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15일, 코로나 시대의 추수감사주일, 로마서 1:8-15
최근 남태평양 피지에서 오신 선교사님을 만났습니다. “코로나로 지금 상황이 어떠신가요?” 라고 물었는데, 감사하게도 피지는 초기에 봉쇄를 잘 해서 지금 코로나 확진이 지금 거의 “0” 이라고 합니다. 현재까지 코로나에 걸린 사람은 34명에 사망자가 2명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초기에 봉쇄를 잘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피지는 관광으로 수입을 올리는 국가라 봉쇄를 해서 코로나 감염은 적은데 경제가 지금 너무 어렵다고 합니다.
반면에 봉쇄를 하지 않아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지 않은 나라들은 정말 무섭게 코로나가 확산이 되었습니다. 인도도 초기에는 코로나 방역을 잘 하나 싶더니, 봉쇄를 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화하자,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굶어주기 어려워서 다들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로인해 인도는 온 지역에 코로나가 급속도로 확대가 되어서 현재 870만 명이 코로나에 확진자가 되었고, 45,000명 정도가 사망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표현이 이제는 낮선 용어가 아니라 우리의 생활용어가 되었습니다. 11월 13일 부터는 마스크 사용이 의무가 되고, 마스크를 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하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사람과는 2m 거리두기를 해야 하고, 입에는 마스크를 가리고 살아야 하는 일상으로 사람과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게 되고, 공공장소에 크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쬐려 보기도 하고, 사람들이 가까이 오게 되면 일단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주의를 합니다. 특별히 아주 친한 사람이 오랜만에 와서 악수를 요청하면, 속으로 “이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이렇게 손을 내밀지” 라고 조심을 하고, 악수를 하더라도, 살짝 손 소독제를 꺼내서 바르고 옵니다.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해도 대화의 내용을 생각하기 보다는, 먹다가 침이 튀거나 음식에 침이 섞이는 상황이 될까봐 주의를 기울입니다.
이런 분위기속에 우리는 코로나 시대의 첫 번째 추수감사주일을 겪습니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을 감사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잃은 것도 많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얻은 것이 많습니다. 특별히 비대면 시대를 맞이해서, ‘화상통화 - 화상회의’가 자연스러워져서, 오히려 국가와 장소를 초원해서 다양한 모임들이 온라인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공장들이 운행이 제대로 안되다 보니, 미세먼지가 많이 줄었습니다. 집에 오래 있어야 되니, 가족들이 오히려 더 자주 만나면서 다툼도 많았지만, 오히려 ‘가족들이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불가리아 MK의 고백)
그런 가운데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을 때,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우리는 사람과 거리를 두고, 비대면 사회에 접어들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사람”이였습니다. 함께 모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했고, 함께 만나서 차 한 잔을 나누고, 편안하게 식사를 나누는 그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귀중했고, 소중했는지를 이번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많은 교회들도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예배, 온라인 예배를 드리면서 소그룹 모임을 중단하고, 식사를 금했는데, 코로나 이전에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공부하고, 같이 식사를 나누는 모임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생각’해 보았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코로나가 한참 심할 때, ‘우리 교회 교회학교의 어린이들이 거의 교회를 나오지 못했습니다.’ 어린이 예배를 드리려고 해도, 준비를 잘해서 예배를 드리고, 간식을 준비해서 아이들을 기다려도, 코로나로 인해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 썰렁함이 한 주, 두 주가 되면서, 오래 이어지면서 그 삭막함을 지켜 볼 때 참 안타까웠습니다. 그런 가운데, 서서히 회복이 되면서 어린이들이 하나 둘씩 다시 교회를 나오면서 교회 안에서 뛰어 놀고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 아이들이 얼마나 귀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본문도입)
1. 오늘 본문을 보면 초대교회 시절에도 우리와 비슷한 어려움들이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로마 정부에 의해 잡혀가고, 모진 고문과 어려움을 겪고, 심지어는 잡혀가고, 사형에 처해지기도 했습니다. 성도들이 떳떳하게 만나서 대면을 하고 예배를 드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매주 매주 모이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고, 혹시라도 모이는 것이 발각이 될까봐 매순간 마음을 졸여야 했습니다.
(예) 저희도 인도에서 이러한 일들을 경험해 보았습니다. 힌두교도가 80%, 모슬렘들이 15%나 되는 인도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였습니다. 특별히 기독교가 선교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항상 경계를 하고, 조금이라도 해가 되면 고발을 하고, 선교사를 쫓아냅니다.
저희도 예배당을 빌릴 때, ‘예배를 드린다’는 말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냥 ‘한국 사람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한국 노래 부르고, 한국 음식 먹고, 그리고 두고 온 형제를 위해 잠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진다’고 이야기를 하고 예배장소를 빌렸습니다. 십자가를 붙이면 교회라는 것이 알려져서, 어느 정도 서로의 경계를 허물기까지 ‘1년 반 정도를 십자가를 달지 못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저희 교회를 섬기던 안수집사님들은 늘 예배를 드릴 때 맨 뒷좌석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혹시라도 인도 경찰이 들이 닥치면, 이를 잠시라도 저지하고, 시간을 벌고, 우리 모임이 발각되지 않도록 늘 망을 봅니다.
저도 예배를 드리다가 성도들과 ‘뜨겁게 기도’를 드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크게 기도를 하면, 소리가 새어 나가서 인도인들에게 신고를 당할까봐, 담임목사인 제가 “늘 조용히 소리를 낮추어서 기도겠습니다.” 라고 가르쳤습니다. 심지어 성도들이 집에 돌아갈 때 한꺼번에 많이 나가면 동네 인도 주민들에게 오해를 받기에 ‘조금씩, 조금씩 나누어서 나가도록’ 주의를 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정도보다 초대교회 시대는 너무나도 조심스러웠습니다. 특별히 오늘 읽은 로마서의 경우는 ‘로마정부의 중심이 되는 지역’이기에 쉽게 발각이 되기가 쉽고, 누가 어떻게 몰래 잠입하여 교회 예배 가운데 들어와서 예배를 드리는지를 늘 조심해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로마교회는 성도들이 모임을 가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특이한 것은 사도들이나, 예수님의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서 세워지기 보다는 그 당시의 여러 가지 상황들이 전해지면서, ‘입 소문 가운데 교회가 세워지고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가 가진 정치, 경제, 군사, 문화적 영향력을 고려하면, 이곳에 교회가 세워졌다고 하는 것은 아주 놀라운 역사입니다.
2. 사실 로마서의 저자인 바울 사도와 로마교회는 별로 관계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렇게 책임과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는 관계였다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직접 개척하여, 시작한 교회들이 아니였기에, 바울 사도가 그렇게 많은 영적인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교회였습니다. 한편으로도 바울사도가 이것저것 간여해서 직,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주기가 쉽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이것저것을 가리거나, 경계를 나누어서, 니편 내편 나누면서 일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 하나님의 성도들이라는 마음으로 한 사람 한사람을 주안에서 귀히 여겼습니다. 로마서 1:8을 보면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라고 이야기 하면서 로마교회 성도들이 믿음을 잘 지킨 것에 대한 격려를 했습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방송이 발달은 되지 않았지만, 입에서 입으로 성도들의 삶의 이야기들은 사람들을 통해서 전해졌습니다. 아마도 바울 사도의 열정으로 볼 때, 이 로마에도 복음을 전하기로 계획을 했을텐데, 이미 이곳에서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소문’은 바울 사도에게 너무나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예화) 조선에 처음으로 복음이 전해지던 시기에 조선은 너무 나도 열악한 지역이고, 선교사들이 와서 금새 금새 죽고, 조선 정부의 극심한 반대로 복음을 전파하기에는 정말 언더우드 선교사의 이야기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했던 곳입니다.
그런데 언더우드의 4대 증손녀인 엘리자베스 언더우드의 “한국의 선교역사”라는 책을 보면, 한국에 온 선교사들이 본국에 보낸 기도편지 가운데에는 “정말 한국은 복음의 역사가 엄청나게 나타나는 곳입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순수하게 복음을 받아들이는지, 그리고 조선인들은 모두 타고난 설교자들이라 조금만 복음에 대해서 마음이 열려도 그 열정으로 성경공부와 말씀을 전하는 일에 이처럼 능력 있는 사람들을 보기 힘들다” 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특히 조선에 선교사로 와서 좀 안정적이고, 편하게 학교나, 병원 사역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들은 이러한 기관사역보다는 조선인 조력자들과 함께 ‘3개월,4개월씩 조선의 지방을 다니며 전도하는 일’이 가장 큰 기쁨이고 보람이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복음의 역사 소식은 어떻게든 전해지고 알려집니다.
(예) 지난 10월 31일에도 ‘태국 선교사님 가정’을 만났는데, 즐겁게 잘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선교사님 사모님이 우셨습니다. 알고보니 자신들은 코로나로 인해 태국에 거주하기가 어려워서 한국에 나왔는데, 교회를 지키던 현지 장로님이 코로나로 인해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입니다. 태국 사역 초기부터 모든 것을 도와주던 동역자 가정이고, 이번 코로나 기간에도 사역지를 지키면서 정말 충성한 사역자였는데, 이렇게 갑자기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코로나로 인해 장례조차 가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 슬퍼서 갑자기 우셨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저희들에게 돌아가신 장로님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습니다. 귀한 믿음의 소식들을 잘 듣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시간과 국경을 떠나서, 코로나라는 상황이 막혀 있어도 ‘복음’의 역사는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3. 바울 사도는 복음을 위해 어렵고 힘든 가운데 믿음을 지킨 한가정, 한가정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롬 1:9을 보면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양심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로마의 성도들을 위해 기도했다고 고백을 합니다. ‘기도’는 인터넷과 방송이 없어도, 하나님이 영적 전파로 이어집니다.
(예) 저도 군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는 제일 보고 싶은게 사람들이였습니다. 그래서 늘 그리워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한 차원 더 나아가는 삶을 가고자해서 했던 것이 중보기도였습니다. 그래서 월요일부터 주일까지 매일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정했습니다.
월-CCC 선교단체 형제 자매들,
화-저희 대학교에서 함께 신앙 생활을 하는 형제자매들,
수-교회에 있던 청년부들,
목-제가 당시에 관계된 찬양 사역팀을 위해,
금-제가 당시에 선교를 꿈꾸던 일본을 위해,
토-저희 가족들을 위해,
주일-함께 군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지체들을 위해 날짜를 정해놓고, 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철책 근무를 섰기에 계단을 오르고, 내리면서 정해 놓은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서 간절하게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군사 우편이 무료였기에, 바울 사도가 보고 싶은 성도와 교회들을 위해 서신서를 보냈듯이, 저도 보고 싶은 성도들, 형제자매를 위해서 늘 위로와 믿음의 편지를 보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서신을 주고, 받으면서 영적으로 나눈 교제는 굉장히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4. 바울 사도의 로마서를 보면, 정말 교회의 지도자 없이 교회를 지키고, 세워나가는 로마 교회 교인들을 위해서 아주 깊고, 분명하게 로마서를 기록해 놓은 것을 보게 됩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교회의 기초가 잘 세워지지 않아서 교회의 지도자들이 있었음에도 많은 이단들이 나오기도 했고, 잘못된 신앙교리가 자리를 잡아서 교회에 큰 아픔을 주는 일이 많았는데, 바울 사도는 이러한 상황을 잘 알기에 로마 교회를 위해 깊은 열정으로 이 로마교회 교우들의 신앙을 지키도록 이 로마서를 기록했음을 알게 됩니다. 특히 로마서 12장부터는 교인들 간에 일어나는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삶에 대해서도 아주 정성어린 마음으로 이 로마서를 기록합니다. 이 로마서를 읽고 로마교회 성도들이 믿음을 잘 지키고, 믿음이 건강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바라는 마음으로 기록을 했습니다.
롬 1:10을 보면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 11절을 보면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라고 했습니다. 13절에는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라고 하면서 정말 간절하게 만나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기도와 서신서들을 통해서 비대면으로 만나기도 했지만, 대면함을 통해 더 많은 영적인 만남이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대면모임이 되지 않으니까, 온라인으로, 컴퓨터로 비대면으로 대치를 해서 하기는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아쉬움을 토로합니다. 저도 지난주에도 장신대에서 강의를 하는데, 비대면으로 컴퓨터를 보면서 강의를 하니까 학생들의 반응을 살필 수가 없습니다. 강의를 해도 반응이 느껴지지 않으니 전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흥이 나지 않습니다.
목회데이터연구소에서도 코로나 시대 비대면 예배를 드렸던 성도들에 대한 설문조사 가운데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이야기는 “성도들과의 소그룹 모임”과 만남이 너무 그리웠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지 몰랐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바울 사도도 이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여러번 로마교회에 성도들을 만나고자 시도를 했으나, 이것이 쉽게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철저한 거리두기를 했지만, 입을 마스크로 막고,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살았지만, 그러면서 배우고 느낀 것은 그렇게 거리를 두었던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화) 인도에서도 총영사를 만나서 식사를 하는데, 일본이 인도를 위해서 엄청난 지원금을 보내온다는 것입니다. 인도는 그 돈으로 인도 사람들을 위해 도로도 만들고, 시설물도 많은 투자를 하지만, 인도 사람들이 일본에 대해서 그렇게 깊게 감사는 못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돈만 보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한국인들은 선교사나 NGO 사역자들이 힘든 인도인들의 삶의 현장을 찾아와서 만나주고, 같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도와주는데, 일본의 재정 지원과는 비교도 안될 작은 재정이지만, 그럼에도 사람이 와서 함께 얼굴을 대면하고 만나서, 같이 어울려 주는 것을 더 귀하게 여기고 감사를 한다고 합니다.
바울도 그것을 알기에 간절하게 로마교회 성도들을 만나서 대면을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합니다. 로마교회 뿐 만 아니라 여러 지역의 성도들을 항상 만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영적인 필요를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교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해 주는 일입니다.
(예) 2주전에 한 통의 카톡이 왔습니다. 호주와 뉴질랜드 사이에 있던 바누아투라는 섬나라에서 사역하던 선교사님의 카톡입니다. 큰 딸이 고3인데, 대입입시를 위해 체력장을 하는데, 철봉에서 떨어져서 목뼈와 어깨를 크게 다쳤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바누아투는 세계에서 최빈국 중에 하나라 의료시설이 적은데, 병원에 갔더니, 그냥 엑스레이만 찍고 기다려 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연락을 했다고 합니다.
옛날 슈퍼맨 역할을 했던 배우가 말을 타다가 떨어져서 목을 다쳐서 평생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카톡을 받고, 바로 한국 119로 연락을 했습니다. 119에는 해외동포들을 위한 응급의료 상담 서비스를 해 주고 있기에 이 담당자와 선교사를 연결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냥 두어도 되는지, 아니면 긴급하게 후송이라도 해야 하는지를 알아보라고 연결을 해 주었습니다.
여러 자료를 통해, 긴급 후송을 해서 빨리 치료를 해야 위험에서 벗어나기에 결국 에어 앰블런스를 통해 큰 병원이 있는 지역으로 옮겨야 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에어 앰블런스로 가장 가까운 호주의 병원까지 3시간 정도의 거리를 이동하는데, 비용이 무려 6,500만원이 든다고 합니다. 일단 옮기기로 하고, 알아보던 중에 비용을 좀 더 줄이는 방안으로 한 시간 정도의 거리인 뉴칼레도니아로 옮기기로 했는데, 긴급 후송 비용이 2,000만원으로 줄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보호자인 엄마가 같이 동행을 해도 코로나로 인해 뉴칼레도니아에 들어가도 딸 곁에 못 있고, 격리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또 네트워크를 통해 그 지역에 선교사가 있는지 알아보았으나, 선교사가 없는 국가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한인회를 찾았습니다. 한인이 17명이 있는데, 한인회장을 찾아서 통화를 하고, 이 선교사님의 딸의 사정을 이야기 하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긴급하게 영사관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지금은 긴급 치료가 마쳐져서, 위기를 넘기고, 잘 치료를 받으면 이번에 수능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이 선교사 자녀는 의대를 준비하는데, 이번에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신이 앞으로 어떤 의사가 될 것인지를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12월에는 한국으로 들어오는데, 자가격리와 치료를 위해 병원을 연결해달라고 해서, 선교사 가정을 돕는 병원을 연결해 주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돕게 된 배경중에 하나는 작년에 이 가정에 할아버지의 장례식이 있었는데, 그 때 이 선교사님의 딸과 잠깐 만남을 가지고, 인상 깊게 선교지에서 믿음을 가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잠깐의 만남이였지만, 짧은 만남이였지만, 이것이 계기가 되어 나중에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 서로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바울 사도는 그래서 그런지 영적인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너무나도 잘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을 만나는 것을 간절히 사모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6. 바울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로 1;14,15을 보면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라고 했습니다.
사실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를 대면하기 전까지는 나름대로 잘 살았다고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지만, 헛된 삶이였습니다. 사도행전 9장에서 나온 것처럼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대면하고, 그의 삶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오늘을 사는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대면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대면하지 못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대면하도록 우리가 힘써야 할 것입니다.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라는 바울 사도의 간절함을 보게 됩니다.
코로나 기간을 겪으면서 우리가 그 동안 놓쳤던 ‘사람’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함을 다시 한 번 되돌아 봐야 하는 시간을 겪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주신 사람들에 대한 감사를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이번 추수 감사주일에는 더욱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번 코로나 기간 동안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한사람 한사람이 얼마나 귀한지를 더 깊게 새기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코로나 이전에 드렸던 추수감사주일과 다르게 이번 해에는 “하나님이 주신 사람들”이 얼마나 그립고, 귀한지를 절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코로나로 빈교회당을 경험하고, 교회조차 오지 못하는 경험을 하면서, 성도없이 혼자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를 잘 배웠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많든 적든, 한 사람이라도 같이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절실하게 배웠습니다.
코로나 시기에는 ‘목사님이 빈 교회당에서 혼자 설교하고 예배 드리는 장면’을 많이 보게 해 주는 특별한 시기였습니다. 정말 혼자 드리니, ‘미워하는 사람도 없고, 싫어하는 사람도 없고, 좋았다’라고 이야기 하시는 분들은 잘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미우나 싫으나, 그래도 같이 예배드리고, 찬송 부르는 것이 그립다고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들도, ‘한사람’이 정말 그립다고 이야기를 많이 했던 시간 이였습니다.
이 소중한 것을 깨닫게 되는 특별한 추수감사 주일입니다.
결론) 계속되는 코로나 확진자로 사람과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더 높여야 한다는 뉴스를 다시 접합니다. 마스크를 벗고, 사람과 사람 사이가 자유롭게 되어질 날을 간절히 바라는 가운데 겪는 추수감사주일은 이전과는 정말 다르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특별히 초대교회 시절 바울 사도가 로마교회 성도들을 간절히 보기를 원했던 그 바램과 같이, 우리도 이 코로나를 모두가 잘 이기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자유롭게 얼굴 보기를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특히 육체적인 대면함만이 아니라, 아직 그리스도를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이 어려운 시기에 지치고, 낙망하고, 소망 없는 삶의 연속이 아니라, 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소망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대면하게 되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시간이 되어지기를 기대합니다. 그 아름다운 영적인 대면이 주안에서 이어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