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74일 시편 23:1-6 푸른 풀밭에 누이시는 하나님

설교영상 보기 - https://youtu.be/BzgPZyojcn0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23편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시편입니다.

7월은 여름휴가가 시작이 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휴가를 앞두고도 우리의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갈 곳도 마땅치 않고, 간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몰리는 곳에 가면 코로나 감염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23편의 쉴만한 물가, 푸른 풀밭에 누이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며, 쉴 곳을 찾고 있으나 제대로 된 쉼을 찾기가 더 어려워진 특별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우리에게 참된 쉼을 주시는 쉴만한 물가, 푸른 풀밭에 누이시는 하나님을 소개한 시편을 좀 더 깊이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이 시편 23편을 잘 아는 시 정도로만 알고 넘기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속의 내용들을 깊이 알고, 그 말씀 속에서 주시는 분명한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면서 여름휴가 일주일만의 쉼이 아니라 우리 인생 전체에서 제대로 된 쉼이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시편 23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좀 역사적인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목축업을 주로 하는 민족이였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이나 선지자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공동체였던 이스라엘이 주변 국가들을 보니, 그들에게는 왕이 있고, 왕의 감독아래 군사나 정치가 되어지면서 외형적인 모습이 좋아 보이니, 하나님께 왕을 구합니다. 당시 선지자였던 사무엘은 자신이 영적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스렸던 상황에서 백성들의 왕에 대한 요구를 받게 됩니다. 사무엘 상 8:4,5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세워진 왕이 사울 왕입니다. 왕이 되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왕은 왕으로서의 나라의 체계를 구축하기 원했습니다. 조직을 세우고, 통제를 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듭니다. 잘 통제를 하려면 뭔가에 중심을 잡고, 그 밑으로 다 붙들어 메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니 그 동안의 이스라엘 문화는 이리저리 떠돌고 돌아다니는 문화였는데, 이제 정착 문화가 자리를 잡게 되어집니다. 왕이라는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조직을 관리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백성들에게 세금도 걷고, 세금을 걷으려면 힘도 있어야 하고, 그 힘을 위해서 군사력을 길러야 했습니다.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새롭게 모든 조직을 만들고 세우려고 하니 얼마나 혼란스럽겠습니까? 어디서 뭐를 본거라도 있으면 그것을 따라서 할 수 있는데, 그런 경험도 없는 상황일 때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하겠습니까? 답을 찾아야 하는데, 답이 나오지 않으니 답답해서 컨닝을 합니다. 바로 주변에 이미 왕정통치를 하는 다른 이방인들의 삶을 쫒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과 다르게 정착문화를 가졌고, 그들은 그 정착 문회에서 이스라엘의 목축문화와 다르게 농경문화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 농경문화에서는 자연의 환경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그들은 바알이라는 신을 쫓았습니다.

원래 이 바알이라는 히브리어의 원 뜻은 가축이나 재물, 성읍의 소유주를 가리키거나, 부인을 소유한 남편을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에는 이 단어가 모든 우상숭배의 대상을 지칭할 때 바알이라는 것으로 사용이 되어집니다. 고대 문헌에 나온 이 바알 신에 대한 성격을 보면 비의 신, 우뢰의 신, 풍요의 신으로 나타납니다.

이 때 이 시편 23편을 기록한 다윗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안타까워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전에는 선지자나 제사장의 말씀에 귀를 귀울이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는데, 이제는 왕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왕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암암리에 농경문화의 신인 바알에게 서서히 마음을 주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목축문화에서 농경문화로 바뀌면서 자연환경에 따라 소출이 많고 적음이 되어지니, 비를 내리는 신, 태양을 내리는 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 다윗은 이 시편 23을 통해 더욱 더 분명하고 확실하게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고백을 하고 선포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비슷한 현상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분명하게 경계를 가지는 문화가 있습니다. 바알과 같은 세속문화와 다른 하나는 하나님 나라를 따르는 자들의 문화입니다. 세속문화는 무엇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습니까? 그것은 바로 입니다. 하나님보다 먼저 돈을 쫓아갑니다. 실제로 그 영향력은 엄청납니다.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바로 입니다. 돈이 있으면 참으로 많은 것을 해결해 주고, 돈이 없어서 많은 문제를 풀지 못하고 어려움을 가집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시편 23편을 이렇게 바꾸어서 이야기 합니다.

돈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돈이 나를 안락한 고급 침대에 눕게 하시고, 달콤한 맛집과 술집으로 나를 인도하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내 통장에 돈이 있음이라, 돈의 권세와 보호가 나를 안전하게 하고, 때로는 돈이 원수를 만들고 나를 괴롭게 하나니 내 머리에는 항상 돈 생각으로 근심의 잔이 넘치는구나. 나의 평생에 욕심과 정욕이 나를 따르리니 내가 돈을 믿고 살다가 죽으리로다고백하고 살고 있습니다.

돈이 우리의 삶에 목자가 되면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의 목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나의 목자가 되어 주셔야 합니다. 우리가 어디에 소속이 될 것인지 분명하게 선을 긋고 살아야 합니다.

 

양을 사게 되면 목자는 양들의 한쪽 귀 끝을 칼로 베어냅니다. 목자가 베어낼 때 아주 독특한 자기만의 표식을 가지고 베어내기 때문에 아주 멀리서도, 그리고 다른 주인의 양들과 섞여 있어도 자기의 양인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분명하게 구별이 된 양들은 자신의 목자를 통해서 살게 됩니다. 목자는 이렇게 자기의 것이라고 구별된 양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돌보게 됩니다.

목자가 되어지면 양을 지키고 보호할 권한과 함께 의무가 됩니다. 그래서 양들을 항상 곁에서 살피게 됩니다. 예수님도 이 양을 돌보는 목자를 이야기 하실 때 늘 자주 사용하셨던 단어가 있는데, 그 단어 중에 하나가 선한이라는 단어입니다. 선한은 히브리어로 토브라는 단어를 쓰는데, 영어로는 goodness, 이고 우리 말로는 선한, 착함이라는 말로 사용이 됩니다. 목자는 양에 대해서 선 합니다. 그래서 항상 양들 곁은 지키고, 그리고 때로는 무서운 맹수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밤에도 잠을 자기 않고 지킬 때가 많습니다.

 

시편 23편의 장소적 배경은 유대의 광야인데, 유대 광야는 물이 없고 풀이 없습니다. 양이 스스로 물과 풀을 찾을 수 없습니다. 양은 또 시력이 너무 나쁩니다. 3m 정도의 시력 밖에는 볼 수 없기 때문에 가까이에 맹수가 오면 그냥 무조건 밥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눈이 나뻐서 무리에서 잘 이탈하고, 길을 잘 잃어버립니다. 그런데 이런 양이 그런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살 수 있는 단 한가지의 유일한 비결은 목자와 함께 있으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갓난아기나 어린 아기가 아무것도 할 수 없어도, 엄마만 있으면 모든 것에서 다 보호가 됩니다. 배고프면 먹을 것을 주고, 오줌 싸고, 똥 싸면 엄마가 다 알아서 씻겨주고 갈아줍니다. 아프면 엄마가 다 필요한 처방을 주고 아이를 낳도록 더 지극정성으로 간호합니다. 추우면 따뜻하게 옷을 입혀 주고, 어딘가 불편해서 울면 엄마가 와서 달래줍니다. 아기에게는 엄마만 있으면 모든 것을 해결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에게는 우리 하나님이 함께 계셔야 한다는 것을 시편 저자인 다윗은 알고, 이것을 분명하고 확신이 있게 선포합니다. 우리에게는 여호와가 계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분이 계셔야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이야기 합니까? 그것은 많이 가진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남부럽지 않게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정말 이해가 안되는 것은 그렇게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일을 많이 합니다.

기업 전체를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도, 일하는 사람 마음하나 못 잡은 것이 분해서 그것 때문에 이해 할 수 없는 행동을 해서 지금 유치장에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업의 후계자인데, 검찰의 조사를 받다가 창문으로 뛰어내려 자살을 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판사나, 정치인들, 심지어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유명한 운동선수나 연예인들인데도 그들은 뭔가가 부족하다는 메시지를 주고, 이 세상을 떠나기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부족함이 없다라는 것은 두 가지의 정의를 내릴 수가 있는데 하나는 의심할 나위 없이 적절한 보살핌이나 관리나 살림살이에 있어서 모자람이 없다.”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더 이상 그 어떠한 것도 갈망하거나 희구하지 않는다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 23편에서 다윗은 이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그 분은 선한 목자이기 때문에, ‘나를 가장 좋은 곳으로 인도하고, 나에 부족함이 없는 가장 최선으로 인도하시는 분이기에 그 분 안에 온전히 거할 때, 우리의 인생은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쁜 목자는 양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그에게 양은 단지 길러서 죽일 짐승으로만 생각하지, 그 이상의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양의 먹이로 쓰일 목초지에 대한 관심도 없습니다. 맹수들로부터 보호하려는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폭우와 눈보라에서 추위에 떨고 있을 때 이 양들을 안전하게 보살펴 줄 대피소도 준비해 놓치 않습니다. 양들이 먹을 물도 관리하지 않습니다. 더러운 물을 먹고 병에 걸려도 양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언젠가 몽골에서 양을 기르는 목자의 삶TV에서 유심히 지켜 본적이 있었습니다. 60대 할아버지셨는데, 양을 거의 자식같이 돌아봅니다. 그리고 제일 놀랐던 것은 수 백마리의 양들에게 이름을 다 붙여주고, 그 양들의 생김새와 행동들을 다 알고 있고, 심지어는 그 지어준 이름을 다 기억하는 것을 보면서 많이 놀랐습니다. 양이 아프거나 몽골의 추위를 견디지 못해 죽으면 목자가 되는 그 할아버지도 같이 웁니다. 좋은 목자는 양을 짐승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식처럼 생각합니다.

 

최근에 동물보호단체에서 제기하는 여러 인간의 행태들을 고발하는 보고서들을 보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게 도살되는 것 중에 하나는 반달곰 사육이라고 합니다. 원래 반달곰은 넓은 곳을 다니며 자연속에서 지내는 습성을 가졌는데, 사람들은 반달곰을 가두어 놓고, 사람 건강에 좋다고 하는 쓸개즙을 뽑아 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살아있는 반달곰의 배에 구멍을 뚫고, 뚫린 곳에서 고름이 흘러나오지만 그 구멍에 다시 가는 바늘을 넣어서 쓸개즙을 반달곰의 몸속에서 뽑아냅니다. 하루에 두 번씩 이렇게 하는데,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하던지 고통을 이기려고 쇠창살을 이빨로 물어뜯다가 이빨이 다 없어진 곰도 있고, 고통으로 얼굴을 쇠창살에 너무 많이 문질러서 얼굴에 털이 하나도 없는 곰도 많다고 합니다. 물론 이 쓸개즙을 먹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부분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은 더 충격적입니다. 매년 한국인 30 만명 정도가 중국에 가서 쓸개즙을 구매해 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원래 살아가는 방식을 파괴하고, 제대로 걷지 못하는 우리 속에서 매일 더러운 위생환경에서 뽑아낸 그 쓸개즙은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트레스와 각종 질병에 걸린 곰의 병균을 마시는 것이라고 보고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루왁커피(고양이에게 먹여서 얻어 낸 발효커피)가 인기를 얻으니까, 고양이를 이 곰과 같이 사육에서 정말 무식하게 커피를 공급 받습니다. 골고루 먹어야 되는데, 커피만 먹입니다. 수량이 딸리니까 고양이로만 안됩니다.

한 때는 가장 비싼 커피로 등재된 것이 코끼리 똥에서 발효된 커피도 사람들 사이에서 돌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블랙 아이보리 커피로 불렸는데, 커피 1kg에 보통 저는 18,000원 정도를 사서 먹는데, 이 커피는 200만원이라고 합니다. 한잔에 보통 18,000원 정도라고 합니다. 조만간 코끼리 학대에 대한 이야기도 곧 나올 것 같습니다.

 

이처럼 나쁜 목자는 오직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만 동물들을 기릅니다. 돈이 되는 것이면 뭐든지 합니다. 이 세상도 어쩌면 우리에게 이렇게 위협을 가 할지도 모릅니다. 돈이 되는 것은 뭐든지 가리지 않고 하게 합니다. 돈이 오라고 하는 곳에는, 돈이 부르는 곳에는 신조도 필요 없고, 때로는 양심도 필요 없습니다. ‘의리도 없습니다. 돈을 얻기 위해 때로는 우리가 쓸개즙을 주는 반달곰 같이, 고급 커피를 주는 고양이나 코끼리처럼 되어도, 거절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인생이 끝나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여러분 한 번 밖에 없는 우리의 이 소중한 인생을 우리가 귀하게 사랑을 받고, 대접을 받고 살기 위해서는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가 온전히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고백을 하고 주님을 맡겨야 그 선한 목자 되시는 주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이전의 습관과 이전의 방식을 그대로 하고, 입으로만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예비하신 주님의 참된 돌보심을 경험해 보지 못하고 놓치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 W. Philip Keller(1920-1997)는 선교사의 아들로 케냐에서 태어나 아프리카에서 자랐습니다. 성장해서는 여러나라를 다니면서 야생 식물 사진 작가로서 또 농업 경제학자로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8년 동안 양을 친 경험을 토대로 <시편23편에 나타난 목자 A Shepherd Looks at Psalm 23>라는 책을 썼습니다.

 

필립 켈러의 경험에 따르면 양중에 정말 매력적이고 잘 생긴 암양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암양은 다른 암양에 비해서 머리도 좋고, 두 분도 아주 밝게 빛났던 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매혹적인 속성임에도 한 가지 두드러진 결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 암양은 불만이 많고 침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주 울타리를 기어오르기도 하고, 약간의 틈만 생기면 무리에서 빠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 암양은 풀이 모자란 것도 아닌데 타고난 버릇 때문에 자기의 주변의 환경과 물건들을 만족하지 않고, 늘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은 자기에게 있는 풍성한 풀을 먹지 않고, 다른 곳을 돌아다니다가 하루 종일 고생만 하고 올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고생을 해도 하루가 지나면 그 사실을 또 잃어버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목자의 입장에서는 이 골치 아픈 암양 하나면 되겠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 암양이 자기 새끼들에게도 똑같이 그 꾀를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새끼들이 제 어미가 하는 대로 그대로 따라하고 얼마 안 되어 제 어미처럼 울타리를 넘어오거나, 틈을 찾아서 무리에서 자꾸 이탈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끼양들이 울타리를 넘어서 위험한 곳에 노출이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암양은 다른 양들을 데리고 똑같이 자꾸 울타리를 넘고 틈을 찾아서 자꾸 이탈하게 했습니다. 결국 양치기는 이 한 마리로 인해 전체 양에게 치명적인 위험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매력적이고, 잘 생기고, 똑똑한 양이였지만, 결국 죽임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고집스런 양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어쩌면 우리와 같지 않나!’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고백은 하지만, 교회의 울타리 안에 있다고는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사랑을 충분하게 여기지 않고, 울타리 밖을 넘보게 됩니다. 세상에 더 좋은 것이 있는 줄 알고, 그곳을 향해 자꾸 나아갑니다. 진로를 결정할 때도 하나님이 인도해 주신 것보다는 자기의 욕심에 이끌려서 결정을 합니다.

 

자기만 가면 불안하니까, 멀쩡하게 잘 지내는 다른 사람들을 같이 몰고 갑니다. 자기도 모르고 책임지지 못할 길로 인도해 갑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이 이렇게 불안한 길로, 가지 말아야 할 길로, 곁길로 가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는 분명한 고백을 하고, 그 분명한 고백대로, 부족함이 없이 우리의 인생을 책임지고 돌보아 주실 주님에게로 향해야 합니다. 바알을 기웃거리고, 세상의 문화에 기웃거리지 말기를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디를 기웃 거리고 있습니까? 남들이 공들여 세운 자리가 탐이 나서 그 사람을 밀어버리려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경쟁사회이니까 남을 밟아야 내가 올라갑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이 좋아서 자꾸 거기를 기웃 거립니까? 하나님을 우리 중심에 두는 것을 멀어지게 하는 우리의 삶의 문화를 잘 분별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혹시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목자라고 고백하는 것이 부담스러우십니까?”, 그렇게 고백하고 살면 돈도 못 벌고, 즐거움도 없이 살까봐 겁이 나서 거리를 두고 계십니까?

우리가 주저하면서 온전히 주님을 의지하지 못하면, 100%로 우리의 삶을 운영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윗과 같이 지금 목축문화에서 농경문화로, 선지자와 제사장에서 왕의 통치로 가는 격변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가치와 기준에 흔들리지 말고, 이럴 때일수록 더욱 주님을 나의 목자라고 고백하고 살기를 원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어느 때보다도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이 시기, 우리가 믿고 의지하던 것들이 다 멈추고, 무엇을 의지해야 할지 모르는 이 때가 어쩌면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여호와를 나의 목자라고 고백하는 하나님의 사람을 간절히 찾고 계시는 시간 일지 모릅니다.

인간이 만들었던 쉴만한 물가, 푸른 풀밭은 하나님이 주시는 쉴만한 물가, 푸른 풀밭과 결코 비교 할 수 없습니다.

 

이 위기의 시간을 통해서 갈 곳을 잃은 우리이지만, 분명하게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고백하며, 양처럼 목자에게 더욱 밀착해서 붙어 사는 삶의 관계를 주님은 원하고 계십니다. 출애굽 백성의 광야훈련은 광야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그 황폐한 상황에서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예배하는 훈련을 철저히 하라고 인도하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도 광야와 같은 코로나의 시기를 걸어가고 있습니다. 일시적이 아니라 우리는 매순간 이 위험속에 살아가고, 독감처럼 매년 백신 주사를 맞아야 하는 불안감에 살고 있습니다. 백신의 효과가 영원하지 않고, 바이러스가 계속 변형이 되면서 더욱 치명적이고, 강한 바이러스들이 우리의 삶에서 우리를 흔들어 놓아서 우리에게 제대로 된 쉴만한 물가, 푸른 풀밭을 찾지 못하도록 위협합니다.

 

그럼에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시편 23편의 말씀을 기억하고, 우리의 형편을 가장 잘 아시고, 우리에게 가장 적절한 쉴만한 물가,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실 주님을 나의 목자로 고백하고 나아가야 우리가 제대로 된 쉴만한 물가, 푸른 풀밭으로 나아간다고 시편 기자는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그 고백 가운데 긴밀한 교제와 그 분이 인도해 주시는 방향으로 가면서 풍성한 삶을 살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10:10에 나온대로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어떤 순간이 우리에게 올지라도, 코로나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 온다고 할찌라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내 곁에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를 더욱 풍성한 삶을 이끄시는 주님을 더욱 붙잡아야 합니다.

 

코로나의 위협속에 여름휴가를 찾는 우리들의 상황속에서, 갈 곳 없는 우리의 한계가 분명히 드러나는 상황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그 어느 때보다도, 여호와를 나의 목자로 모시고 주님께 온전한 인도함과 보호하심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목자되신 주님 곁에서 나의 진정한 삶의 인도자가 되어 주시옵소서, 내 앞길의 모든 염려와 걱정속에서 우리를 가장 안전한 쉼을 제대로 공급해 주시는 주님 앞에 가지고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분의 인도하심의 길을 온전히 따라 나아갈 때 주시는 하나님의 그 풍성하심을 온전히 경험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국에서는 보리 추수를 주로 6월 중순이나 말경에 합니다. 보리 추수를 끝낸 이후 하나님께 수확의 감사를 드리는 절기로 지킨 것이 한국 교회의 맥추감사절의 유래이고, 그래서 주로 7월 첫 주일을 맥추감사절로 지킵니다. 그러는 가운데 우리는 지난 1월부터의 6개월 간의 반년을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남은 7월부터 12개월을 주님 앞에 믿음으로 드리며, 주께 맡기는 믿음의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6개월의 여정속에서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잠잠해 지고, 7월이 오면 자유스러워지고, 여름성경학교나 수련회도 자유롭게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7월을 시작해도 쉽게 가라 앉지 않습니다. 그래도 올해 초에 온라인으로만 드리던 예배를 조금씩 회복해서 20%이지만,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것도 굉장히 큰 감사입니다.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주님께서 우리 가정과 교회의 목자가 되어 주셔서 우리를 변함없이 지키시고, 살펴 주신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주님께 온전히 감사를 드리며, 남은 6개월은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결단하여, 주님을 더욱 더 온전히 따르겠다고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우리를 가장 최고의 쉴만한 물가, 푸른 풀밭으로 인도해 주실 주님을 온전히 고백하는 결단의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주님이 나의 목자가 되어 주셔서, 우리를 항상 인도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말로만 고백하고, 실제적인 삶에서는 주님을 인정하지 않고, 내 뜻대로 나아갔음을 용서하여 주시고, 온전히 주님만 쫓아가고, 묵묵히 주님을 따랐을 때, 나의 목자 되시는 주님이 주시는 참된 축복을 온전히 경험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가장 적절한 곳으로의 쉴만한 물가, 푸른 풀밭으로 인도해 주시고, 지난 반년을 신실하게 인도해 주신 주님이 남은 반년도 우리를 인도하고, 동행해 주실 것을 기대하고 바라고, 의지하고, 주님의 길로 온전히 따르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