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31, 주일설교, 누가복음 209-18, 아들을 보낸 이유


설교 동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sr3oFThVWzA

 

 

코로나 19의 시대를 겪으면서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연약한 존재인지를 매일 확인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 초기에는 마스크한 장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약국 앞에 긴 줄을 늘어서기도 하고, 일주일에 제한된 마스크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우리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코로나 코로나 백신을 얻기 위해 마스크에 못지않게 눈과 귀가 백신 접종 뉴스에 맞춰진 현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소유욕은 어릴 적부터 서서히 자라납니다. 그 나이에 맞게 가질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제가 어렸을 때에는 딱지, 구슬을 듬뿍 가지고 다니는 아이들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2학년 때 군인 모형 조립식 장난감을 모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총을 쏘는 군인 모습, 엎드려 전진하는 군인의 모습, 대포를 쏘는 군인 모습등을 하나씩 모아 놓고, 책상위에 모아 놓은 군인 조립식 장난감비행기, 탱크와 같이 쫙 펴서 전시를 해 놓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뿌듯했습니다. 그런데 그 행복이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제가 용돈을 모우고,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그 모든 군인 모형 조립식 장난감 전체를 우리 어머님이 이사 갈 때 통째로 버리셨습니다. 제가 공부안하고, 거기에 빠져 있고, 하나씩 구입할 때 적지 않게 드는 돈의 씀씀이를 보시고, 저희 어머니께서 제게 그렇게 귀중한 것을 저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버리셨습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속이 상합니다. ^^

 

사람은 나이에 맞게 자기가 가지고 자 하는 것을 소유하고 싶어 합니다. 어린이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지 못하면 불안해하고, 초조해집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돌잔치를 할 때부터 뭔가를 붙잡도록 사회적 메시지를 너무나 익숙하게 전수를 받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자녀들은 자녀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모든 사람들은 뭔가를 소유하고 싶어 하고, 그 무언가가 없으면 괴로워합니다.

 

성경도입

오늘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한 비유를 말씀해 주십니다.

한 주인이 먼 여행을 떠나면서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세로 맡기고 간 이야기를 해 주십니다. 세로 맡겼으니, 그 땅에서 일을 한 농부들은 당연하게 주인에게 세를 바쳐야 했습니다. 주인은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 포도원의 소출의 얼마를 받으려고 종을 보내었습니다.

20:9-10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농부들은 주인이 보낸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거저 보내다라는 본문을 영어 성경으로 보면 empty handed” ‘빈손으로라는 표현을 사용 했습니다.

주인은 빈손으로 돌아 온 종을 보았는데, 빈 손 만이 아니였습니다. ‘많이 얻어맞았다는 이야기까지 듣고, 많이 놀랐을 것입니다. 주인은 종들이 뭔가 무례하게 했거나, 실수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있었는지, 너그러운 마음으로 종을 한 번 더 보냅니다. 그런데 11절에는 다른 종들을, 그도 몹시 때리고... 능욕하고”, 12절에는 세 번째 종도 상하게 하고, 내쫓고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농부들은 왜 그랬을까요?

남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받으면, 그 때부터 달라집니다. 무언가를 받는 순간 주인처럼 되어집니다. ‘주인과 주인이 아닌 사람의 차이는 많이 다릅니다. 무언가 없었던 사람이 갑자기 무언가를 가지면 굉장히 기분이 좋습니다. 그리고 마치 자기가 주인이 된 것과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처음에는 주인이 귀중한 것을 맡긴 것에 감사를 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주인에 대한 생각보다는 자신의 손에 쥐고 있는 그 순간만을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주인을 잊게 됩니다.

그러다가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되는 날이 다가오면 불안해합니다. 그 이유는 좀 더 누리고 싶고, 가지고 싶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인으로부터 포도원을 잠시 맡은 농부들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땅에서 무엇인가의 열매를 본다는 것은 그 기쁨이 매우 큽니다. 그 열매가 부를 쌓게 하고, 가족들에게 행복을 주게 될 때, 더욱 그 기쁨은 큽니다. 그 기쁨을 위해서 열심히 농사를 지었는데, 어느 날 주인이 종을 보내서, 농사를 지은 얼마를 세금으로 내라고 하니, 좀 당황했을 것입니다. 고대 사회이기에 지금처럼 넘치는 물품이 아니라, , 두 가지 물품이 전체 집안을 좌지우지 했을 것인데, 농부에게 포도나무의 소출은 집안의 핵심 수입원인데, 그것을 달라고 하자, 정신을 잃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고생해서 지은 소출인데, 이것을 감히 가져갈 수 있냐고 하면서, 그 동안 사용한 것에 대한 감사 보다는, 주인을 생각하기 보다는, ‘종 자체를 보고, 무시하고, 엄청 강하게 대응하고, 다음번에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심히 때리고, 욕하고, 다시는 오지 못하도록 쫓아내었다고 합니다.

 

주인의 마음

주인은 그래도 참 너그러운 사람같습니다. 종들이 이렇게 세 번이나 맞고, 내어 쫓김을 당하면, 바로 보복을 하고, 그 농부들을 다 내어 쫓아야 되는데, 최후의 방법을 하나 더 씁니다. 그것은 바로 13절에 나온대로 포도원 주인이 이르되 어찌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혹 그는 존대하리라 하였더니라고 했습니다. 참 마음이 넓은 사람이였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라고 생각을 했을 때, 답은 하나였습니다. 주인이 그 농부들을 믿었고, 그래도 끝까지 믿어 주었기 때문에, 그들을 존중했기에, 끝까지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대신해서 보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농부들은 그 믿음을 깨어 버렸습니다. 그것도 철저히 깨뜨려 버렸습니다.

20:14,15을 보면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일어나지 말아야 될 상황까지 일이 크게 벌어졌습니다. 인간의 욕심이 결국 되돌릴 수 없는 비극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적용) 우리가 잘 아는 예수님의 비유였지만,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지 않습니까?

첫째는 우리의 하나님도 우리에게 포도원의 주인처럼, 모든 것을 농부에게 맡기듯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맡겨 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님에도 주님이 주신 것들을 마치 오늘 본문의 포도원 농부처럼 당연하게 우리 것처럼 쓰는 것들이 많습니다. ‘공기, , 날씨, 모든 것들, 그리고 우리의 시간, 우리의 몸, 우리의 삶의 구석 구석을 보면, 우리가 노력해서 얻은 것과 비교도 되지 않을 엄청난 것들우리는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얻었습니다.

주인 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것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여,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사용하기를 바라셨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가진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이 아니라 나로부터 난 것이라는 착각속에 빠져서 살고 있습니다. 내가 노력해서 돈을 벌고, 내가 노력해서 이만큼 이루고 살았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기에 모든 것의 주인은 인 줄 알고 살았습니다. 그랬던 우리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직장도 가지 못했고, 학교도 갈 수 없었고, 교회도 올 수 없었습니다. 작년 이 맘 때 발병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처럼 전세계를 다 뒤집어 놓을 줄 아무도 몰랐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 많아도 순식간에 아무 소용이 없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긴 마음이 이제 다시 예전으로 회복되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더욱 귀중하게 여겨질 것입니다. “마음 놓고 마스크 벗고, 식당에 가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면서 밥을 먹고, 아이들 쓰다듬어 주는 시대가 회복이 되면”, 지금 코로나 시대를 겪은 사람들은 그것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기억할 것입니다.

 

) 저희는 인도에서 선교를 하러 갈 때, 많은 물건을 못 가져갔습니다. 40대 초반이면 그래도 왠만한 가정 살림이 다 있었는데, 국제 이사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왠만한 짐들은 다 처분하고 책과 옷 정도만 인도로 보냈습니다. 그것도 항공은 비싸서 배로 보냈습니다. 오는데 90일 정도가 걸렸습니다. ‘인도에 가서 아무것도 없는 빈집에서 시작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필요한 용품을 하나씩 구하게 됩니다. 하루는 뺀치가 없어서, 하루 종일 그것 하나 사러 다닌 적도 있었습니다. 현지 언어도 잘 안 되엇고, 지리도 몰라서 하루 종일 돌고 돌다가 공구를 파는 곳을 찾고, 늦은 저녁 오토바이 릭샤를 타고 집에 돌아 왔는데, 그날 너무 기뻐서 잠이 안 왔습니다. “가 이렇게 고생해서, 어렵게 구한 물건에 대한 자부심이 컸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도 가게들을 알아가고, 구입 방법들을 파악하게 되면서 점점 살림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해외에 많은 주재원들이 나간 한인 사회는 3년 정도 일을 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쓰던 짐을 처분하는 일들이 많았기에 서로 기증도 하고, 나눠 주는 일이 많습니다. 저희도 살림이 꽤 많이 차서 이제 좀 편안하고, 여유가 있게 될 때 즈음에, 인도 정부에서 선교사들을 추방하는 사태에 휘몰리게 되면서, 저희도 모든 것을 두고 한국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가지고 오는 비용도 만만치 않고, 한국에 둘 곳도 없었습니다.

물건들을 처분하는데, 어렵게 구한 물품들이라 더 아까웠습니다. 특히 식재료들은 거의 가져 오지 못하고, 이웃 선교사님들께 거의 다 드렸습니다. 주변 인도인들에게 팔기도 하고, 주변 인도 학교나 사역지에 기증을 하면서 짐들을 처분했습니다.

특별히 오랫동안 모으고, 가지고 있었던 목회자료와 책자 5,000권을 모두 폐기처분 하고 왔어야 되었습니다. 목회자들이 다른 소유욕은 없어도 책에 대한 욕심은 많은데, 모든 것을 잃는 것 같은 느낌이였습니다. 짐을 처분 하면서 깨달은게 있었습니다.

모든 물건은 사는 순간 버릴 것이 되는 것이다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물건은 필요할 때 잠시 가지고 있다가 버릴 것이지, 영원히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깨달음을 가지고, ‘한 사람당 여행가방 두 개씩들고, 한국으로 돌아 왔습니다. 이제 인도에서 온지 3년 정도가 되었습니다. 역시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한국 생활이였지만, 지금 저희 집에는 또 꽤 많은 살림들이 채워졌습니다. 한국에서 아프리카로 선교 가시는 선교사님이 아무것도 없이 안식관에 머물던 저희에게 주고 싶다고, 기본적인 살림들을 다 주고 가셨습니다. 얼마를 좀 드릴려고 했더니, 선교사님께서는 온전히 드려야 하나님이 우리가 아프리카로 가서 사역할 때 축복으로 채워주신다고, 팔면 중고용품이라 얼마 안되지만, 필요한 분에게 온전히 드리면, 파는 것 이상의 큰 가치가 생긴다고 하시면서 저희에게 다 주고 가셨습니다. 선교사님도 한국에서 정착을 하시려고 좀 좋은 것을 구한다고 하시면서 구입한 1년도 안 된 물품들이 대부분이였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배운 것은 내가 끝까지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것은 없구나”, “잠시 필요할 때, 기회가 주어질 때 사용하는 것이지, 그것이 영원한 것이 아니기에 거기에 미련을 두고, 모든 마음을 두고 사는 것은 미련하구나! 라는 것을 삶으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간혹 그것을 잊고 우리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움켜잡을 때가 많습니다. 특별히 좋은 것이면 더 내려 놓기 쉽지 않습니다. 지금 쥐고 있는 것이 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이면, 우리는 더욱 내려놓기 쉽지 않습니다. 특별히 물건 뿐만 아니라, 지위나 권력도 내려 놓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지위와 권력의 경우는 더욱 어렵습니다.

 

서울대를 나오고, 하버드대학교에 중동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용규 박사는 박사학위 취득 후에, 열려 있는 수 많은 기회들을 내려놓고, 몽골의 한 작은 대학교에 가서 평범한 교수로 사역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셨는지, ‘내려놓음이라는 책을 썼는데,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덕분에 몽골국제대학교에 많은 관심이 모였습니다. 인도를 방문했을 때 함께 지냈었는데, 몽골국제대학교에 더 오래 있으면 자기 때문에 유명해지고, 알려져서, 자칫하면 자기가 욕심을 부리고, 권력욕심이나, 지위에 대한 욕심이 날 것 같아서, 이번에도 다 내려놓고, 인도네시아로 가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얼마 전에도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새롭게 시작한 인도네시아 대학에서도 하나씩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보고를 해 주었습니다. 참 자랑할 것 많은 분인데, 같이 지내면 지낼수록 겸손하십니다. 철저히 자기를 내려놓습니다.

 

우리는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 삶에 다가 온 지난 1년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어렵고 힘들수록 더욱 철저하게 마스크 한 장 이라도, 백신 하나라도 더 챙기려는 국가간의 이기주의, 여러 개인들의 도를 넘는 욕심의 현장들을 같이 경험했습니다.

특별히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를 통해서는 시리즈처럼 이어지는 기독교 공동체를 통해 이어지는 사회적인 이슈에 기독교가 중심이 되어서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의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모든 현장의 이야기들의 중심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잘못 사용한 것들이 주원인이 됩니다. 하나님의 방법과 뜻대로 사용했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 하나님의 것을 사유화하거나, 자신을 위해 사용할 때, 그 개인뿐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 기독교까지 이어지는 어려움을 우리는 매일의 뉴스를 통해 보고 있습니다.

 

본문 재도입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것을 제대로, 온전하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이 이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이야기 하신 이유도, 20:1,2절부터 시작이 됩니다.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라고 따졌습니다.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는데,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예수님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자신들은 오랜 가문의 전통과 사회적 시스템으로, 권위를 얻어서 이렇게 행동을 하는데, 예수님의 경우에는 젊은 친구가, 너무 영향력 있게 움직이니 이것이 배가 아팠던 모양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에게 이 포도원 농부의 이야기를 하면서, 말씀을 통해 백성들을 잘 가르칠 것을 맡겨 놓았더니, 그것으로 자기 사유화를 해서, 자기 권익만 챙기고, 이권을 붙잡고, 기득권이 되어서 오히려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는데, 걸림돌이 되게 하는 모습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종들을 여러번 보낸 것은 하나님께서 그때마다 보내신 선지자들을 이야기 하고, 포도원 주인의 아들은 바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적용) 지금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이나, 사역들, 부르심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맡은 일인데, 하나님을 빙자해서 내가 이익을 누리거나, 하나님을 뒤로하고, 내가 앞서 있는 것은 없습니까? 하나님의 일이라고 이름만 걸고, 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내가 갖고 싶은 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끼워 팔기 식으로 집어넣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도 충분히 포도원의 농부처럼 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종을 능욕하고, 포도원 주인의 아들을 잡아 죽여서, 아예 소유권을 옮겨버리자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세워서, 감히 빚댈 수 없는 하나님을 쉽게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최근까지 이어지는 계속적인 기독교인들의 무리한 사건 사고 보도에, 우리도 언제든지 한배를 탈 수 있음을 기억하며, 우리는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고, 일을 주시고, 그 일을 하도록 달란트와 은사를 주신 주인되신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고, 그 관계를 철저히 되새겨야 합니다.

 

두 번째는 이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통해 보여 주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주인의 종들에 대해서 능욕하고, 때리던 종들을 보면서도, 계속해서 참고, 두 번째, 세 번째 종을 보낸 포도원 주인의 마음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그렇게 어려움을 주던 포도원 농부들임에도 불구하고, 포도원 주인은 자신의 가장 아끼는 아들을 보내 주어서 기회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분명하게 보여 주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비유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 도저히 회복이 불능 일 것 같은 상태임에도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별 볼일 없고, 가치가 없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아끼는 자신의 자녀를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예화) 초기 한국 선교사들 가운데 에비슨 선교사라는 분이 계십니다. 알렌 선교사를 통해 설립된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을 제대로 살리고, 의료교육 기관으로, 병원으로 끌어 올린 에비슨 선교사는 토론토 의과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조선에 선교사로 오게 됩니다. 고종 황제의 특별한 배려로 설립된 제중원이였기에 이 에비슨 선교사는 고종의 주치의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던 가운데 1894년 전염병이 심하게 돌고, 에비슨 선교사는 우리가 TV에서 자주보던 것과 같이 질병관리본부장으로 일을 하게 됩니다. 그 때 백정 박가라는 사람이 있었고, 심한 전염병으로 거의 죽어가던 상황이였습니다. 당시 백정은 최고로 천대를 받던 사람이였고, 사람 대접을 못 받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없습니다. 그래서 알려진 이름이 박 가입니다. 그런데 에비슨 선교사는 어떤 사람입니까? 백정과 완전히 반대가 되는 왕의 주치의 였는데, 그런 선교사가 와서 이 박가를 치료해 줍니다. 이 박가는 난생처음 선교사를 통해 사람다운 대접을 받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출석하게 됩니다. 나중에 이 박가는 박성춘이란 이름을 얻고, 승동교회 장로가 됩니다. 특별히 기독교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모든 이를 차별하지 않는다는 핵심적인 정신을 제대로 이어 받고, 신분 차별 철페 운동에 앞장을 섭니다. 백정이였지만, 독립협회에서 시민대표로 강사가 됩니다. 그 아들 박서양은 세브란스 의학교 1회 졸업생으로 교수로, 그리고 만주에서 병원을 개원하면서 독립군의 최초 주치의로 일을 하게 됩니다.

이 모든 배경의 시작은 고종의 주치의였지만, 사람을 가리지 않고, 당시 사람들이 사람취급도 하지 않은 백정에게, 하나님의 차별 없는 사랑으로 다가간 것이 계기가 된 것이였습니다.

계산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그 누구도 관심이 없던 사람들, 심지어는 포도원의 농부처럼 차라리 사랑을 주지 않았어야 될 사람에게도 하나님은 차별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절대로 포기 하지 않고, 가장 큰 사랑, 아낌없는 사랑으로 우리에게 다가 오십니다.

 

적용) 여러분! 우리에게 다가오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제대로 보지 못해서, 깨닫지 못해서, 그 엄청난 사랑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상황임에도, 우리가 주님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포도원 농부와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특별한 상황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그 특별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데, 우리가 포도원 농부처럼 주인을 보지 못하고, 자기 앞에 있는 현상만 보다가, 진짜로 봐야 것을 못 보는 상황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포도원 농부의 어리석음을 반복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분명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분명하게 봐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아와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분명하게 경험해야 합니다. 직감이나, 느낌으로, 자기가 경험한 것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는 자리,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 하나님과의 기도의 자리, 하나님이 불러 주신 자리에 있을 때, 이 하나님의 사랑을 분명하게 듣게 됩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하나님 아버지는 심판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포도원 농부는 이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너무 쉽게 생각을 했습니다. 주인에 대해서 너무 안이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포도원 농부들은 이 자리를 뒤로하고, 자기 일만 하다가 결국 포도원 농부들은 포도원 주인이 보내는 메시지를 놓쳐 버렸고, 잘못되게 행동했고, 결국 최악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20:15,16에는 그러한 그들의 최후가 소개됩니다.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주인이 가진 힘이 제대로 발휘되는 순간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당시 제사장,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말씀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자신의 이득과 기득권을 앞세워서, 오히려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는 것을 방해하는 그들에 대해서 분명하게 경고하십니다.

 

20:17,18을 보면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버림을 당하신 예수님이 후에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어 하나님의 귀한 사역을 연결하고, 이으실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결론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함과 동시에 심판주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2021년 이제 코로나라는 긴 터널을 지나 이전에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특별한 경험과 깨달음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이 당겨졌고, 이것이 코로나 시대를 이길 힘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도 하나의 도구일 뿐 진정한 이 위기의 시대의 극복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 세상의 주인이 분명히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 진정한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함에도, 때로는 포도원의 농부처럼 치명적인 실수와 죄를 지을지라도,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고, 가장 사랑하는 자기의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어 우리를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아들을 보내신 이유입니다.

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하게 마음에 모시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주장하도록 그 분께 여러분을 전적으로, 온전히 맡기고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코로나로 정말 여러 분야에서 어렵고, 힘든 시기를 걷고 있습니다.

그런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그의 가장 아끼는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여러분의 가정에, 여러분의 직장과 사업체에, 혹 여러분이 병상에 있으시거나, 코로나로 인해 일어날 수 없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계실지라도, 혹 가족관계가 깨어졌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거나, 회복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 계실지라도,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에게 보내 주십니다.

그 예수님이 계시면 그 어떤 어려움에서도 우리가 이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아들을 보내신 이유입니다. 그 예수님을 포도원의 농부처럼 놓치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