주신 사람들에게서 영적인 자리를 잘 지켜나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소중하게 세워주신 자리인데, 내 스스로 귀중히 여기지 않고, 경시하거나, 귀하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세상이 주는 자리를 차지하려고 나가지 않는지 잘 돌아 보기를 원합니다.
결론
코로나 바이러스를 겪으면서 우리는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않았던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지키던 자리도, 바이러스 확산의 위험요소가 되면서, 더욱 지키기 어려운 자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어떤 자리가 중요한지를 분별하기 참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인공 지능 시대를 살면서 수 많은 자리가 생기지만, 반대로 수 많은 자리를 잃어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기를 그리스도인의 자리를 지키며 사는 것이 정말로 쉽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더욱 확실하게 주님을 신뢰하며 내게 주신 자리를 잘 지켜내야 합니다. 우리의 한계는 바이러스로 인해 2미터의 자리도 제대로 지켜내기 힘든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 힘든 시대는 우리의 자리를 더욱 위협할 것입니다.
일할 자리도 없고, 건강을 잃게 될 위협의 자리도 많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자녀들은 학교도 가지 못하고 미래를 준비할 자리도 잃어버렸습니다. 그 피해가 교회에도 밀려오고 있습니다.
세상은 불안한 미래의 자리로 그 어느 때보다도 두려워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광의 보좌로 안내를 해 주시며, 우리가 회개하며, 주의 뜻에 다라 살려고 할 때, 지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리를 기쁨으로 잘 지켜 나갈 때, 하나님 나라의 보좌를 허락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든 자리를 부둥켜 않고 살아가고 있지만, 이럴 때 일수록 우리는 임시적이지 않고, 불안정하지 않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자리를 분명하게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리 중에 최고의 자리가 어디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는 자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우리의 삶의 자리입니다. 이 귀한 자리를 믿음으로 지켜 나가며,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