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5, 사무엘하 6:1-9, 나의 방법, 주의 방법

 

우리는 간혹, 열심히 하기는 했는데, 결과가 내가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나와서 실망을 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도 나름 최선을 다하고, 열심을 내었는데,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거나, “차라리 하지 않았었으면 좋았을 걸...” 이라는 주위의 반응이 나오면 참 속상합니다.

() 예전에 성도들에게 밥을 잘 사는 집사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집에 성도들을 초청해서 거하게 식사를 대접합니다. 너무 귀한 섬김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 헌금을 온전히 드리지 않고, “헌금을 교회 성도들과 즐겁게 식사비로 사용하면 좋은 일이 아닌가?” 라는 마음으로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교회에서 예산 청구해서 밥을 한 번 먹으려면, 절차도 복잡하고, 먹고 나면 영수증 첨부해서 보고해야 하고, 영수증 주면 간혹 왜 이런 걸 먹었냐? 누구랑 먹었냐?라고 묻기에 불편해서 자기가 대충 한 달에 얼마를 헌금을 할 것인데, 이 금액으로 이렇게 교우들 밥을 대접하고 섬긴다는 것입니다.

질문) 여러분은 이런 분이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성도들에게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섬김의 마음으로 식사를 대접하는 것은 맞지만, 하나님께 드릴 헌금을 드리지 않고, 자신이 그 헌금의 집행자가 되어서 사용하는 것은 건강한 신앙생활의 자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이와 비슷한 사례가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다윗왕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옮기는 장면이 묘사가 되고 있습니다.

사무엘하 5장에는 다윗이 헤브론에서 76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이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전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듣고 이스라엘의 숙적이였던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범을 하는데, 다윗왕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가운데 이 전쟁에서 큰 승리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를 이스라엘의 중심부인 예루살렘으로 옮겨 올 계획을 합니다. 이것을 이루면 명실상부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완성이 됩니다.

 

사실 지난 70여 년간 이 여호와의 법궤바알레유다라는 변방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흑역사가 있었는데, 그때도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투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전투에서 패배하자, 막연하게 여호와의 언약궤를 전투의 맨 앞에 들고 나가면 이길 것이라는 생각으로, 전투에 여호와의 언약궤를 들고 나갔는데, 오히려 블레셋이 여호와의 언약궤에 대한 소문을 듣고, 죽기 살기로 전투에 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완패를 했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두고 도망을 칩니다.

 

그런데 빼앗긴 여호와의 언약궤가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머무르자 정말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둔 곳에 있던 다른 신상들이 넘어져 있거나, 그 지역에 독한 종기의 재앙으로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자, 이방인이지만, 그들은 이 여호와의 언약궤가 매우 위험한 물건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돌려보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이방인 블레셋인들이 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 돌려 보내기 위해 복술자(마술사)들을 불러서 방법을 정합니다. 원래 이스라엘에서는 레위 지파의 고핫 자신들이 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운반하는 직임을 담당했는데, 블레셋 사람들은 새 수레를 하나 만들고, 멍에를 메어보지 않은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수레를 끌게 했습니다. 사람이 옮길 것을 짐승인 소가 옮깁니다. 수레를 이스라엘의 경계선까지 이르게 하고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됩니다.

사무엘상 7:1을 보면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라고 했습니다.

 

(질문) 그런데 70 여 년간 이 중요한 여호와의 언약궤가 한적한 곳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여호와의 언약궤가 왜 이렇게 방치되어 있었을까? 라는 질문을 하고 여러 자료들을 살펴보았는데, 제가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옮기는 과정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습니다.

사무엘상 6장에서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지고 블레셋과의 전쟁에 나갔다가 큰 패전을 당합니다. 그 때 여호와의 언약궤를 들고 가던,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흡니와 비느하스가 죽습니다. 블레셋에서는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지고 있다가 독한 종기로 고생을 했고, 벧세메스에서는 호기심으로 여호와의 언약궤안을 들야다 보다가 70명이 죽습니다.

삼상 6:19을 보면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까닭에 그들을 치사 오만칠십 명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슬피 울었더라라고 합니다. 성경학자들은 이때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고, 호기심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여호와의 언약궤를 대하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이 같은 일들이 이어지니 사무엘 선지자 시대였고,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의 통치 기간이였지만, 쉽게 예루살렘으로 옮길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이 새롭게 세우신 다윗왕은 무엇보다도 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되어서 무려 30,000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을 뽑아서 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옮기는 일을 우선순위를 두고 착수를 했습니다.

 

(반전 포이트) ------------------------

의도는 참 좋았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사람 다윗 다웠습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계획에 결정적인 실수를 하게 됩니다.

삼하 6:3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모세 율법에 따르면 성소의 모든 기구를 운반하고 보관하는 책임은 레위지파의 고핫 자손이 담당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생각하지 않고, 이 앞전에 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옮겼던 이방인인 블레셋의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수레에 싣고, 두 마리 소에게 끌고 가도록 한 것을 그대로 따라 했습니다.

단순하게 이렇게는 하지 않았을 것이고, 많은 연구가 나름대로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연구의 결과가 하나님이 알려 주신 방법이 아니라 자신들이 나름대로 생각한 방법이였습니다.

하나님이 알려 주신 방법이 아니라 자신들이 나름대로 생각한 방법을 택한 결과가 어떤지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삼하 6:4-5을 보면 그들이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싣고 나올 때에 아효는 궤 앞에서 가고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은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더라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환호와 둘러싼 30,000명 이상의 집중을 받으면서 얼마나 멋진 축제 같은 장면입니까?

다윗이 준비할 수 있는 최대한의 준비, 사람이 준비할 수 있는 최대한의 준비가 이제 곧 시작이 됩니다.

 

그런데 아주 아이러니한 장면이 연출이 됩니다. 삼하 6:7을 보면 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라고 기록이 됩니다. 엄청나게 많은 군중과 많은 악기가 동원되고 산만한 당시의 분위기와 오래전 블레셋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조용하게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고 이스라엘 땅으로 오던 분위기와는 확실하게 다른 모습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같은 소이지만, 다른 환경에서 다른 결과가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은 수레가 소들이 뛰기 때문에 떨어질 뻔합니다. 행사가 아주 엉망이 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고, 떨어 질 뻔한 여호와의 언약궤를 붙잡던 웃사가 그 자리에서 죽고 맙니다. 삼하 6:6-7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라고 합니다.

이 순간의 분위기가 그려지십니까?

얼마나 당혹스러운 장면입니까?

특별히 웃사가 어떤 일을 했습니까? 당연히 해야 될 일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죽었습니다. 이상합니다. 왜 죽었을까요?

(설명) 웃사는 아비나답의 아들로 오랫동안 여호와의 언약궤자신의 집에 있는 것을 어릴적 부터 보고 자란 사람이였습니다. 사실 오늘 여호와의 언약궤를 옮기는 일에 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다 받은 사람이였습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70년 정도 자신의 집에 보관한 아비나답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좀 옮겨 보겠습니다. 아비나답에게 어느날 여호와의 언약궤가 자신의 집으로 옮겨 오게 됩니다. 삼상 7:1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블래셋과의 전투에서 패하고, 여호와의 언약궤가 빼앗기고 난 뒤, 엘리 제사장의 가문이 완전히 망하는 일을 직접 눈으로 목도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여호와의 언약궤가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고, 아비나답의 집에 무사히 도착하는 모습을 볼 때, 얼마나 마음에 감사와 기쁨이 있겠습니까?

삼상 7:2을 보면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귀중히 여기면서 이 아비나답을 어떻게 대했겠습니까?

 

(질문) 여러분은 사람들이 이 아비나답 가정을 어떻게 대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상상이지만, 저는 극진하게 잘 대접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들의 인성이나, 심성이나, 그 동안의 행동보다는, ‘여호와의 언약궤를 모시고 있는 집이기에 이를 잘 대하면 축복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생각으로 잘 섬겨 주었을 것입니다.

한 해가 지나고, 두 해가 지나고 무려 칠십년이 지나는 동안 많은 사랑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거 아시나요? 사랑을 많이 받다보면 무뎌집니다. 귀한 줄 모릅니다.

 

평범한 한 가정이였던 아비나답의 집에 무려 다윗 왕이 30,000명의 사람들을 보내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옮깁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동안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지고 있었던 기득권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이제 그 하이라이트가 되는 여호와의 언약궤를 옮기는 장면에서 소의 수레를 끄는 사람으로 아비나답은 자신의 두 아들 웃사와 아효가 정해집니다. 이 중요한 장면에서 많은 사람들의 모든 시선을 독점하게 됩니다. 남들의 시선을 끌게 되면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누군가 우러러 보는 것, 은근히 우리 모두도 바라는 일이 아닙니까? 반면 누군가는 찌그러지게 됩니다. 아비나답은 레위인이였습니다. 적어도 레위인이였다면 이렇게 수레에다가 여호와의 언약궤를 올려서 짐승인 소를 통해 끌고 가지 않는다는 것을 모를리 없었습니다.

 

적용)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이 본문을 통해 분명하게 질문을 해 보아야 할 내용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도 혹시 분명한 하나님의 방법이 있는데, 이러한 것들을 무시하고, 내 방법대로 일을 하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합리화하면서, 하나님 없이 생활하고 있는 부분은 없습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이끄시는 방법이 있는데, 그 방법은 뒤로하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싶어 하고,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고, 인기를 독차지 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습니까? 나에게 유익이 되고, 내게 뭔가 떨어지는 일을 계산하면서, 사람을 가려가면서 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적용2)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많은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일제치하, 공산당이 몰려와도 주일성수라는 신앙으로 예배당을 떠나지 않고, 교회를 지켜왔던 우리들이 이번 코로나 기간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를 중지했습니다. 이로 인한 여파가 계속 이어져서 지금까지 걸어보지 않은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적용결론) 이처럼 많은 변수와 변화가 있는 시점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방법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방법과 생각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우리의 처지를 다 아실텐데, 그렇다면 그러한 상황 가운데서도 어떻게 하는 것이 더욱 귀한 일일지를 더욱 귀를 기울이고,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방법과 우리의 힘으로 아주 성대하게 준비하고, 엄청난 일을 계획한다고 할지라도, 오늘 본문에서 소 몇 마리가 모든 분위기를 바꾸었듯이,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리게 되어집니다. 우리의 생각과 방법이 아닌, 주님의 방법과 생각에 더욱 귀를 기울이고 집중해야 될 때입니다.

 

두 번째 반전 ------------------

우리는 성경을 계속 읽어보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발견이 됩니다.

70년 만에 여호와의 언약궤를 옮기는 30,000명과 엄청난 사람들이 준비했던 대 이벤트는 예기치 않았던 소가 날뛰므로 흐트러졌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70년간 자신의 집에 보관하고 있던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가 죽는 일로 마감이 됩니다.

삼하 6:7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라고 했습니다. 문장의 흐름을 보아서는 70년이나 여호와의 언약궤를 보관했던 결과로서의 축복이라고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반면 이 일로 여호와의 언약궤는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옮겨집니다. 삼하 6:10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라고 했습니다.

이미 역사적으로 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잘못 관리하면 어떤 일을 당한라는 것을 당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오벧에돔은 거절하지 않고, 순수하게 잘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이 그러한 오벧에돔을 기뻐하셨다는 표현이 성경에 나옵니다.

삼하 6:11을 보면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70년을 보관했던 아비나답의 집은 아들 웃사가 죽는 일을 경험한 반면에 불과 석 달이지만, 오벧에돔은 온 집에 복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습니다.

여기서 성경의 기록상으로는 우리가 파악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 주석에서 아비나답의 경우는 70여년이라는 오랜 기간 여호와의 언약궤를 관리하다보니 타성에 젖서서 별로 큰 감동없이 대대 손손 관리를 했었을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사실 70년이라는 엄청 긴 세월이면, 아무리 중요한 물건이라도, 귀히 여기기보다는 둔감해집니다. 아비나답의 가정은 여호와의 언약궤이지만, 지난 70년간 주변 사람들로부터 받았을 섬김과 대접과 존경을 이미 충분히 받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반면 오벧에돔은 여호와의 언약궤에 대한 꺼려지는 역사적 흐름을 알고도, 다윗왕의 명령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순종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성경에는 오벧에돔만이 아니라, 그의 온 가족이 하나님의 복을 받았다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온 가족이 전심으로 여호와의 언약궤를 귀히 여기고 잘 모셨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적용) 오늘 우리는 오래 믿고, 익숙하게 믿고, 그냥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돌보심에 대한 감격 없이 그냥 그럭저럭 믿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는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번 코로나 기간 우리는 너무 당연시하고 익숙했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예배 후에 같이 식사를 하고, 성도들과 성경공부를 하는 것, 성도들이 주안에서 함께 지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잃어버리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무뎌지는 마음으로 소중한 것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이번 코로나는 너무나 귀중한 가르침과 깨우침을 주셨습니다.

오벧에돔은 불과 석 달이지만, 온 가족이 자칫하면 불행의 씨앗이 될 수 있는 여호와의 언약궤를 기쁨으로 모셨습니다. 모든 것을 분명히 아시는 하나님은 70년을 여호와의 언약궤를 모신 아비나답의 가정에 주신 비극적 결말과 다르게 오벧에돔의 집에는 불과 석달이였지만, 하나님의 축복을 주셨다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에 합당한 그 무엇인가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적용2) 우리도 똑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기회임에도, 하나님의 축복을 놓치고, 오히려 계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축복 같아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일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화) 지난주 수요일에 전라도 광주에 있는 교회 청년부에서 강의 요청이 있어서 잠시 내려갔다 왔습니다. 공식 일정을 앞두고, 제 군대 친구와 잠시 차를 마셨습니다. 강원 화천에 최전방에서 같이 군 생활을 했는데, 당시 저는 군종병이였고, 제 친구는 군인교회 찬양대 지휘자였습니다. 제대하고 공무원이 되어서 공무원 복음화를 위해서 일하고, 선교사가 되려는 제게는 선교후원금을 많이 보내 주겠다고 했는데, 이 친구가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36살에 교회를 개척해서 지금까지 교회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는데, 코로나 시대에도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30년 지기 친구라 잘 아는데, 좀 건들건들하고, 꾀도 많고, 건성건성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이야기 하다보니까 교회가 잘 성장하고, 성도들에게도 사랑을 많이 받고, 사역을 잘 하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기 자랑을 하나도 하지 않는데도, 뭔지 모르게 교회가 성장하고, 힘이 있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특별한 목회 프로그램이나 전략으로 하지 않고, 모든 일을 성도에게만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요즘같은 코로나 시대에도 아침부터 밤 10시까지 계속해서 사역이 이어진다고 하는데, 뭐 특별하게 하는게 없냐고 물어봐도, 특별해 보이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냥 자기 일 다 내려놓고 성도들에게만 집중하는 것 그것 하나 밖에는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것을 축복하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가정이야기, 삶의 이야기 등을 들어보면 하나님이 참 많은 축복을 주셨음을 느끼게 됩니다. 할 줄 아는 것 많고, 꿈 많았던 청년이였는데, 다 내려놓고, 다 포기하고, 성도를 섬기는 그 한 가지 일에만 모든 것을 전념 합니다. 그런데 그 한 가지 일에 전념하는 그를 축복해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짧게 만나지 않고, 30년을 같이 지내왔기에 하나님이 어떻게 그 가정을 복 주시는지를 지켜 볼 수 있었습니다.

 

예화적용) 우리도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축복하실 만한 일이 무엇이 있을지를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아비나답과 같이 축복을 충분히 받을 만한 상황임에도, 그 무엇인가가 부족하여 비극적인 결말로 가는 모습을 되새기면서, 오벧에돔과 같이 비록 석달의 짧은 시간이지만, 그 가정이 성경에 기록은 되어지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들이 있어서,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지 않았나를 생각해 보게 되며, 과연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나와 하나님만이 아는 그 분명한 축복의 이유와 축복의 삶이 아닌 이유를 우리 주님은 분명히 알고 계실 것입니다.

 

마지막 은혜) --------------------

이제 우리는 좀 더 다른 결말을 보게 됩니다. 여호와의 언약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축복의 역사로 이어지는 것을 본 다윗왕이 다시 크게 결심을 하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이동하려고 합니다. 삼하 6:12 “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방법이 다릅니다.

삼하 6:13을 보면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소가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메고 갑니다. 그리고 여섯 걸음을 걸은 후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삼하 6:13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삼하 6:17에는 여호와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그것을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그 준비한 자리에 그것을 두매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니라

이번에는 철저하게 반성하며, 하나님께 집중하여 여호와의 언약궤를 옮겼습니다. 이 앞전에 실수가 전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30,000명의 사람들이 다윗왕의 명령을 받아서 화려하게 이동하면서, 다윗의 통치에 힘을 실어줄 여호와의 임재를 연출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여호와의 언약궤를 온전하게 옮기고 예배가운데 옮기는 일에 모든 것을 집중합니다.

 

우리는 다윗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기쁨으로 이동하고 난 뒤에, 큰 기쁨으로 춤을 추는 장면을 성경의 기록을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삼하 6:16을 보면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 라고 했는데, 얼마나 기쁨으로 춤을 추었는지를 알 수 있는 장면입니다. 사실 왕이면 체통을 지키고, 근엄해야 하는데, 너무 너무 좋아서 이것저것을 가리지 않고, 기쁨을 춤을 추었나 봅니다. 그러다보니 옷이 좀 흐트러져서 부인이 미갈이 보기에 민망할 정도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기쁨으로 일을 마친 다윗을 보면서 우리도 이 은혜의 포인트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적용) 혹시 저와 여러분도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온전한 은혜를 구하고, 주의 도우심을 구하는 절차를 무시하고, 효과적이고, 편리하다는 이유로 너무 쉽게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주의 뜻 가운데 산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까? 코로나 시대가 앞으로 많은 변화를 줄 텐데, 이 역사적 기로에서 우리가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아갈지, 아니면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길로 온전히 나아갈지를 우리는 순간순간 잘 택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길이 인간적인 방법으로 좋게 보여도, 하나님의 방법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반면 지금 하는 일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는 것 같지만,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아비나답이 왜 축복의 자리에서 비극적으로 결말이 났는지, 오벧에돔이 불과 석달만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는지 정확하고 구체적으로는 모르지만,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분명하게 모든 것을 아시고, 각각에게 맞게 역사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주여 나를 도우사, 인간적인 방법을 내려 놓고, 하나님이 주신 방법으로 주의 뜻을 이루며 이 코로나 시기를 이겨나게 되기를 원합니다. 라고 기도하며, 예배 가운데 주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인간적인 준비가 잘 된 일이라, 전혀 예상치 못한 소 한 마리가 뛰어 다니며, 모든 축제를 마친 것처럼, 우리의 일에 결정적인 한 방이 찾아올지 모릅니다. “주여 우리가 부족하오니 깨닫게 해 주시고, 주의 뜻 분별하여 주를 위해 우리가 기쁨으로 살아 갈 수 있는 기회를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며, 주님의 방법을 분별하여,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