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44, 마가복음 169~11, 제목은 "부활의 첫 증인

 

1. 2012년에 네팔을 방문해서 에베레스트 산에 대한 전시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8,848미터의 에베레스트 산 정상을 최초로 밟은 사람1953529일 뉴질랜드의 에드먼드 힐러리입니다. 네팔 박물관에서 전해 들은 이야기는 당시 최초의 정상을 밟은 사진이 논란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사진에 찍힌 사람이 에드먼드 힐러리가 아니였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바로 산행을 도왔던 네팔인 짐꾼 텐징 노르가이였습니다.

인류 최고의 업적에 들어 갈 만한 이 엄청난 일에 백인이 아닌 네팔인 짐꾼이 찍혔다는 것은 모든 외신 기자들에게 충격이였고, 누가 먼저 정상을 밟았냐?고 이야기 하면서 많은 논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상황을 들어보면 정상을 향해 앞서가던 짐꾼인 텐징이, 처져 있던 힐러리를 위해 정상을 눈앞에 둔 지점에서 그를 기다려주었고, 힐러리가 다가오자 정상에 먼저 오르라 했다고 합니다. 그런 텐징에게 힐러리는 이곳은 당신의 나라야. 당신이 먼저 정상을 밟아야지라고 말했지만, 짐꾼으로서의 역할을 잊지 않고, 에드먼드 힐러리가 정상등극의 첫 발짝을 밟도록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에드먼드 힐러리는 항상 자신이 첫 발을 디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첫 발자욱을 밟았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사진에 대한 진실은 당시 짐꾼 이였던 텐징 노르가이는 사진기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였기에 고가의 사진기를 다루어 본 적도 없고, 작동하는 법을 몰랐기에 힐러리가 직어 준 것이였습니다. 나중에 두 사람의 우정은 네팔 박물관에 잘 기록이 되어 있는데, 1962년 히말라야 기금을 만든 것을 시작으로 해마다 히말라야 산지 마을을 찾아 학교와 병원을 세워주고 비행장 건설도 지원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네팔 정부는 힐러리가 사망하자 에베레스트산과 가장 가까운 루클라 공항 명칭을 텐징 힐러리 공항으로 바꾸었을 정도로 귀하게 여겼습니다.

 

2. 이렇게 많은 에피소드와 감동의 이야기가 있지만, 사람들의 관심누가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의 정상을 밟았냐?입니다. 이렇게 최초에 대한 관심이 많은게 인간이지만, 이상하게도 별로 주목 받지 않은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인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최초의 목격자였던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에는 그렇게 비중을 두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요?

예수님 당시 여자들은 법적인 증인으로서의 자격이 없었다고 합니다.

8:2에 보면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귀신이 무려 일곱 귀신이 들렸던 자라고 합니다. 귀신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대부분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성경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병이 있었다고 합니다. 무슨 병이라고는 언급이 되어 있지 않지만, 병자로 분류가 된 것으로보면, 육신적인 면에서도 어려움이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정신적으로는 일곱 귀신에, 육체적으로는 병에서 오는 고통에서 그녀의 삶이 아주 많이 힘들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이 엄청난 부활의 사건의 증인으로 내세우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하고, 여러면에서 자격조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볼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녀를 정상적인 삶을 살도록 치료해 주신 분이라면, ‘그녀의 태도가 예수님에 대해서 어떠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좌절과 어두움이 많은 곳일수록 은혜가 더욱 크고 깊기에 이 여인의 삶은 예수님과 떨어질레야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랬기에 막달라 마리아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음에도 끝까지 예수님의 곁을 지켰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뭔가를 얻으려고, 능력의 이익을 보기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곁을 지키고, 로마의 식민지 상태를 구원해 줄 해방자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면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호했던 군중이 다 사라지고, 3년 동안 같이 다녔던 제자들도, 베 홑이불까지 집어 던지고 알몸으로 도망갈 정도의 절박한 위기 속에서도 모두가 예수님을 떠나버린 고, 외면했던 예수님의 죽음의 순간과 죽음의 자리를 지킵니다. 아마도 예수님을 통해 귀신과 질병에서 고침을 받은 그 은혜가 너무 컸기에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곁을 떠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막달라 마리아는 사회적으로, 세상적으로는 아무런 증인의 자격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예수님이 가장 힘들고 어려우실 때 그 곁에서 자리를 지켰던 사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첫 증인이 되기에는 누구보다도 분명한 자격이 있었다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서 제일 기쁜 소식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소식을 처음으로 목격한 첫 증인이 되었고, 부활의 첫 증인으로 결코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 하신 것 같습니다.

미국의 팀 켈러 목사는 그의 책 인생질문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의를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그 가운데 살아나심을 믿는 자이다라고 정의를 했는데,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최초로 만난 사람이기에 최초의 그리스도인은 바로 막달라 마리아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3. 또 하나 주목해서 볼 내용은 최초의 그리스도인막달라 마리아가 행했던 일이 바로 눅 16:10에 기록이 되어 있는데,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라고 했습니다. 말씀 그대로 보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서 전했습니다.” 아주 짧고 간단하게 기록된 이 내용이지만, 이 행동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주신 마지막 명령과 유사합니다.

28:18-19에 나온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일상입니까? 예수님의 옷차림이나 행동입니까? 예수님이 보여 주신 기적이나 사건입니가?” 예수님의 가르침은 우리 인생에 대한 답을 얻는 방법이나, 처세술을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답이라고 분명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분명하게 이것을 전했습니다. 죽으셨으나, 다시 살아나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가서 알렸습니다.

 

최초의 그리스도인으로,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을 분명하게 했습니다. 이 한 문장은 그리스도인의 사명이,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주는 핵심 구절입니다.

 

4. 한국 사람들은 재미있는 습관이 있습니다. 강한 나라의 사람들에는 항상 자를 자주 붙입니다. 미국놈, 중국놈, 일본놈....그런데 좀 약하고, 어려운 나라 사람들에게는 이 자를 잘 안 붙입니다. 파키스탄 놈, 인도 놈, 케냐 놈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냥 인도 사람, 파키스탄 사람, 케냐 사람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불려지는 이 정체성에 따라서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해야 하고,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의 역사와 교육을 배우며, 자라도록 되어 있습니다. 저희 아이들이 한국인으로서 인도에서 공부할 때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막내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인도를 갔습니다. 전체 학생이 3,500인데 외국인은 유일하게 혼자였습니다. 50도에 다다르는 더위, 에어컨 없이 뜨거운 태양을 받으며 달궈진 버스를 타고 오고 가는게 쉽지는 않았지만 잘 버텨 주었습니다.

그런데 버티기 쉽지 않은 일이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인도의 힌두교 신에게 예식을 드리는 종교행사가 어려웠습니다. 선생님께 그 시간에는 종교가 다르기에 양해를 구했지만,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인도학교이기에 인도 역사를 배우는데, 인도의 역사는 다 신과 관련된 수업이 많습니다. 신에게 잘못하면 벌을 받고,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 죽이는 신의 힘을 빌리고, 인도의 신과 관계된 이런 저런 내용들이 교과서에 실려 있는데, 어느 날 막내가 인도 교과서 보기가 무섭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을 죽이는 것을 당연시하고, , 다리를 잘라 죽이는 이야기들이 어린 나이에 너무 무서웠나 봅니다.

학교에서도 점심을 주는데, 인도 음식이 잘 맞지 않아서 엄마가 아침에 도시락을 싸 줍니다. 한국에서 가져 온 삼각 김밥 틀에 밥을 넣어서 삼각김밥을 싸서 주면, 인도 아이들이 검은 종이를 먹는 아이라고 놀린다고 합니다. 한국인인데, 인도인처럼 살아야 되니까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적용) 그런데 이 이야기를 오늘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에 적용해 보았습니다. ‘최초의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 행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로 가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는데, 우리는 분명 그리스도인임에도, 왜 가장 중요하고, 우리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되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을 왜 하지 않고 있을까? 한편으로는 우리의 행동이 그리스도인으로 불려 지는데 부족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더불어 지난 시간 우리들이 하는 행동들을 돌아보면, 그리스도인의 호칭에 맞게 그리스도처럼 살았는지, 아니면, 인도에서 한국인으로 사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이 살지 말아야 될 곳에서 살면서, 사람들에게 눈총을 받고 있지는 않은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한국인이 한국어를 해야 하듯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인의 언어가 있어야 하고, 한국인이 한국의 습관과 관습을 가져야 한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의 관습을 제대로 가지고 있는지를 우리는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 최초의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면, 우리도 다른 어떤 것보다도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핵심가치,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가서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존귀하신 그리스도를 전해야 하기에 입술로만이 아닌, 우리의 삶이 동반이 되어야 하기에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준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리스도를 몰라서 헤메고, 인생을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답이 되고, 방향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얻어지게 될 인생 최고의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사명은 그리스도인 아닌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 첫 증인인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서 이것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5. 부활의 증인이 되는 일은, 쉬운 일 같은데, 쉽지 않습니다. 16:11을 보면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라고 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전했으나,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고, 전해도 반응이 잘 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나라에 온 최초의 선교사인 알렌, 언더우드나 아펜셀러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알고 있지만, 헤론 선교사에 대한 이야기는 좀 생소합니다.

김수진 교수가 쓴 예수 오실 때까지라는 책에 자세한 소개가 되어지는데, 이수정은 오늘의 전라도 곡성 출신으로 궁정 역사기록자로 관직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1882년 군인 6천여명이 13개월간 월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를 참다못한 군인들이 난을 일으켰는데, 임오년에 일어나서 이것을 임오군란이라고 합니다. 성난 군인들이 왕가를 위협하러 갈 때, 이수정은 명성황후를 지게속에 숨겨서 탈출시킵니다. 이를 계기로 공을 인정받고, 일본의 신기술을 배우러 가는 신사 유람단에 동행을 하게 됩니다.

일본에 도착한 이수정은 일본의 농학자인 쓰다 박사와의 만남을 통해 성경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말씀을 읽고 은혜를 받은 이수정은 나까타 목사와 성경을 공부하고, 일본 교회에서 세례를 받습니다. 특별히 일본의 선진화된 모습에 놀라며, 조선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선교사 유치 운동을 벌여야 된다는 생각을 하였고, 이를 실천했습니다. 기회가 닿는대로 조선에 선교사를 보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젊은 사업가인 맥 윌리암스가 선교헌금으로 당시에 적지 않은 오천불을 헌금했습니다. 당시에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였습니다. 1900년도 초기에 미국 선교사의 선교후원금이 100불 정도였는데, 이 정도면 정말 어마어마한 집을 구입할 수 있는 정도였는데, 이수정을 통해 모금된 오천불은 정말 엄청난 재정입니다. (사실 여기서도 우리는 맥 알리암스의 귀한 헌금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하지 않습니다.)

 

이를 계기로 조선에 갈 선교사를 모집하였는데, 중국에서 사역을 하던 의료선교사 알렌이 선교본부의 요청으로 조선에 오게 됩니다.

이런 가운데 조선 선교의 문이 열린 소식을 듣고, 헤론이 이수정의 편지를 보게 됩니다. “미국 사람들이여! 조선에 선교사를 보내주시오! 조선 백성들은 문명을 모르고 어둠 속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이에 감동한 헤론은 1884년에 조선에 선교지원자로 신청을 해서 최초의 조선 지원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알렌은 최초로 오기는 했지만, 선교본부의 명령에 다라 온 것이고, 헤론은 자원해서 조선을 오기로 함) 헤론은 1883년 개교 이래 최우수 성적이라는 영예를 안고 테네시 의과대학을 졸업했고, 의과대학 교수로서의 학교의 제의를 거절하고 조선 선교사로 옵니다. 18844월에 들어온 언더우드, 아펜젤러보다 약간 늦은 2진으로 621일에 조선에 도착을 합니다. (아까 에베레스트 정상에 누가 최초로 발을 내 딛였는가처럼, 한국의 선교역사도 먼저온 언더우드와 아펜셀러에게 많은 관심이 잇었습니다.)

 

당시 조선은 명성황후의 조카인 민영익을 알렌 선교사의 서양 의학으로 치료한 공을 인정 받아 광혜원이라는 최초의 의료기관을 열게 되지만, 알렌이 고종 황제의 어의로 가면서 2대원장으로 헤론 선교사가 일을 하게 됩니다.

당시 조선의 위생 환경은 매우 불결하였다. 천연두나 장티푸스 같은 전염병이 연례행사처럼 창궐해서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수많은 목숨을 앗아 가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에 질려 일부 선교사는 바로 자신의 나라로 귀국하기도 하였지만, 헤론은 광혜원(나중에 제중원) 입원 환자들을 간호사에게 맡기고, 따갑게 내리쬐는 햇볕 아래 진료가방을 챙겨 들고 100리 이상 떨어진 시골 지역을 다니며 전염병을 치료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많은 환자들을 돌보던 헤론은 결국 자신이 전염병에 걸려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헤론 선교사를 치료할 의사가 없었습니다. 결국 조선에 온지 5년만에 32세의 젊은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자 부인의 손을 잡고, 두 딸과 한국인 환자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위해 그의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주님을 믿으십시오!” 라고 전하고, 조용히 잠자듯이 하나님 품에 안겼다고 합니다.

한참 일할 나이도 아니고, 이제 막 시작할 나이임에도 결국 짧은 선교 역사를 가지게 됩니다.

헤론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시신을 묻을 곳이 없었습니다. 당시 관례로서 외국인은 제물포에 묻었으나 거리가 너무 멀었기에 헤론의 집뜰 혹은 미국 공사관 경내에 묻고자 하였으나 조선인들의 반대로 무산되었습니다. 결국 선교사들은 고종에게 선교사 묘지를 요청하여 마포 양화진 땅을 하사 받았고, 헤론의 시신은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양화진 나루터 언덕의 묘지에 묻였는데, 이것이 양화진 선교 묘지에 안장된 최초의 선교사로 되어 집니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양화진 선교사 무덤에 최초로 묻힌 헤론 선교사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주기 위해서 무덤에 묻힌 선교사가 누구인지도 사실 잘 몰랐습니다. 에베레스트 산에 올라 가는 것, 뭔가의 업적을 나타내는 일에는 최초라는 단어를 무수하게 사용하며, 그 위용을 자랑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정말 중요한 최초의 일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못합니다. 무관심합니다.

 

6.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의 책임 아래, 때로는 우리의 직무에도 둔감하고, 이 이름에 담긴 의미에 대해, 우리에게 와서 복음을 전했던 선교사들의 이야기도 크게 반응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부활절이 되어도, 예수님의 부활 소식에 대한 집중보다는 다른 것들에 더 많은 집중을 합니다. 코로나 확진자 이야기, 코로나 백신, 선거 이야기, LH의 주택 관련 여러 비리 이야기 등에는 집중을 하지만, 정작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이야기에는 집중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해마다 이 부활절을 맞이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인이라는 이 귀중한 이름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주목해야 합니다.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우리에게 주어진 이 고귀한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을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하고, 막달라 마리아가 보여 준 것과 같이 가서 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한 걸음을 떼기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적용) 막달라 마리야는 당시에 예수님을 직접 보았고, 귀신들림과 병 고침을 눈 앞에서 받았으니, 그럴만도 하지라고 넘겨 잡으면 안됩니다. 이 이야기가 전설속의 한 이야기로 머물러 있으면 안되고, 우리가 그것을 이어 받아서 주님의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선교의 역사를 잘 감당해서 우리 자녀들, 다음세대에게도 부끄럽지 않게, 분명하게 이어주고 넘겨 주어야 합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아름다운 이야기들과 같은 선교행전의 역사가 계속해서 우리의 세대에서 쌓이고, 이어져야 합니다.

 

) 지난주 수요일에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한 선교사님이 저를 찾아 왔습니다.

이 선교사님은 제가 동안교회에서 세계선교부 담당 목사로 사역을 할 때, 총무로 저를 도왔던 청년이였습니다. 공대 출신이였던 이 형제는 선교의 부르심을 따라 1년 정도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평신도 선교사로 교수 사역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아프리카 단기선교를 많이 보냈던 동안교회 청년부 팀을 만났고, 그 가운데 한 자매를 만났습니다. 음악을 전공하고, 뮤지컬 음악 작곡가로 미래가 촉망되는 자매였는데, 탄자니아에 가보았더니, 사람들이 악보가 없어서 찬송을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이 열심히 선교사역을 감당 했었습니다. 그리고 이 한국으로 돌아와서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신혼 부부로 평신도 선교사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아프리카 잠비아로 갔습니다.

 

저희 가족도 자녀들이 초등학교 입학을 하고, 말귀를 알아 들을 나이가 되었을 때, 생일날 장난감을 사주지 않고, 아이에게 선교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아이의 이름으로 선교사님들에게 선교헌금을 하였습니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이름으로 후원하는 선교사님의 기도편지를 소개하기도 하고, 한국에 방문을 하면 같이 만나기도 하고, 선교지를 방문해서 만나기도 했었습니다. 아직도 커플티를 입고 신혼 여행을 가듯이 아프리카 선교사로서 인천공항을 떠나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런데 선교사님이 선교지를 간지 얼마되지 않아, 부인 선교사가 희귀병에 걸려서 알 수 없는 병으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오랫동안 병원에서 지냈습니다.

선교지에 간지 2년도 안되어서 여러번의 위기를 겪다가 결국 부인 선교사가 주님의 품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신혼이였던 그 선교사님의 절망과 아픔을 보았습니다. 많이 가슴이 아펐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남편 선교사는 한국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을 하였습니다. 이제는 저희 가정이 선교지인 인도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선교사 후원금을 보니 이 선교사님이 신학 공부를 하고 전도사 생활을 하면서 저희 가정을 위해 선교후원금을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저희 자녀들에게 이 사실을 잘 전해 주었습니다. “너희들이 어렸을 때에 너희의 이름으로 선교헌금을 했었는데, 이제 그 분이 우리 가정을 후원하고 있다고....”

 

좀 더 시간이 흘러서 그 선교사님은 재혼을 하고, 아이를 둘을 낳고, 목사 안수를 받자마자, 재작년에 다시 가족들과 함께 선교사 훈련을 받고, 아프리카 잠비아 선교사로 나갔습니다. 첫 아내를 잃은 사역지에 다시 돌아 갔었습니다. (제게 진로 상담을 하기에 처음에는 저도 사역지를 다른데로 추천했습니다. 아무래도 첫 아내가 많이 생각나지 않겠냐고....) 그런데 잠비아에 가서 보내는 기도편지를 보니, 정말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고,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간지 얼마가 안 되었는데, 남자 선교사님이 갑자기 체중이 10kg 이상이 빠져서 긴급하게 병원 진단을 받으러 한국에 왔다고 합니다. 지난주 수요일에 저를 찾아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참을 했습니다. 15년 이상의 만남이 있었고, 그 동안의 쌓여진 선교의 이야기 역사가 많이 만들어졌고, 15년 전에 이야기했던 선교 사역들을 각자의 현장에서 선교사로 일하고 있는 모습을 서로 격려했습니다. 선교행전의 역사가 계속 이어지고 쌓여지고 있습니다.

 

최초의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걸 맞는 행동을 했던 막달라 마리아, ‘선교사라는 이름에 걸 맞는 행동으로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선교사님들, 짧은 선교사역으로 제대로 이름도 기억되지 않은 선교사였을지라도, 하나님의 선교 역사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 같이모든 역사가 오랫동안 별과 같이 빛날 것입니다.

 

어떤 화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빛을 그리기 위해서는 어둠을 그려야 한다고...

지금 한국교회는 매우 어둡습니다. 큰 사건이 터지면 그 배후에 그리스도인이 아닌지를 살펴볼 정도로 그 신뢰도가 떨어졌습니다.

요즘 청년들 사이에서는 자랑스럽게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너무나 큰 부담이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까지 어려워졌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전세계가 너무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릅니다.

 

결론

새롭게 교회를 헌당하고 맞이하는 첫 번째 부활절, 우리는 최초의 그리스도인 막달라 마리아가 너무나 큰 은혜를 받고, 주님 곁을 떠나지 않고, 지키면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목격자로서 사명을 다했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귀한 선교의 명령에 우리도 막달라 마리아처럼 응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큰 사명이 있습니다. 이 일을 잘 감당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부활의 주님이 부탁하신 이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