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보기 - https://www.youtube.com/watch?v=EVktv8KeMkg
하나의 드라마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것들이 필요합니다. 항상 있어야 되는 것은 주연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주연이 주연이 되게 하려면 조연이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주연을 하고 싶어하지 내가 찌그러지고, 남이 높아지게 하는 조연을 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이 조연은 간혹 주연 배우의 친구나 좋은 조연으로 나올 때도 있지만, 나쁜 조연으로 나오게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배우는 주연도 아니고, 조연도 아니고 아예 단역배우로 대사도 없이 나오는 사람도 많습니다. 존재감이 거의 없습니다. 촬영장에 가보면 이들은 주연 배우들의 일정에 맞춰서 잠시 출연하는 일정을 위해 너무나 긴 시간을 대기한다고 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화면에 얼굴이라도 나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출연한 사람들의 숫자보다 훨씬 많은 제작진들이 있습니다. 똑같은 장소에서 수고를 해도 드라마 자막에 1초도 안되게 그냥 확 지나가는 존재가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사람이 함께해야 한 편의 드라마가 만들어집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사순절에 많이 읽는 본문입니다. 오늘은 이 본문을 드라마로 한 번 구성해 보았습니다.
1.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가롯유다 입니다.
가롯유다는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성경의 내용들을 확인해 보면 가롯유다는 예수님의 신임을 받은 자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재정을 담당했었습니다. 재정은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습니다. 공동체에서 그래도 신뢰할 만한 사람에게 보통 재정을 맡깁니다. 예수님의 기적과 능력과 가르침을 보고 가룟유다는 자신이 생각한 꿈이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제국에 지배를 받아서 억눌리고, 빼앗기고,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겪는 이스라엘 백성을 정치적 구원으로 해방시켜 주실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늘 예수님을 지켜보던 그에게 시간이 지날수록 예수님은 실망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이야기하시지 않고, 하늘나라를 말씀하시고, 권위에 짓눌려 있던 백성들에게 섬기는 자에 대한 말씀을 하시니, 답답했습니다. 가룟유다의 기대와는 다른 삶을 사시는 예수님을 가룟유다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주목해 볼 성경구절이 있는데, 요한복음 13:2 -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누가복음 22:3 -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라고 했습니다.
결국 가룟유다는 은 삼십에 예수님을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팔아 버립니다. 그의 인생은 안타깝지만 악역으로 사용이 됩니다.
마가복음 14:21에는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라고 했습니다.
결국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게 되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배신자’라는 악역으로, 그 마지막 결말도 ‘자살’로 비참합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악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으로 사용이 되어집니다. 예수님이 가룟유다의 배신으로 잡혀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게 됨으로, 우리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실현이 되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분명한 결론을 하나 얻습니다. 그것은 바로 “잘못 쓰임”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잘 쓰임을 받아서 축복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잘못 쓰임을 받아서 사람들 입에 두고 두고 오르면서, “그렇게 살면 안되”라는 사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그러한 예가 얼마나 많습니까?
최전방 군에서 복무를 하는데, 아침마다 5분 정도 지난날의 사고 사례를 소개해 줍니다. 내용을 보면 제대를 얼마 앞둔 병장이 훈련 도중에 갑자기 배가 아파서 화장실을 가고 싶었는데, 적당한 곳이 없어서 지뢰밭에 살짝 들어가 변을 보다가 정말 큰 변을 당했다는 사고 사례를 아침마다 읽어줍니다.
운전 교육을 받을 때도 운전을 잘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뭐 그렇게 큰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런데 운전을 조금이라도 잘못하게 되면 아주 큰 일이 나는 것으로 교육을 합니다. 순식간에 잘못한 일로 엄청난 불행이 온다는 것을 엄청나게 강조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이렇게 잘못된 사례로 사용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행동과 삶이 남들에게 알려졌을 때 잘못 사용 되어지면 우리 인생이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가룟유다와 같이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위해서 사용되기는 했지만, 나쁜 도구로, 악역으로 사용이 되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혹시 우리 안에도 가룟유다와 같은 모습이 숨어있지는 않은지 이번 사순절 기간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도 방심하거나, 죄를 쌓아 놓거나, 잘못된 생각들을 오래 붙잡고 있으면, 사탄 마귀의 공격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룟유다의 어떤 점이 사탄, 마귀가 틈을 타게 된 요소였을까요? 가장 치명적인 실수는 “예수님을 자기 생각대로 믿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바라는 하나님으로 기대했습니다. 가룟유다는 정치적인 메시야로 상상을 한 것처럼, 어떤 이는 나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으로, 어떤 이는 나의 약함을 채워 주시는 하나님으로, 어떤 이는 나의 억울함을 풀어주시는 하나님으로 다 각자의 방식대로 자기가 바라는 하나님을 만들어 놓고 예수님을 따르려고 합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이루실 수도 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내 안에 가두어 놓고, 내가 하나님의 역할을 주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더 크고 위대하게 역사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제한하고, 내가 기대하고, 바라는 대로만 움직이도록 합니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자기 마음대로 믿는 신앙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도 자기가 원하는대로 되지 않으면 참을 수 없습니다.
목사나 교역자도 자기가 기대하는대로 해 주지 않으면 견디지를 못합니다.
성도 간에도 자기가 정해 놓은 기준에서 벗어나면 사람 취급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들도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인도하심을 따르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자기 중심적으로 사역하면, 사역자 일지라도 위험합니다.
예) 제가 신앙 인격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CCC에서 제자훈련을 받으면서 신앙훈련을 쌓았습니다. 인격적 대화, 하나님의 사역을 위한 질서와 성도간에 나눔과 배려가 참으로 잘 녹여진 신앙공동체에서 성경공부를 체계적으로 하면서 믿음이 자랐습니다. 대학고 1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한 저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 그런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1년 정도 뒤에 군종병이 되었는데, 제가 1,500명 정도의 병사를 섬기는 연대군종이 되었고, 같이 동역하는 400명 정도의 병사들을 섬기는 대대군종이 파트너로 정해졌습니다.
똑같이 교회를 섬기는 직책인데, 서로가 너무 달랐습니다.
저는 주로 아침에 일어나서 큐티를 하고, 성경공부를 하면서 믿음을 키우고, 사역을 할 때는 계획표를 짜서 역할을 나누고 대화를 하면서 사역을 하는 스타일인데, 함께 일하는 대대군종은 기도원 원장 아들입니다. 이 친구를 철야 예배 스타일을 좋아합니다. 금식을 좋아해서 군에서도 툭하면 금식을 합니다. 기도원에서 많은 신비한 은사들과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자랐던 친구입니다. 사역을 해도, 계획을 세우고 일하지 않고,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일을 한다고 합니다.
저녁에 전방에 근무를 서는 병사들을 전도하러 가면 저는 밝은 얼굴로 따뜻하게 차를 들고 가서 “하나님은 형제님을 사랑하시며 형제님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라고 전도를 하는데, 이 대대군종은 병사들을 만나면 영적인 매서움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눈빛으로 “예수 천당 불신지옥, 당시 예수 안 맏으면 지옥가!”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정말 서로 완전히 반대가 되었습니다. 같이 내무반에서 잠도 자야 하고, 계속해서 예배를 섬겨야 하고 도역해야 하는데, 정말 힘들었습니다. 결국 오랫동안 말도 안 하고, 불편함이 오래 갔습니다. 군인 교회 사역이 힘든게 아니라, 나와 다른 그 대대군종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서로 힘든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기도 가운데 극적으로 서로를 용납하고 주안에서 화해를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사회생활도 적은 어린 나이의 두 사람이 2,000여명의 장병들의 신앙생활을 지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습니다. 저희 부대에 영적인 일들이 많아서 종교점호라는 것으로 병사들 2/3가 최전방임에도 예배를 드렸고, 군이지만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새성전을 지었습니다. (1991년 당시 1억에 가까운 헌금이 지원이 되었습니다.) 병사들 찬양팀을 만들어서 엄청난 부흥과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는데, 이 모든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서로 다른 신앙 인격을 가진 저희들을 동역자로 붙여 주셔서, 서로 다른 모습과 스타일이지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아멘....)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저희는 서로의 다른 모습을 사역의 도구로 배웠습니다. 기도원 원장님 아들도 늘 여러 기적과 축사사역을 하던 부모님의 사역을 보던 그 형제님은 제가 체계적으로 큐티를 하고, 신앙을 관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중에 이런 부분을 많이 적용하고 나중에 미국에 유학을 갔다는 이야기까지 들었습니다.
저도 1대 신앙이고, CCC에서 얌전하고 체계적으로만 신앙생활을 하던 저에게 새로운 영적인 세계의 흐름도 배우고, 뜨겁게 기도하고, 간절이 기도하는 모습, 다양한 은사들을 경험하고 배웠습니다.
저는 기도제목을 종이에 써서 조목조목 기도하는데, 그 대대군종은 몇일째 기도를 하다가 입술이 다터져서 기도를 한 번 하고 나면 성경책에 피방울이 다 터져 있습니다.
이렇게 다른 상대를 만난 덕분에 하나님이 제게 주신 장점 중에 하나는 저와 다른 스타일의 사람들과 동역을 잘합니다. 지금 사역하는 KWMA에는 각기 다른 15개 교단, 143개의 단체, 38개의 산하기구가 있습니다. 169개국에 22,225명의 각기 다른 나라의 선교사님들과 각기 다른 신학교와 각기 다른 선교훈련을 받은 선교사님들이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들이 많은데 이것을 잘 수용하여 연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는 일이 제가 해야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하니까 오래전부터 미리 잘 훈련을 시켜 주신 것 같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나와 다른 사람도 있고, 나와 다르게 처리하는 사람도 있고, 내가 하려는 방식과 다른 사람도 만나게 됩니다. 나와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조금 다르다고, 정죄하고, 비난하고, 품지 않으면, 어쩌면 우리도 가룟유다와 같은 위기를 경험할지도 모릅니다. 가룟유다는 자기 생각으로 가득찬 잘못된 마음과 생각으로 예수님 곁에 있으니, 이 세상에 가장 귀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팔아 버리는데, 최악의 악역으로 잘못 사용이 되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우리의 자녀들과 다음 세대 앞에서 이렇게 잘못된 사례로 사용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 안에서 분명하게 주님을 보고, 하나님의 역사를 볼 줄 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급하게, 내 생각만 가지고, 내 뜻대로만 생각하면, 우리도 또 하나의 가룟유다가 될 수 있습니다.
찬송가 585장 “네 주는 강한 성이요” 라는 찬양을 부를 때 우리는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 수 있습니다.
1. 내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옛 원수 마귀는 이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2.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 할 수 밖에 없도다 힘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 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3. 이 땅에 마귀들 끓어 우리를 삼키려 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아멘
하나님은 이런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에게 이를 피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도구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을 보여 주시는 것이 바로 마 4장의 내용입니다.
마 4:1,2을 보면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라고 하셨습니다. 이 광야에서 예수님은 마귀의 모든 시험을 말씀으로 이겨 내셨습니다. 사탄, 마귀의 공격 포인트는 굶주리고, 지치신 예수님이 조금만 자기 생각을 하면서 살짝 타협을 할 내용들이였지만,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으로 이겨내셨습니다.
첫 번째 시험이 나오는 마 4:3에는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라고 했을 때에는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고 하시면서 신명기 8:3을 인용하셨습니다.
두 번째 시험에서는 마 4:5에는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라고 하였는데, 시 91:11,12의 말씀인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라고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세 번째 시험에서는 마 4: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라고 했는데, 신 6:13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라고 하시면서 세 번의 시험 모두, 다른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말씀으로 이겨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힘과 무기입니다. 가룟유다도 자신의 생각을 예수님께로 가지고 와서 예수님 앞에 가지고 나오고, 평소에 예수님의 삶을 제대로 보았으면,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고, 집중하고, 말씀을 잘 따랐다면 이렇게 악역으로 쓰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잘 이해했다면 예수님은 로마의 정부를 뒤엎는 정도가 아니라, 온 세상을 사랑으로 뒤덮을 하나님의 역사를 분명하게 발견하였을텐데, 자기 생각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말씀을 제대로 보고,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에 분명히 귀를 귀울여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말씀하시는 주의 음성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있다면, 그 어려운 문제를 혼자의 생각으로 겹겹이 쌓아 놓치 마시고, 주님 앞에 가지고 나아오십시오. 그리고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래야 우리가 가룟유다처럼 위험에 처하지 않게 됩니다.
지금 뭔가 자기 생각대로 안된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있고, 내뜻대로 안되어서 분하고, 속상하신 분이 있으십니까? 가룟유다처럼 엉뚱한 곳, 잘못된 생각, 자기 생각으로 나아가지 가지 마시고, 말씀의 자리로 나아오십시오. 말씀을 펴서 읽고, 말씀 속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과 나를 향해 가장 좋고 귀한 것으로 채워 주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며, 내게 임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며 엎드릴 때, 여러분 앞에 놓인 사단 마귀의 함정을 피하고, 영적인 위기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 놀라운 역사를 기대하며,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베드로의 역할은 어떨까요?
막 14:47을 보면 “곁에 서 있는 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 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18:10에는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라고 했습니다.
사실 죄가 없는 자기 스승을 이렇게 체포하려고 할 때, 특히 무장한 로마 군인에게 잡혀가게 될 것을 알았으면, 제자로서 인간으로서 이렇게 하는 것은 틀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의리”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고, 해야되는 일이였습니다. 인간적인 도리로는 당연히 해야 되는 일이였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그게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마 26:52-5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을 우리도 간혹 경험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교회를 위해서 일을 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결과가 다르게 나타날 때가 많습니다.
예) 대학교 1학년 아동부 보조교사, 연극지도
모세의 출애굽 장면 묘사, 홍해가 갈라지는 장면 연출, 성경을 전혀 모르던 상태, 모세의 지팡이에 불꽃놀이 장착, 아동부 4학년 학생이 하늘을 향해서 들도록....예배당 안에 하늘 위치가 강대상 휘장....불꽃이 튀더니 불이 붙기 시작, 연기가 자욱....급히 쫓아 올라가서 불을 끔. 휘장에 구멍이 남...., 관리 집사님께 죄송, 열심히 해 보려고 했는데...
예) 베트남 단기선교 – 대본은 공산국가라 선교가 불가, 정탐하고 밟은 땅을 기도만 하기로 함. 그렇게 계획을 잡고 선교훈련을 갔는데, 두 명이 자꾸 딴짓을 함, 처음 비행기타고,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베트남인데,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식당에 가기만 하면 밖에서 선물 나눠 주면서 전도. 결국 베트남 공안에 추적 당하고, 하마터면 우리랑 만났던 지하교회 목사님들 다 붙잡혀 갈 뻔함. 열심히 하는 것 같았지만, 대본과 틀림, 이 두 사람의 특징은 선교훈련 받을 때 잘 안나옴. 대본을 충분히 못 읽음.
우리의 삶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
이것을 피하려면, 대본을 잘 읽어야 함. 주님의 음성을 잘 들었으면 될 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몇 번이나 십자가 죽음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눈치를 주셨음. 그럼에도 깨닫지 못하고,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큰 고통을 앞두고 기도의 자리에 함께 하기를 요청하셨으나 잠을 이기지 못하고 잠들어 버림. 그랬더니 결국 이런 일이 발생, 평소에 주님이 알려 주셨던 말씀을 잘 듣고, 놓치지 않았으면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세번째는 막 14:50-52을 보면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에 대해서 여러번 이야기하고, 영적인 대본을 알려 주셨음에도 가장 가까이에 있던 제자들은 가장 최악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제자들의 모습 가운데 가장 바닥을 보여 줍니다.
도망간 제자들은 의리도 없고, 양심도 없었습니다. 자기 자신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도망 가는 모습의 일부였지만 가장 비참합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잠깐 잠깐 출연하는 단역 배우들이 있습니다. 큰 역할은 아니지만, 그 짧은 순간에 보여준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초라했습니까?
우리는 이러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평소에는 주님 앞에 잘하는 것 같지만, 절박한 순간이나 위기의 순간이 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절박한 문제로 어쩔 줄을 몰라 다 벗은 몸으로 도망간 제자와 같이 지금 우리는 꽁꽁 감추고, 포장했다고 생각하지만, 주님 앞에서는 벌거벗은 것처럼, 주님 앞에서 도망간 모습처럼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마지막으로는 이 모든 상황속에도,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대본을 위해, 묵묵히 주의 뜻을 이루시면서, 예수님 곁에서 그렇게 많은 기적과 삶을 나누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던 제자들이지만, 그 제자들을 하나 하나 다시 거두어 들여서, 주님의 증거, 제자로 삼아 주셔서, 그들에게 가장 복된 하늘 사명 주시고, 그 일들을 감당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이것을 통해, 모든 이야기를 완성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합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의 삶의 현장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이 그 모든 상황속에서 엉망이고, 좌절되고, 완전히 무너진 상황에서도 그 모든 이야기를 하나님의 뜻과 계획대로 이루셔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결국에는 승리하도록 도우시는 주의 은혜가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이 귀한 은혜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결론
코로나 19로 그 어느때보다도 힘들고, 어려운 지금의 시기에,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어떤 역할, 대본을 맡기셨습니까? 맡기신 역할을 잘 감당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혹시 쓰임을 받기는 받는데 잘못 쓰임을 받고 계시지 않습니까? 쓰이기는 하여도 인간적인 방법으로 쓰임을 받아서 안하느니만 못하게 오히려 주님의 사역과 일에 걸림돌이 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겉으로는 꽁꽁 감싼 것 같지만, 벌거벗은 채로 주님 곁은 피해 도망가는 제자의 모습처럼, 속이 비어서 내실없이 주님과 거리두기가 깊어지신 분은 없습니까?
이제 우리가 오늘 본문을 통해 잘 깨닫고, 이러한 어리석음을 다시 범하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대본을 잘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읽고 묵상해야, 주님이 이 땅에서 우리에게 맡기신 역할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주여 나를 도우사 주의 뜻 온전히 이루도록, 내 이샌이 내가 주인되지 말고, 주님이 주인이 되어서 나를 이 땅에서 바르게 살게 하소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역할을 제대로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