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57, 신길동 대광교회 심야기도회 설교 (정용구 목사)

성경봉독 아가서 1:1-8  / 내 사랑하는 자야 / 설교 동영상 http://asq.kr/ZNo1, (37:45초부터 설교)

 

1. 지난주에도 세계에서 제일 부자였던 마이크로 소프트를 창업한 빌 게이츠 부부가 27년 만에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재산은 1456,000억원입니다. 이들이 가진 땅을 합치면 싱가포르보다도 크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들 부부는 돈을 많이 벌기도 하고, 좋은 일에 많은 기부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기부한 금액을 환산하면 하루에 50억씩 기부를 했다고 합니다. 좋은 일도 참 많이 하고, 경제적, 사회적 명성이 있고, 이 정도면 부러울 것이 없을 정도로 다 가진 사람들일텐데, 그리고 자녀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혼을 택했습니다. 이혼의 사유를 들여다보니, 빌 게이츠의 부인인 멀린다는 이혼에 대한 소감을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지난 (결혼 생활) 27년간 우리는 3명의 놀라운 아이들을 키웠고,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고 생산적인 삶을 영위하도록 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일하는 재단도 설립했다 우리는 이 임무에 대한 신념을 여전히 공유하고, 재단에서 계속 함께 일하겠지만, 우리 인생의 다음 단계에서 부부로서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고 이혼 사유를 설명했습니다.

부부로서 함께 성장 할 수 있다고 더 이상 생각이 되지 않는다라는 말이 어떤 뜻일까?를 생각해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더 이상 성장할 게 없을 것 같은 나이들이고, 가진 것도 풍부한데 어디에서 그 공허함이 생겼을까?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살기는 같이 살아도 부부로서의 정체성이 사라지고, 서로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없고, 다른 것에 더 관심을 많이 가지고, 그냥 살아가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2. 그런데 어쩌면 우리도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런 모습을 가지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지 않고, 하나님이 내 삶에 역사하심에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그냥 그런대로 적당하게 선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간절하게 하나님께 구했는데, 자신의 생각대로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는다든지, 내가 기대하는 것과 다르게 결과가 나타나거나, 예상치 못한 반응들로 인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로인해 마음이 공허해져서, 냉냉하게 반응을 하는 경우도 우리 인생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이럴 때 읽으면 좋은 성경이 바로 아가서입니다.

3. 아가서는 이런 닭살 돋는 애정 표현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 아가서의 히브리어 제목은 쉬르 하쉬림으로 영어로는 Song of song, 우리 말로 번역하면 노래중에 노래입니다. 아가서는 여러 논란이 될 만한 내용이 나오지만 구약시대부터 지금까지 아가서가 성경으로서의 권위를 가진 것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였습니다.

당시 특별히 고난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은혜의 메시지로 여겨졌기에 가장 큰 축제인 유월절이 되면 의무적으로 꼭 전체가 읽는 것이 이 아가서였습니다. 아가서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깨닫고, 고난을 이겨 냈다고 합니다.

우리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이 아가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아가서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와 하나님의 사랑의 관계가 어떠해야 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가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첫째 아가서 1:1-3:5은 첫 사랑의 기쁨을, 두 번째 3:6-5:1은 결혼의 기쁨을, 그리고 5:2-8:14은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기쁨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옛날에 불렀던 복음성가 가운데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주 나의 신랑, 나 주의 신부 그 사랑은 내 기쁨, 주 나의 사랑, 나 주의 사랑 그 사랑은 내 기쁨, 그 사랑은 내 기쁨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부부 관계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해 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 아가서를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이 보실 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알게 해 줍니다.

오늘 아가서에 등장하는 두 사람은 우리가 잘 아는 솔로몬 왕입니다. 그리고 상대는 술람미 여인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솔로몬은 지혜가 출중했고, 왕으로써 최고의 번영기를 통치했고, 그리고 기록들을 보면 솔로몬은 외모도 존귀하고 아름다웠는데, 그 뿐 아니라 내적인 인품이 뛰어나서 처녀들에게는 흠모의 대상이였던 사람입니다.

 

2. 그런데 아가서에 등장하는 또 다른 인물인 술람미 여인은 그렇게 내세울 것이 없는 여인입니다. 이 술람미라는 것은 한 작은 마을을 가리킨다는 학설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솔로몬이라는 단어의 여성 형태로서 솔로몬의 여자를 가리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살펴 볼 수 있는 것은 아름다운 신부의 상징이 되는 외모가 그리 좋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의 외모를 나타내주는 표현이 아 1:5에 나오는데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검으나라고 하지 않고, “비록이라는 말을 쓴 것을 보면 만족보다는 아쉬움이 들어가 있는 단어입니다. 1:6을 보면 이 여인이 하던 일을 알 수 있는데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고 했습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미의 기준은 검은 것보다는 하얀 것에 점수를 후하게 많이 주었습니다. 그런데, 포도원에서 햇빛을 받고 항상 일을 하니 더 검어졌습니다.

그리고 게달의 장막이라는 것은 게달은 이스마엘의 후손으로 이들은 북아라비아 족속이며 오늘날 팔레스타인의 베두인족입니다. 요르단을 방문했을 때, 광야에 12일 정도를 들어가서 베두인들과 같이 지내본 경험이 있는데, 광야이고, 척박한 곳에 살다보니, 살림살이들이 깨끗하거나 깔끔한 것은 기대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런곳에서 사는 것만해도 대단하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 염소털로 만들어진 장막을 쳐서 사는데, 이렇듯 더럽고 지저분한 것, 그것을 빗대어 이야기 하는 것이 게달의 장막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여인의 외모는 볼품이 없었던 외모라고 전해집니다. 우리가 호박같이 생겼다고 하면, 호박이 아무리 몸에 좋고, 맛있는 요리가 나와도, 이것을 미() 비교하면 기분 나빠합니다. 이처럼 게달의 장막이 주는 어감은 볼폼없는 외모를 말합니다.

 

3. 그리고 이 여인은 상처가 있었습니다.

1:6을 보면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이 여인은 가족들로부터 인정을 못 받았습니다. 같은 뱃속에서 나온 형제들이 이 여인 때문에 노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자로서, 힘든 포도원지기가 되어집니다. 오늘 6절에 노하여라고 하는 본문이 이 여인이 자라온 배경을 우리에게 잘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가족들에게 이렇게 상처를 받은 이 여인,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인정을 못 받았습니다.

그러면 일을 잘 했느냐, 그렇지도 않습니다. 6절에 보면 내 포도원을 지키지 못하였구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사실 여자로서 하기 힘든 일을 맡기고 잘 하기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이지만, 이 여인은 어찌되었든간에 자기의 일도 잘 못합니다.

아마 결혼소개소에 가면, 집안도 시골 출신이고, 배운 것도 없고, 얼굴도 못 생기고, 볼품이 없고, 하는 직업도 여자인데 포도원지기로 이상하게 생각이 되는 일을 하고, 하는 일도 잘 못했고, 그 가족들도 이 여인을 인정해 주지 않는 전혀 결혼 가능성이 없는 여인입니다.

 

4. 그런데 오늘 아가서는 엉망인 술람미 여인이 이스라엘 가운데 가장 출중한 솔로몬과 연인 관계로 연결이 됩니다. 우리가 마치 드라마에서나 본 듯한 신데렐라의 이야기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혹시 눈치 채셨을지도 모르는데, 우리와 하나님 같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전능하시고 능력이 많으시고, 흠이 없으시고,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신데, 거기에 비하며 우리는 늘 죄를 짓고, 어제 은혜를 받고도 또 다시 범죄하고, 우리의 연약함이 너무나 많은 우리들....최근에 뉴스를 통해서 자녀 학대에 대한 이야기들을 보면서, 특별히 공공성을 통해 일해야 하는 사람들의 부정과 속임 등을 보면서,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는 너무나 부끄러운 존재라는 것을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시면서, 그것도 죄도 없는데, 그렇게 형편없고, 자기 밖에 모르고, 이기적인 인간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게 하면서도 이 형편없는 우리를 사랑한다고 사랑고백을 하고 계십니다.

이 사실이 오늘 아가서에 나온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을 비교해 보면, 뭔가 비슷한 그림이 나오지 않습니까? 이렇게 안 어울리지만, 솔로몬은 이 여인에게 반합니다. 마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시어 주시는 것과 같이.....

너무 분에 넘치는 사랑을 우리에게 주시고 있지 않습니까? 왜 그랬을까요?

 

5.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좋게 보인다, 그 보잘 것 없고, 볼품없던 술람미 여인을 솔로몬은 사랑의 눈으로 보게 됩니다.

아가서 1:2을 보면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라고 했습니다. 포도주는 구약시대에는 달콤함, 즐거움, 기쁨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이 술람미 여인의 사랑 표현이 포도주보다 낫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보다 더욱 크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의미를 좀 더 깊이 표현하면, 이 술람미 여인은 사랑이 뭔지 아는 여인이였습니다. 이 사랑이 어떤 관능적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 자체로 좋아보이고, 다른 어떤 목적이 없어도 좋아지게 되는데, 이럴 경우가 바로 조건없는 순수한 사랑의 관계로 발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밉상으로 보이고, 엉성하게 보였지만, 솔로몬에게는 그 모습이 예뻐 보였고, 그런 상황에 있는 술람미 여인이 귀하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별로라고 생각이 되는 모습이 있겠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 귀하게 보는 모습이 있을 것입니다. 어마 어마하게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이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 기쁨이 되고, 주님의 마음과 뜻에 맞는 행동을 했다면, 하나님은 세상과는 다른 모습이겠지만, 우리의 중심을 아시고, 우리를 귀하게 보실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우리의 조건과 행위가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선택과 주권이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그 사랑을 삶속에서 이어나가는 비결은 우리의 신앙의 자세가 삶속에서 이어져야 주님이 주시는 그 사랑을 놓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고, 그 말씀을 통해 매일 매일 우리가 새롭게 되어지고, 주님과 교제하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과 같은 연인의 관계와 같이 되기를 원하시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이 사랑의 메시지를 계속 잃어버립니다. 잊어버립니다. 놓치고도 찾지 않습니다. 우리가 원인을 제공했음에도 오히려 하나님이 무관심하다고 하나님 핑계를 대고, 우리 스스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 버립니다.

 

() 미국 교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은 식음을 전폐할 경우에는 일주일 정도 살 수 있고, 몸집이 작은 새는 10일 정도, 강아지의 경우 20일을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진 대사율이 낮은 거북이는 500일을 넘게 살 수가 있습니다.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거북이처럼 거의 먹지 않고 살아가는 교인들을 빗댄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 때에 먹지 않고, 세상의 다른 것들로 가득 채우면, 공허해집니다. 부부 사이에도 부부 사이에 채워야 할 위로와 격려가 채워져야 공허하지 않은데, 그것을 대신하여 다른 것이 아무리 많이 채워지고 풍성해도, 진정으로 채워져야 할 것이 안 채워지면 같이 살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하나님의 이 엄청난 사랑과 은혜의 메시지를 받을 수 없는 자격이였음에도, 우리를 귀히 여기시고, 천한 자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과 같이 대해 주시는 하나님의 그 풍성한 은혜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분명하게 매일 매일 채워야 합니다.

그래야 그 관계가 지속이 되면서 사랑의 관계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뭐가 문제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이 시간 분명하게 주님께 고백해 보시기 바랍니다. 진짜 문제가 하나님이신지, 아니면 내가 문제가 있었는지...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채워야 할 사랑의 관계를 다른 것에서 체우려고, 하나님과 등 돌려 있지는 않은지를 분명하게 살펴보고, 주님과의 만남에 내가 얼마나 충실했는지를 진지하게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아주 거창하고, 위대한 것이 아닐지라도, 주님을 향한 나의 작은 사랑과 고백을 하나님은 더욱 귀하게 보십니다. 하나님의 예배를 향한 나의 작은 결단과 고백속에 드려지는 모습들, 삶속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그 작은 모습 하나 하나에 하나님은 더욱 큰 은혜를 주십니다.

 

혹시 오늘 금요 심야 기도회에 오신 분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회복되기를 원하는 심령이 있다면, 혹시 우리 주위에 이렇게 되기를 바라는 나의 가까운 가족이나 지인들이 있다면, 잠깐 찬양을 한 번 부르는 가운데, 주여 나를 회복시키소서, 나를 고치소서, 나를 도우소서...라고 고백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를 향한 나의 사랑을...

 

 

6. 옛 어른들의 이야기 가운데 가장 힘든 곳을 가장 즐겁고, 행복하게 가는 비결은 사랑하는 사람과 가면 된다고 했습니다. 이 원리를 적용하면, 사랑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이것은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잘 적용이 됩니다.

 

제가 부교역자 생활을 하면서 배운 목회철학 가운데 하나는 사랑하면 일이 보인다라는 것입니다. 여러 일을 해야 하는데, 방법이 없고, 자꾸 막히면, 상황을 보고 답을 만들지 말고, 그 일 안에, 그 공동체 안에, 그 사람 안에 들어가서, ‘사랑하기 시작하면 일이 보인다라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교회 사역을 하는데, 참 많이 적용을 했습니다. 다들 안된다고 하던 일들, 다들 필요없다고 하던 일들, 그런데 사랑하니까 일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술람미 여인이 이 원리를 알았던 것 같습니다. 사랑이 뭔지 알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갈급해하고, 간구하지만, 아쉬운 것은 사랑이 뭔지를 잘 모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법을 모릅니다. 가족을 사랑하는 법을 모릅니다. 직장 동료를 사랑하는 법을 모릅니다. 교회 성도를 사랑하는 법을 모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방법을 모릅니다. 사랑한다고 했던 일들이 상처가 되어집니다. 갈등을 만들고 관계를 더 벌려 놓습니다. 상대방이 원하는 사랑이 아니라 나의 기준에 맞게 내가 사랑하는 것이 되어버리니까, 피곤합니다.

 

사람들 가운데 이상한 사람이 있습니다. 만나면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자꾸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는 반면에 만나면 자꾸 피곤합니다. 부담이 됩니다.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런데 이 술람미 여인은 향기로운 기름 같다고 합니다. 1:3을 보면 네 기름이 향기로워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라고 했습니다.

향은 퍼져 나갑니다. 냄새가 좋지 않은 기름은 코를 막습니다. 그런데 좋은 향은 자꾸 더 맡고 싶고 끌립니다. 이 술람미 여인은 볼품없이 생겼고, 상처를 많이 받았던 사람이고, 하는 일도 변변치 않았지만, 사람들에게 향기와 같이 사랑을 받는 사람이였습니다. 그가 속한 공동체에서 매력 덩어리입니다. 사람들이 항상 이 술람미 여인을 찾습니다.

 

이 여인은 비록 갖추어지지는 못했어도, 자신의 정체성을 잘 알고, 당당했습니다. 부족한 자신의 외모이지만, 그것을 당당해 했습니다. 자신의 약점들을 부끄러워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의 태도를 건강하게 했습니다.

마치 시편 23편에 나온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니라는 시편 저자의 고백처럼,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시원치 않게 보여도, 세상과 비교하지 않고, 아버지 되시는 주님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죄인인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의 크신 사랑을 깊이 체험하고 나서, 모든 것에 자유함을 얻은 참된 그리스도인처럼, 오늘 술람미 여인은 자존감이 높았습니다.

 

그리고 아 1:4을 보면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우리가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더 진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라고 했습니다. 건강한 자기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사람들이 닮고 싶어합니다. 향기나는 삶의 태도를 가졌기에 그 모습을 지켜보면 너무나 기쁩니다. 사람들은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따라갑니다. 캔디라는 만화의 가사...“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울어....역경을 견뎌가는 캔디를 사람들은 좋아합니다.” 역경이 있지만, 그 가운데 서서 향기를 발하며, 일어나며, 견디는 그 사람의 존재자체가 힘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7. 반면에 다 가졌지만, 다 있어 보이지만, 외로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관계에 정직을 빼 놓습니다. 자기의 목적이 너무 분명해서,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나 존중은 없습니다. 사람들 만나고 나면 항상 다르게 이야기를 퍼트립니다. 부정적인 바이러스로 가득차 있습니다. 나도 못하지만, 이런 사람하고 있으면 남도 뭐를 못하게 만들어 놓습니다. 남을 정죄하는 눈으로 긍휼이 없습니다. 자신은 아무 죄가 없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자기의 이익을 분명히 하고 계산을 잘합니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무시합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자기를 위해 살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사람은 참된 사랑의 교제를 못합니다. 외롭습니다. 그 사람 주위를 다 떠나게 됩니다. 이 사람의 존재자체가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이 됩니다. 만나면 피곤하니까 자꾸 사람들이 만나는 자리를 피합니다.

- () 어떤 사람이 핸드폰이 잘 터지지 않아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요즘 전화가 잘 연결되지 않습니다. 사람들과 통화를 하고 싶은데, 전화가 안됩니다. 라고 했더니 통신사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인간관계를 먼저 똑바로 해 주세요라고 했답니다. 우스게 소리이지만, 생각해 볼 이야기입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자신의 문제임에도 항상 남의 탓, 외부 탓을 합니다.

오늘 술람미 여인은 자신의 약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를 따랐습니다. 그래서 그가 가는 것이 공동체의 방향이 되고, 길이 되어집니다. 주변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고, 배려하려고 하고, 이기적이지 않고, 자기 자신보다는 항상 남을 더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사람들이 여러분과 함께 하는 것을 좋아 합니까? 아니면 부담스러워 합니까?

오늘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과 학교와 사업처에서 교회에서 이 술람미 여인과 같이 정말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기대합니다.

아니, 기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분명하게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을 받았기에, 이 세상의 그 어느것이 채워줄 수 없는 가장 귀한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았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서 우리의 삶에서 더욱 풍성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8. 그리고 항상 기억할 것은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는 죄인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을 따르면서, 우리의 인생은 바뀌었습니다. 마치 술람미 여인이 사랑하는 솔로몬을 만난 것과도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외롭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떠한 어려움에도 견디는 힘이 생깁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 예수가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면 우리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 저는 대학교 1학년 때 사영리를 통해 들은 이야기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라는 이 이야기가 너무나 파격적이였습니다.

저는 당시에 공부도 잘 못했고, 지방 전문대, 그것도 전공도 맞지 않는 대학교를 다녔습니다. 실력이 많으셨고, 좋은 대학과 사회적인 이력을 가진 부모님도 저에 대해서 큰 기대를 안하셨습니다. 고등학교 다니던 친구들과 선생님도 기대를 안했습니다. 제 주변에 저에 대해 기대해 주시는 분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들었던 그 한마디 이야기...“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놀라운 계힉을 가지고 계시다는...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나를 기대하신다는 그 사실”.... 합리적인 기준과 가치와 계산으로는 이룰수 없지만, 그 모든 것을 떠난 무조건적인 그 사랑을 받았기에 제 인생의 역사는 다시 쓰여지게 되었습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였습니다.

 

인생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이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 고백을 받고, 그들의 삶이 엄청나게 변했습니다. 자신을 사랑해 주시는 창조주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누구도 나를 기대 안했지만,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기대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사랑을 받고 사는 사람으로의 역사와 삶이 시작이 됩니다. 사랑을 받은 사람이 사랑을 줄 수 있습니다. 사랑을 받고 사는 사람은 예쁩니다. 그래서 요즘 얼굴이 활짝 폈네...라고 주변 사람들이 알아 봅니다”. 솔로몬은 이 술람미 여인을 아 1:8여인중에 어여쁜 자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게달의 장막이 아닌 어여쁜 자로 사랑을 받고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를 이처럼 가리지 않고,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주시는 주님을 기억하며, 그 분께 사랑 받는 사람으로서 우리 주님께 사랑의 입맞춤을 요청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입맞춤은 가장 가까운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영적으로 해석하면, 죄인인 우리지만, 감히 우리도 주님께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서 주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입을 맞추고 있습니까? 회사의 월급에 입을 맞추고 있습니까? 우리 가정이 좀 더 돈을 모우고, 우리가 남보다 좀 더 나아지는 것에 입을 맞추고 있습니까?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그 약점을 채우기 위해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며, 내 상황의 목소리에 입을 맞추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 우리를 가장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주시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던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가장 많은 사랑을 주시고, 우리를 위해 주셨던 주님께 등을 돌리고, 다른 것에 입을 맞추면 안됩니다.

 

너만 좋아해너도 좋아해

얼핏보면 비슷한 말 같지만,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아니 어마 어마한 차이가 있습니다.

연애하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관계를 가지다가도 실수해서 이 말 한마디만 잘못하면, 그 관계는 바로 깨지고 맙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서도 혹시 이런 실수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만 좋아해요”, 라고 해야 하는데 하나님도 좋아해요라고 이야기를 한다면, 다른 것에 입을 맞추는 것이 됩니다. 이것저것 다른 것에 입을 맞추고, 그 입으로 하나님께로 나오면 얼마나 불결합니까? 우리는 순전한 믿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이것저것, 형편에 맞게 좋아하거나, 적당하게 관계를 이어나가면서 하나님께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여인이 가장 사랑하는 연인에게 온전한 입맞춤을 하듯이, 우리가 주님의 순결한 신부로 주님만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한 번 이 찬양을 주님께 같이 드리고, 믿음으로 고백하고 주님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