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6일,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 딤후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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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5월 28일 미국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8일(美현지시간) 6.25에 참전한 미군 용사들과 그 가족을 울렸습니다. 미 해병대 페이스북 페이지에 공개된 문 대통령 연설 영상에 수많은 미군 참전용사와 그 가족들이 감사의 댓글을 달았다고 합니다.
대통령은 이날 방미 첫 일정으로 버지니아주 콴티코시 미 해병대 국립박물관 내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찾았습니다. 미군 1개 사단이 궤멸하다시피 한 함경남도 장진군 장진호 전투는 미 전쟁 역사상 ‘가장 고전했던 전투’로 후세에 전해집니다. 당시 미 언론은 장진호 전투를 ‘진주만 피습 이후 미군 역사상 최악의 패전’이라고 규정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장진호 전투에 대한 평가는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지고 있습니다. 한겨울 혹한의 개마고원에서 미군 1개 사단이 중국군 7개 사단과 벌인 사투였다는 점, 장진호 전투로 중공군을 약 2주간 저지함에 따라 10만여 명을 배로 구조한 흥남철수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다는 점 등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이를 반영하듯 연설을 통해 “67년 전 미 해병들은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숭고한 희생을 치렀다”며 “10만여 명의 피난민을 구출한 흥남철수 작전도 성공할 수 있었고, 그때 사용된 배인 미군의 빅토리아호에 오른 피난민 중에 대통령의 부모님도 계셨다”고 말했고, 대통령은 “빅토리호가 내려준 거제도에서 태어났고, 장진호 용사들이 없었다면, 흥남철수작전의 성공이 없었다면 대통령의 삶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도 없었을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자신이 장진호 전투의 참전 미군의 아들이라고 밝힌 로버트 시몬스는 “제 아버지께서 1사단 출신으로 장진호 전투에 참가하셨다”며 “한국 대통령이 미군의 헌신을 인정해준 점에 대해 대단히 감사드린다”고 밝혔습니다.
안드레스 가르자는 “해외 정상이 미국 첫 공식방문 일정으로 미 해병대를 방문한 점에 경의를 표한다”며 “60년이 지났지만 한국인들은 미 해병대의 업적을 잊지 않고 있다. 한국에게 정말 감사한다”며 감격했습니다.
오늘주일은 현충일입니다. 1948년 8월 정부 수립 후 2년도 안 돼서 한국전쟁을 맞았고, 40만명의 국군이 사망했고, 100만 명의 시민들이 사망을 했습니다. 1953년 휴전이 된 이후 정부는 1956년 6월 6일을 현충일로 정하고, 전쟁 가운데 생명바쳐 피 흘린 이들의 귀한 희생을 기억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그 개념이 많이 퇴색이 된 것 같습니다. 저도 설교 준비를 하기 위해 “현충일”이라는 검색어를 넣었더니, 제일 많이 올라오는 관련 검색어가 나오는데, “현충일 대체공휴일” 이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제가 아는 권사님 가운데 한 분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세상이 어떻게 되었는지, 누구 때문에 이렇게 좋은 나라에서 살고 있는데, 세상 사람들은 어쩔 수 없어도, 교회까지 이런 날에 전교인체육대회를 하거나, 야유회를 가는 모습에 아쉽움을 표하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었습니다.
터키에서 선교사역 하시는 한 선교사님은 거의 60세가 다다르셔서 선교사로 파송이 되셨습니다. 다들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나이가 많으셔서 가서 제대로 사역을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총회 세계선교부에서 터키를 담당해서, 터키를 방문해서 선교사님을 뵙고 하시는 사역을 소개 받았습니다. 선교사님의 사역은 다른 선교사님들과 좀 달랐는데, ‘터키 사람들 가운데 한국 전쟁에 참가한 가족들을 찾아가서 만나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그들 가운데 어려운 가정을 지원하는 사역’을 담당하셨습니다. 터키는 한국전쟁 당시 15,000명을 파병하고, 741명이 사망했습니다. 나이들은 여자 선교사가 ‘사람들이 찾아오지도 않고, 기억하지도 않는 터키의 시골 마을’에 가서 이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국민 대다부가 무슬림인 이 지역에서 선교사님의 사역은 참 감동이 되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많은 전쟁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쟁 가운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지키셨는지를 곳곳에서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은 로마에 지배를 당하였기에 구약에 비해서는 군사에 대한 내용이 적지만 이스라엘은 그 이후에 나라를 오랫동안 빼앗기기도 하고, 지금도 중동 국가들 사이에서는 매우 불안한 군사적 대치를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이스라엘에는 4,300발의 로켓포가 대치하던 팔레스타인에서 날라왔습니다. 이스라엘도 이에 반하는 보복공격을 했습니다. 우리도 남과북이 대치하지만 이스라엘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긴장감이 우리가 생각한 것 보다 더 큽니다.
오늘날의 이스라엘은 그 역사를 이어가면서 지금도 모든 국민들이 의무적으로 군대를 다녀오게 되어 있습니다. 여자들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의무적으로 군입대를 합니다. 비전투병은 24개월, 전투병은 33개월을 복무하고, 여군도 예비군을 50세까지 복무를 합니다. 성경의 주요 배경인 이스라엘은 고대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회를 구성하기 위한 중요한 존재들로서 ‘군인’들은 늘 사람들의 주위에 있었고, 직접 군대를 다녀오든지, 자녀를 보내든지, 군인들에게 지배를 당하든지, 이런 저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군인에 대한 이해를 잘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이 군인을 예로 들 때, 많은 사람들이 쉽게, 깊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교회를 부탁하면서 전해 준 내용입니다. 이 때는 바울 사도가 2차로 로마에 투옥이 되어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때 였습니다. 바울에게 디모데는 믿음의 아들이요, 동역자로서 앞 선 디모데 전서에 이어 두 번째로 기록한 서신인데, 성경학자들에 의하면 이 디모데 후서는 바울이 기록한 최후의 서신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면서 기록한 서신이라 바울의 유언과도 같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1장의 핵심 단어는 ‘지키라’, 2장에서는 ‘가르치라’, 3장에서는 ‘거하라’, 4장에서는 전파하라‘는 핵심 단어들이 있고, 특별히 디모데 후서 2장은 “전도자의 자격 및 임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는 “군사”의 자격과 “복음전하는 자의 자격” 이야기를 하면서 디모데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그 ‘핵심가치’를 분명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먼저 군사의 특징들을 살펴보면 첫째는 “군사는 어떠한 고난도 견디어 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딤후 2:3을 보면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요즘 채널 A라는 방송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강철부대”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요즘 군대 다녀온 아저씨들이 사석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이 프로그램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면 2-30분은 훌쩍 지나가는 남자들의 수다가 이어지는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고강도 훈련’을 통해서 ‘최고의 정예 요원’을 만들어 놓는 특수부대들이 모여서 서로 임무를 수행하여 가장 강한 부대를 남기는 프로그램입니다. ① 육군 특수전사령부 공수특전여단, ② 해병수색대, ③ 육군 특수전사령부 제707특수임무단, ④ UDT (해군 특수전전단 UDT/SEAL), ⑤ SDT (육군 군사경찰 특수임무대), ⑥ 해군 해난구조전대가 참석을 하는데, 저는 이 무시무시한 부대들이 어떤 훈련을 받는지, 어떤 특성이 있는지 비교하면서 자세히 보고 있습니다. 얼마전에는 UDT 해군 특수전단과 해난구조전대가 연합하여 작전을 펼치는데, 이들의 대사가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UDT 해군 특수전단의 주요 임무는 적진에 들어가서 적의 주요 요인들을 죽이고 파괴하는 임무를 하는 부대이고, 반대로 해난구조전대는 우리편의 주요 인사가 납치되었거나 위기를 당할 때 들어가서 사람을 살리는 부대입니다. 특수부대는 다 죽이고 파괴하는 줄 알았는데, 사람을 살리는 일을 위한 특수부대가 있다는 깨달음을 이번 방송을 보면서 배웠습니다.
(예) 우리가 교회에서 소위 “전도 특공대” 라고 군대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 용어는 ‘사람을 죽이는 부대이기보다는 사람을 살리는 부대’라는 생각을 하면서, 기회가 되면 사람을 살리는 부대는 어떤 군사 훈련을 받는지를 한 번 살펴보고, 교회의 전도와 선교에 적용해 보아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부대들의 공통점은 강철부대를 만들기 위해서 정말 많은 훈련을 한다는 것입니다. ‘훈련의 강도’로 생명이 달려 있는 위험한 상황을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기에 잘 훈련을 받아야 자기의 생명도 지키고, 국민들의 생명도 보호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한 번 질문을 하겠습니다. Q) “군대에 입대를 하면 바로 군복을 받고, 군화와 총을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입대한지 일주일 된 사람을 무엇으로 부릅니까? 군인 맞습니까? 일주일이면 총도 한 번 제대로 쏴 보지 못할 시기인데, 군인으로 불러도 문제가 없겠습니까?” 정답은 “군인은 맞습니다.” 그런데 신뢰가 안됩니다. 왜냐하면 총을 쏘거나 군에 대한 ‘훈련’이 부족하기에 군인으로서 제대로 전투 현장에 투입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늘 하는 것이 바로 ‘훈련’입니다. 틈만 나면 훈련을 반복합니다. 위기의 상황에 몸이 훈련대로 습관처럼 반응을 하도록 고난위도의 훈련을 합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 후서 2장에서 아들과 같은 제자 디모데에게 ‘담대히 복음에 대해서 가르치도록 하기 위해서 군사와 같이 고난을 받으며 훈련을 감당’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말은 디모데만이 아니라 디모데가 섬기는 교회, 오늘을 사는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하는 메시지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라면, 우리도 일주일 밖에 안 된 군인처럼 군복만 입고, 사용도 안한 총을 들고 군인이라고 말을 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명령,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이 훈련에는 ‘고난’이 동반이 됩니다. 고난이 동반되지 않은 훈련은 사람을 강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예) 하나님은 애굽의 노예된 종의 본성으로 머물며 살던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불러 내셔서, 그들을 광야에서 40년간 훈련을 시키십니다. 저도 ‘요르단 광야’를 경험해 보았는데, 요르단의 광야의 길이는 서울에서 대전 정도까지 아무것도 없는 곳입니다. 광야에 딱 들어서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물도 없고, 식량도 없고....,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곳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40년간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 식량으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물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남자의 수만 60만명 이라고 했으니, 보통 당신에는 좀 많은 자녀를 낳았다면 보통 세자녀라고 하면 거의 300만 명입니다. 제대로 된 화장실, 씻을 곳도 없는 곳에서 어머어마한 사람들이 함께 하나님의 훈련을 받습니다.
출애굽한 이들을 위한 광야에서 계획된 하나님의 훈련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고,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훈련자이십니다. 훈련되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어마 어마하게 훈련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백성’이 되도록 준비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사용하실 때 반드시 ‘훈련’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훈련에는 원칙이 있는데, 어떻습니까? 훈련에는 얄밉게도 자기가 잘 못하는 부분을 훈련을 받습니다. 잘하는 것을 훈련하면 쉬울텐데, 아쉽게도 많은 훈련들의 공통점은 우리가 잘못하는 것을 훈련 받습니다. 그래서 힘이 듭니다.
그런데 우리를 훈련 시키는 교관이 아무 훈련이나 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훈련 받는 사람이 이 훈련을 받으면 나중에 반드시 유익을 하기에 그 사람에게 필요한 훈련을 집중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훈련생은 훈련을 받을 때는 왜 이 훈련을 하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예) 저도 군에서 훈련을 받을 때 제일 이해가 안갔던 훈련이 바로 사격훈련입니다. 군대를 다녀오신 분들은 사격전에 하는 훈련 가운데 PRI (Preliminary Rifle Instruction 사격 예비 훈련) 사격술 예비 훈련이라고 하는데, 제 때는 이 말을 설명해 주지 않고, 사격 훈련을 하면서 ‘피나고, 알 배기고, 이가 갈린다’고 할 정도로 고된 육체 훈련을 합니다. 쉽게 생각하면 ‘서 있는 자세에서 다양한 사격 자세’를 훈련하는데, 그 훈련 강도가 너무 고되어서 실제로 사격을 할 때면 ‘팔이 떨려서 제대로 사격’을 하기가 힘듭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사격장에서는 총기를 사용하다가 사고를 내면 겉잡을 수가 없어서, 고된 강도의 훈련을 해서 ‘어떤 상황에서든지 사격을 할 수 있는 자세’를 가지도록, 그리고 ‘사격에만 집중하도록 만들어진 훈련’이라고 합니다. 힘들고 고되지만, 군인들에게는 꼭 필요한 훈련이였습니다.
도전) 주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게 사는 삶 가운데 하나인,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때로는 아주 강한 훈련으로 우리를 이끄실 때가 있습니다. 그 고난으로 인해 때로는 시험이 들기도 하고, 훈련을 받으면서 이해가 안되어서 중간에 포기하고 싶기도 하고, 원망도 하고, 그냥 주저 앉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의 인생을 잘 돌아보면, 우리에게 주신 그 연약함, 약함으로 인해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고, 고난을 받기도 하지만, 주어진 고난을 하나 하나 이겨가면서, 점점 더 강해지고, 그 힘든 훈련을 거친 뒤에 좀 더 나은 단계로 성장해 가는 것을 경험해 보지 않으셨습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훈련으로 인해 우리가 아프고, 깊게 상처를 받아서, 아주 깊은 실패와 좌절을 맛보았는데, 오히려 그것이 어느 시점에서는 더욱 우리를 견고하게 하고, 그로 인하여 더 어려운 난관을 뚫게 된 적은 없으십니까?
(예) 오늘 바울도 디모데에게 이렇게 가르침을 주고 있지만, 한 때 바울도 세상의 학문과 잘못된 것을 쫓다가 인생 실패를 깊이 경험했습니다. 최고의 엘리트였던,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였던 자신이 옳다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고소하던 일을 ‘나중에 자신이 더 많은 고소와 방해와 핍박’으로 경험하지 않습니까? 거기에다가 지금 곧 사형에 처해질 상황까지 가게 되었지만, 바울은 자신의 한 때의 가장 큰 과오 가운데,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면서 많은 훈련과 연단을 받았습니다.
고린도 후서 11:23-27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러한 고난을 경험할 때 얼마나 억울했겠습니까?
그러나 이러한 고난을 훈련 받았기에 초대교회 당시 많은 교회들이 받을 고난에 대해서 분명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디모데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에게 따라오는 고난’에 대해서 담대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적용) 우리의 삶 가운데 찾아오는 이유없는 고난이 찾아 올 때, 여러분 고난의 상황을 바라보고, 겁 먹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저 앉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난을 보지 말고, 고난 뒤에 계시는 우리 하나님의 분명한 역사를 바라보고, 이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달라고, 주님이 주시는 이 고난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십자가 후에 있게 될 인류의 죄속함의 기쁨을 위해 기꺼이 고난을 참아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주여 나를 도우소서” 라고 고백하며 주 앞에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잘 보이지 않고, 때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우리는 분명하게 인도하시고 실수 없이 인도하시는 주님의 훈련과정을 잘 이기시기를 기대합니다.
둘째는 딤후 4:2을 보면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라고 했습니다.
요즘 군에 관계된 뉴스를 보면 “부실 급식”에 대한 논란이 많습니다. 사실 이 기사를 접하면, 50대 후반에 계신 분들은 “군인들이 요즘 얼마나 잘 해주는데 빠져가지고 정신을 못 차린다”고 합니다. 저만해도 그렇습니다. 군 복무 기간이 28개월이였는데, 지금은 18개월입니다. 제 병장 때 월급이 15,000원인데, 지금은 660,000원입니다. 저희 때는 군인들끼리 돈을 거두어서 PX(군인매점)에 가서 과자나 간식을 사먹는게 낙이였는데, 요즘 군인들은 다이어트 한다고, 정부에서 과자나 간식을 보급품으로 줘도 안 먹는다고 합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내무반마다 라면을 먹고 싶은대로 쌓아 놓고 먹는다’고 합니다.
얼마전 한 군종목사님을 만났는데, 제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목사님 때는 집이나 사회에 먹을 것이 없을 때 군에 가면 그래도 먹을 것이 풍부해서 잘 먹은 세대였는데, 지금 세대에는 사회에서 먹을 것이 풍부한 세대에서, 먹고 싶은 것을 못 먹고 가는 세대라 목사님 당시 군인들과 비교 자체가 다른 상황입니다.” 라고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그런에도 ‘바울이 쓴 시대의 군인과 오늘의 군인에게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 중에 하나’는 ‘군인들은 철저하게 자기 생활에 얽메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요즘 군에서는 일과 후에는 핸드폰도 받아서 통화도 하고, 마음만 먹으면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고 자기 개발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인이라는 신분은 철저히 모든 우선순위를 군에 두어야 합니다.
군에서 전해주는 명령에 모든 것을 집중해야 주어진 명령을 잘 이룰수 있습니다. 이것이 아닌 다른 것에 얽메이거나, 다른 것에 우선순위를 두면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군인은 모든 것에서 벗어나 군인으로서 모든 것을 집중해야 제대로 된 군인이 될 수 있습니다. 군인이 되어서 물건을 팔러 다니거나, 사정이 있어서 군에서 하는 업무에 참여를 못하거나, 변명을 하면 그것은 군인이 아닙니다.
예) 지난주 화, 수 일정으로 포항에 있는 한동대학교를 다녀왔습니다. 한동대에는 재학생 4,000명 가운데 500명이 선교사, 목회자의 자녀라고 하고, 많은 학생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실력있게 학생을 양성’하기도 해야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의 거룩과 삶’도 함께 학생들에게 길러 주어야 하는 ‘거룩한 부담’이 있습니다.
한동대 총장님, 부총장과 교수님들을 만나는 시간을 가졌는데, 만남의 핵심은 한동대학교가 어떻게 선교적 사명을 잘 감당할지 주제로 정하고, 교수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소개하고, 선교적 관점에서 조언을 해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교수들이지만 자신이 맡은 선교적 사역들을 아주 정중하고 진지하게 소개를 해 주었고, 하나씩 소개를 받을 때, 마음속에서 큰 감동이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한동대는 포항에서, 그리고 포항 시내와는 좀 외진 곳에 있어서 한 번 학교에 들어가면 나오기가 싶지 않습니다. 그런 곳에서 교수들이 정말 실력있고, 명예와 돈을 벌려면 좀 더 욕심을 부려도 될 아주 훌륭한 이력을 가지신 분들인데, 자신의 것에 얽메이지 않고, 자신들의 재능으로 한동대에 온 학생들을 제대로 선교적 인재로 키워보려는 열정에 감동이 되었습니다. ‘교수로서 다른 것에 얽메이지 않고, 학생에게 집중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정말 멋있었습니다.
예2) 지난 목요일 저녁에는 서울대학교에서 유학생 사역을 하는 목사님의 교회에서 저녁 늦게까지 모임이 있었습니다. 주제는 “다음세대 선교인력 개발”을 위해 청년들과 선교사 자녀들과 청년 및 대학생 단체를 섬기시는 분들이 모여서 밤 늦게까지 회의를 했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즘 ‘청년들이 왜 선교의 자리로 나오지 않고 있는지, 기성세대가 청년들을 위해 준비하는 프로그램에 왜 청년들이 외면’하는지를 깊게 토론을 했습니다.
청년들을 열정페이로만 선교에 강요하지 말고, 시스템을 만들고, 청년들과 소통을 하고, 연구를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한참 나왔습니다. 그런데 24세였던 대학교 4학년 자매의 이야기를 듣고 많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자신은 중,고등학교 시절 단기선교의 기회가 있어서 6번 정도를 선교를 다녀 왔는데, 뭐를 잘 모르던 어린 시절이였지만, 복음을 분명히 듣고, 확신있게 비전을 가진 주변 친구들의 영향으로 도전을 받았고, 단기 선교를 통해 우리 나라에 많은 선교사님들이 오셔서 복음을 전해 주셔서, 그 복음을 들었기에 지금 자신이 있는 것이기에, 대학에 가서도 단기선교를 가고, 아예 1년을 어려운 지역에 가서 단기선교사로 사역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정 형편이 선교를 나갈 형편이 아니였다고 합니다. 아버님이 청각 장애인으로 일용직 노동자였고, 정부 지원으로 겨우 겨우 생활을 하던 형편이였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3개월 이상 외국으로 가면 정부 지원이 중단이 된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아버니께 자신의 선교 비전을 말씀을 드리고 선교를 다녀왔다고 합니다. 법이 바뀌어서 부모님에 대한 정부지원은 중단이 되지 않았지만, 자신이 받던 정부 지원은 중단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자매는 그런 어려운 상황에 얽메이지 않고 선교”를 위해 헌신하고 있었습니다. 경제적 형편과 어린 나이로 하고 싶은 것도 많고, 24살 나이로 얽메이고 싶은게 많을텐데, 오히려 이 자매는 얽메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말이 그 자리에 있던 청년 사역자들과 선교사역자들에게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목사님들과 선교사님들이 저희들 위해서 이런 저런 시스템 만들어 주시는 것은 감사한데, 그것은 우리 청년들이 알아서 할 수 있어요.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분명한 하나님의 비전과 도전 앞에 바로 설 수 있도록 분명하고 확실한 말씀으로 우리 청년들에게 도전해 주세요. 제대로 된 말씀만 전해 주세요” 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이 24살의 자매의 말에 많은 도전이 되었습니다. 이 어린 자매도 살기 정말 힘들고,좋은 기업에 취직하려는 졸업반 친구들을 곁에 두고, 정말 얽메일 게 정말 많은데, 그 모든 것에 오히려 얽메이지 않고, 자신의 전공과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감당하기 위해 어려운 하루 하루를 이겨내는 모습이 너무나 귀했습니다.
적용) 여러분 우리 하나님도 우리를 보실 때, “삶이 힘들고, 할 일이 많아서 이것저것 얽메일게 많지만,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하루 하루를 주의 군사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 어떻실까요?
오늘 디모데 후서 2:4을 보면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세상에 얽메이지 않고,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이 하나님의 기쁨이 된다’고 했습니다. ‘하고 싶은 것 다하고, 이것 저것 다 재어 보고, 이득이 되겠다 싶어서 군사로 일하는 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바울사도는 최후의 서신인 이 디모데후서를 통해, 이제 생명의 기한이 얼마남지 않은 상황에서 가징 핵심이 되고, 진실이 되는 영적인 권면으로 교회의 지도자가 되는 디모데에게 이것을 부탁했습니다.
딤후 2:3-4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는 어떠한 말씀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이 말씀 앞에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시겠습니까? 여러분이 디모데라면 스승인 바울이 마지막에 준 이 말씀이 어떤 의미로 다가 오십니까?
결론
오늘은 현충일입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군인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억하며,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날입니다. 인터넷 검색어로 “현충일 대체 공휴일”을 검색하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속에 사는 이 시대를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 숭고한 정신을 기억하면서, 이 나라와 세계를 향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군인’들과 같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 나라를 지키기 위한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로, 바울 사도의 마지막 서신서이며, 사형을 앞두고 마지막 유언같이 우리에게 전한 이 말씀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기를 바랍니다.
설교 초반에 대통령의 미 해병대 참전용사들을 방문에서 한 연설 가운데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숭고한 희생을 치렀다” 라는 말처럼, 오래전 알지도 못하고, 만난적도 없는 선교사들이 조선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먼저 치루었던 숭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믿음의 선배인 바울 사도의 권면이 헛되지 않게, 무엇보다도,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신 그리스도의 고난이 헛되지 않게 오늘 우리에게 삶과 사명을 주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모두 응답하기를 바랍니다.
이제 “이제는 선교다” 라는 고백은 그냥 구호가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이고, 특별히 코로나 시대에 무너진 선교를 위해 우리 교회를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입니다.
매주 이 고백을 하는 우리들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부탁한 오늘의 말씀처럼, 이 말씀을 우리의 ‘삶과 사역’에 함께 받아 들여야 합니다.
이 부르심을 위해서는 적당하게 군복을 입은 무늬만 그리스도인으로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이 위대한 사명을 위한 고난도 감당해야 하고, 얽메이던 것을 내려 놓고, 주님의 군사로 살아야 합니다.
일주일짜리 입대 군인으로 훈련없이 군인으로서 제 역할을 못하는 군인이 아니라, 우리도 주님의 이 특별한 시대적 부르심과 사명을 감당하는 주님의 강철부대가 되어야 합니다.
이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주님의 좋은 군사로 부르신 주님께 기쁨이 되어지며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지켜 나가고 확장하는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