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14일, 갈 5:1,13,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설교 영상 보기 - https://www.youtube.com/watch?v=ye3ZK75W1dc&t=291s
2019년 1월에 개봉되었던 영화 ‘말모이’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어학회”의 우리말 지키기에 대한 내용이 잘 소개되었습니다. 영화의 끝장면에는 일제 강점기에 현실을 보여 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서울역 광장에서 6살 정도 되는 조선의 아이가 영화의 주인공과 이야기를 하는데, 아이들이 우리말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일본어로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말을 잃은 아이를 보면서, ‘조선의 미래’가 없다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오늘은 주일이면서 76주년 광복절입니다. 나라를 잃고, 일본의 종이 되어, 자유를 잃고 모든 것에 소망이 없던 암울한 시기를 이기고, 나라를 다시 찾은 날입니다. 얼마전 일본에서 동경 올림픽이 마쳐졌는데, 코로나 시대에 치러진 올림픽이지만, 이번 동경 올림픽을 지켜 본 많은 한국 사람들은 ‘일본이 부럽고,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왜 저러지, 왜 저 정도 밖에 못하지” 라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꽤 많았던 것 같습니다. 보통 올림픽을 개최하면 그 나라의 발전된 모습이 많이 소개가 되어지는데, 이번 동경 올림픽은 일본의 한계를 더 많이 보여 준 부분을 많이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매년 평가하는 국가경쟁력 평가 순위에서 2020년 한국 국가경쟁력은 23위, 일본은 30위로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이 더 높게 평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나라가 일본의 지배하에 종 노릇 하던 과거가 아니라 지금 세계가 주목하고, K-POP과 한류 열풍으로 전세계 많은 나라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을 모델로 하는 나라가 더 많아지고, 국제사회에서도 중요한 역할들을 하나씩 감당해 나가고 있는 자주 독립 국가로서의 분명한 위상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2006년부터 국제 항공 운송 협회 데이터를 기준으로 매년 나라별 여권 지수(PASSPORT)를 발표하고 있는데 가장 최근 발표한 헨리 패스포트 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여권 지수는 3위에 올랐습니다. 비자를 발급받지 않아도 자유롭게 입국할 수 있는 나라가 189개국으로 여권 파워가 상당합니다. 참고로 미국과 영국은 7위입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과거 일본의 식민지 지배하에 종노릇 하던 나라가 아니라, 당당한 자유로 전 세계인들과 교류하고, 활동하는 자유국가입니다.
도입) 저는 지난 한 달 정도 묵상한 성경에서 특별한 부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종’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성경 곳곳에서 이 ‘종’에 대한 내용이 곳곳에서 많이 발견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종’이란 단어는 ‘노예’라는 말과도 같이 표현이 되어지는데, 구약에서의 보편적인 단어는 히브리어 ‘에베드’라는 단어로 자주 표현이 되는데, 종 들 가운데서도 돈을 받는 종으로 ‘사키’라는 단어로 사용이 되어지는데, 이 단어는 우리가 잘 아는대로 ‘품꾼’으로 번역이 되어집니다.
성경 시대의 ‘종’들은 주인의 재산이고, 주인의 재량권 아래에 전적으로 놓여져 있습니다. 이 종들은 결혼을 하면 그 배우자와 자녀들도 종으로 되어집니다. 고대 사회는 전쟁이 많았기에 전쟁에서 지면 전쟁 포로가 되어집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라는 로마 콜로키움에서 검투사 노예로 살았던 주인공도 원래는 다른 지역에서 장군으로 살았던 인물인데, 노예 검투사로 전락을 했습니다. 고대 시대의 노예나 종들은 못 배우고, 힘이 없고 약한 사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처럼 잘 배우고, 힘이 있고, 똑똑한 사람임에도 전쟁 포로 등으로 노예나 종으로 삶의 신분이 바뀌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런 관점이 있기에 저는 지난 한 달 동안 오늘 우리가 읽은 갈라디아서인 “바울 사도의 입장에서 로마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시대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당시에 주로 보았던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특별히 바울 사도가 기록한 여러 서신서에 자주 등장하는 ‘종’이라는 표현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1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바울 당시의 로마시대를 한 번 연구해 보았습니다. 이 때는 로마의 전성기 시대로 이스라엘도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로마 시대에 대해서 그 권력과 힘이 얼마나 큰 가를 알 수 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우리가 잘 아는 로마의 원형 경기장인 콜로세움은 포로로 잡혀 온 노예 검투사들이 생명을 걸고 싸움 경기를 하는 곳으로 알고 있는데, 이 싸움 중에는 노예 검투사끼리 하는 경우도 있지만, 노예 검투사와 맹수와 벌이는 경기도 있었는데, 가장 최고의 경기는 수중전이라고 합니다. 이 수중전을 위해서는 이 콜로세움 경기장에 엄청난 양의 물을 부어서 경기장이 물에 잠기게 하고, 전투선이 등장하고, 그 전투선에서 노예 검투사들이 죽고, 죽이면서 바다에서 진행되는 수중전을 재현한 경기가 제일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물이 빠져나가지 않기 위해 경기장 설계가 얼마나 정교해야 하고, 물이 귀한 시대에 경기장을 가득 채울 물을 공급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당시 노예들을 이용해서 이 엄청난 경기장을 건설하고 운영했던 로마의 힘이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이러한 일들을 하면서 로마는 전쟁에서 이기고 데리고 온 많은 전쟁 포로들을 종으로 데려오고, 그 종들을 가혹하게 대했던 것으로 유명한데, 당시를 살았던 바울 사도는 전도 여행중에 경험한 많은 지역들을 다니면서 이러한 ‘종’들이 쉽게 보였을 것입니다.
같은 인간이지만, 인간 이하의 짐승 취급을 받았던 ‘종’들의 모습 속에서 보게 된 인간의 비참함과, 그 종들이 그 비참한 현실이지만, 종으로서 살아가는 하루 하루를 보았을 것입니다. 생명의 존엄이라고는 느낄 수 없었던 당시의 종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종’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말하지 않다도 너무나 쉽게 알 수 있었던 내용이였습니다.
당시를 재현한 영화나 고대문헌들을 살펴보면, 이탈리아 전역에 약 200만 명의 노예가 있었으며, 자유민과 노예의 비율은 1대 3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고, 매우 가난한 로마 시민도 노예 1명이나 2명은 소유하고 있었다고 했을 정도입니다. 특별히 로마를 움직이기 위한 노예 의존도가 많았는데, 로마는 이를 위해 많은 전쟁으로 전쟁 포로들을 잡아 오고, 매매를 했었습니다.
이 종들의 이야기들을 고대문헌들을 통해 살펴보면, 분명하게 떠오르는 한 문장이 있는데, 주인에게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했고, 주인들은 노예, 종들을 다루기 위해 가혹한 태도를 가졌고, 이로 인해 종들은 “절대 순종”을 합니다. 주인에게 토를 달거나,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주인이 하는 일이 불합리하고, 말이 되지 않는 일을 시켜도 종들은 ‘자기 의견’을 낼 수 없었습니다. 주인과의 대화에는 오직 “예”만 있습니다. 이런 저런 핑계를 될 수 없습니다. 하루 하루가 전부이고, 보장된 내일이 없습니다. 미래가 없습니다. 가족에 대한 보호나 보장도 없고, 물건처럼 여겨집니다.
저는 이러한 상황에서 한 번 바울 사도에게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왜 그리스도인들을 당시 사회에서 가장 낮고 낮은 비참한 존재인 ‘종’으로 비유를 했을까? 가뜩이나 수 많은 신들이 있던 당시 사회에서 좀 더 좋아 보이고, 괜찮아 보이는, 좀 고급스러워 보이게 대체할 뭔가가 있었을텐데, 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의 종’으로 묘사를 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울 사도만 ‘종’으로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 사실 구약시대에 이미 오래전에 하나님께서는 이 ‘종’에 대한 개념과 관계를 분명하게 알고 이미 먼저 우리에게 정리를 해 주셨습니다. 이미 출애굽 시대를 통해서 로마시대보다 더 무시무시한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잘 아셨습니다. 이들은 거의 400년 동안 이집트의 종살이를 했습니다. 우리도 과거 35년을 일본에 식민지 지배를 당해도 많은 것들이 바뀌고, 어려웠는데, 고대 시대에 400년이나 남의 나라에서 지배를 당했으면, 우리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이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입니다. 구약에서 가장 큰 메시지가 되는 출애굽에서도 하나님은 종된 이스라엘을 건져 내심으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구약성경의 이사야를 보면 한 번 더 ‘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 44:1을 보면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사야 48:20에도 “너희는 바벨론에서 나와서 갈대아인을 피하고 즐거운 소리로 이를 알게 하여 들려 주며 땅 끝까지 반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의 종 야곱을 구속하셨다”라고 합니다. 이사야서에는 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만 ‘종’을 구속하는 여호와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그냥 로마 시대 주인과 ‘종’과 같은 정도로 표현하지 않고, 천지를 창조하고, 온땅과 하늘을 다스리는 능력의 하나님이 종된 우리의 주인이라고 합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종으로 사용하기는 하시지만, 그냥 주인으로 종의 수고의 열매를 가로채는 주인이 아니라, 종들에게 분명한 보상을 하고, 기대 이상의 보상으로 그들을 세워 주시는 하나님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41:9-10을 보면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는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짓밟고, 누르던 애굽 주인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종이였는데, 말만 종이지, 자식과 같이, 아니 자식보다 더 귀하게 여겨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줍니다.
‘종’이 받기에는 너무나 과분한 사랑입니다.
종과 같이 버림 받은 이들을 하나님은 이들을 이끌어 주시고, 수 많은 기적과 사랑으로 종이 받기에 너무나 과분하고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예) 2013년 5월 31일 방영한 KBS 명작다큐에서 소개된 이야기입니다.
1. 박가 / 1862년 서울시 관자골(관철동)에서 백정의 아들로 출생하여, 그도 백정이 되었다. 당시 백정들은 최하위, 이름이 없다.
2. 청일 전쟁에 이은 콜레라 – 하루에 300명씩 죽어 나감, 괴질로
백정 박가도 전염병, 당시 백정이 의료혜택을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박가의 아들 봉출도 백정이 될 상황인데, 이를 사무엘 무어 선교사가 열었던 가난하고, 힘든 아이들을 위해 열었던 학당에 보내는데, 죽음의 위기에 처한 아버지를 위해 봉출이 사무엘 무어 선교사에게 치료해 달라고 요청. (사무엘 무어 선교사, 언어 시험에 탈락, 이유 백정들에게 가까이해서 그들에게 언어를 배움, 고종 전도-알렌의 중단, 승동교회, 동막교회 117년)
3. 사무엘무어 선교사가 안타깝게 여겨 당시 의료선교사였던 에비슨 선교사에게 요청, 에비슨은 알렌 선교사가 고종과 세운 제중원의 2대 원장으로 고종황제의 주치의, 당시 전염병이 가득한 조선에서 질병관리본부장으로 의료사역을 함. 이런 임금의 몸을 만지는 손으로 백정을 만지고 치료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
4. 이를 계기로 그는 무어 선교사가 지도하는 곤당골 교회에 출석하였는데(여기가 지금 을지로의 롯데백화점 본관 자리입니다.) 양반들이 반대를 하였으나, 만민평등이라는 성경 말씀과 원칙에 따라 무어 선교사는 백정들이 예배를 드리도록 도왔고, 이 곤당골 교회는 1년 사이에 백정과 천민 출신들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백정 박가는 백정 최초로 세례를 받고, 사무엘 무어 선교사로부터 “봄을 맞아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하여, 성춘”이란 이름을 얻었습니다. 박가가 아닌 사람다운 이름을 얻음.
5. 이 때 조선은 1894년 가을 갑오개혁으로 명목상으로는 조선 사회의 ‘신분제도가 철폐’되었지만, 백정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예를 들어 백정은 호적이 없었고 도포를 입거나 상투를 틀지도 못했고 갓이나 망건도 쓸 수 없었다)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백정들이 정부 칙령만 믿고 도포를 입고 밖에 나갔다가 구타를 당하는 일이 빈번하였고. 이에 박성춘은 1895년 4월 곤당골 예수교학당의 무어 선교사와 한국인 교사의 도움을 빌어 백정 차별제도 철폐를 다시 확인해 달라는 탄원서를 내각에 제출하였고, 당시 조정은 이런 백정들의 탄원을 받아들여, 그 해 5월 13일 백정들을 차별하지 말라는 내용의 칙령을 다시 한 번 반포하고 그 내용을 방으로 써 붙였습니다.
그날 ‘5백년 만에’ 도포를 입고, 갓을 쓰고 감격한 백정들이 종로거리에서 시위를 하였고, 박성춘은 계속해서 그해 11월, 이듬해 3월에 서울 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같은 조치를 취해 달라는 탄원서를 냈습니다.
6. 이러한 과정을 거쳐 민중 계층의 지도자로 부각된 박성춘은 일반 시민사회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는데, 대표적인 예로 1898년 10월 28일 서울 종로에서 독립협회가 주최한 만민공동회에 박성춘이 시민 대표로 나가 연설을 하게 됩니다.
후에 박성춘은 곤당골 교회가 화재로 소실되어 새롭게 시작한 승동교회의 장로가 되었습니다. (백정이였던 인생이 엄청난 변화를 경험합니다.)
7. 그의 아들 봉출이는 박성춘의 요청으로 자신을 치료해 준 애비슨 선교사에게 보내서 의학을 배우게 하고, 박서양(朴瑞陽)으로 이름을 바꾼 아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세브란스의학교를 제1회로 졸업한 후 모교 교수로 활약하다가, 1918년 만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병원을 개원하였습니다. 교회와 학교를 세웠습니다. 물론 그의 아버지 박성춘도 일제 강점기에 학교 교육 사업에도 많은 업적을 세웠습니다. 이후 박서양은 독립군 최대 조직인 대한국민회의 최초의 군의관으로 일을 하게 됩니다.
백정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독립군 의사로 활동하며 우리나라의 일제로부터의 해방에 크게 기여를 했습니다.
8. 이 일들의 시작이 어디입니까?
“사무엘 무어 선교사, 애비슨 선교사의 하나님의 사랑 아닙니까?” 왕이든, 양반이든, 백정이든,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공평하다는 하나님의 사랑이 전해질 때 엄청난 일이 일어났습니다. 갈 3:26-28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롬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이 차별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종과 주인, 천민과 양반을 넘어서서 한 사람의 삶을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민족을 살렸습니다.
사람 취급 받지 않은 백정을 사람답게 살게 하셨고, 사람답게 사는 것을 넘어서서 고귀한 삶을 살도록 그의 인생을 이끄셨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출애굽기와 많은 이야기에 나오는 것처럼, 종 되었던 인간을 구속해 주시고, 정말 종으로서 받을 수 없었던 과한 예우를 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창세기에는 종된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우십니다.
다니엘서에는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을 당시 최고의 국가인 바벨론을 위해서 총리로 세워서 엄청난 일을 하도록 역사하십니다.
복음의 역사는 종된 인생을 이처럼 완전하게 바꾸어 주십니다. 이런 모든 역사를 아는 바울 사도는 이 귀중한 복음의 비밀을 알았지만, 이것을 자주 잃어버리는 교회 성도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갈 5:1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종으로, 죄의 종으로 메여 살던 우리에게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셨는데, 성도들이 자꾸 율법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바울 사도는 참 복음을 이해하지 못한 당시의 사람들에게 간절함으로, 호소함으로 이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할레’문제로 복음에 대한 참 이해를 하지 않고, 율법적 근거로 교회를 이끌어 가려고 했고, 이것이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이였다가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과의 충돌이 되었습니다. 이방인들도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구약에서 행하던 할례를 이어서 받아야 된다고 이야기 했고, 이것을 거부하는 이들에게는 그들의 신앙 생활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방인이였다가 그리스도인이 된 이들은 이것을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심각해지자 바울 사도는 이것을 분명하게 선을 그어 주었습니다.
갈 5:1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다시 과거 율법의 종으로 메이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실제적인 삶에서도 이 부분을 분명하게 선포한 말씀이 오늘 우리가 읽은 갈 5:13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복음을 새롭게 받아들이고, 교회에 온 성도들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강요하고, 할례를 안 받으면 믿는 자가 아니라고 하면서 교회안에서도 기득권을 만드는 것을 금하고, 오직 서로 복음안에서 종 노릇하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모습은 제자들을 섬기기 위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누누이 가르쳐 주셨던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행동 원리입니다. 마가 10:44,45을 보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구약시대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우리에게 오셔서 몸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서는 마치 종과 같이, 아니 종보다도 더 비참하게 십자가에 메어 달리셔서 모든 물과 피를 흘리면서 우리를 죄의 종이 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세우시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자유를 위해 너무나도 귀한 핏값을 치루어 주셨는데, 우리가 그 고귀한 자유를 주신 것을 자꾸 잊어버리고, 다시 과거의 종으로 가려고 합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서로 사랑 가운데 예수님을 본받아 섬기는 자의 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섬긴다고 하지만 실제로 사람을 대할 때는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조금만 소홀이 하면 섭섭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해서 쓸데없는 일에 엄청난 에너지와 힘을 다 쏟아 버립니다. 나이, 경력, 지위, 학력, 외모 등이 뭐가 중요하냐고 이야기를 하지만, 현실 앞에서는 예수님의 섬김의 본을 잊어 버립니다. 서로에게 종노릇하라고 했던 바울 사도의 가르침은 현실에서는 뒤로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렇게도 많은 은혜를 받고도 이렇게 이중적으로 살아가는 우리를 보면 그것은 바로 우리가 죄의 종노릇 했다는 사실과, 죄성이 아직도 많은 영향을 우리의 삶에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적용) 인공지능과 최첨단 장비를 가지고 있고, 우주 여행을 관광으로 가는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우리 인간은 오래전부터 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연약한 죄 패턴을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사사기입니다.
사사기를 보면 하나님이 종과 같이 버릴 것 밖에 없는 우리를 택해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를 자유케 해 주셨는데, 우리 인간은 자꾸 이방신들에게 마음을 둡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하고, 주신 말씀을 잃어 버립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사시대에 다른 민족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정복하게 하거나, 압제를 주어서 종된 삶을 살게 합니다. 그러면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주고, 그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은 다시 구원해 주셔서 하나님의 사랑안에 풍성하게 살도록 하셨습니다. 이 반복되는 패턴에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보아야 할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죄가 찾아오는 것인데, 죄가 찾아올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하거나, 잃어버릴 때 죄가 찾아오게 되고, 이것이 징계로 이어지면서 이스라엘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적용)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이전에 걷지 않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예배가 중단이 되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기 위해 진행된 성경공부, 찬양, 기도를 마음껏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 방송이나, 온라인 예배가 등장을 하였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코로나 이전보다 더욱 깊이 있게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 있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 것입니다.
백신을 맞으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했는데, 괜찮지 않습니다. 상태는 더욱 겉잡을 수 없이 가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다면 우리가 해야 되는 일이 무엇입니까? 밀려오는 흐름대로 가야 되는 시점이지만, 흘러내려가는 믿음이 아니라, 연어가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거센물을 거치고 올라가듯이 생명을 위해 우리가 흘러가지 말고, 영적인 자리는 치고 올라가야 합니다. 영적인 몸부림은 있어야 합니다.
주어진 상황속에 그대로 흘러 내려가면, 우리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잃고, 죄의 종이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귀한 생명의 복음을 제대로 붙잡고, 하나님이 주신 복음의 참 자유를 온전히 알고 누린다면,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의 역사가 반드시 일어날 줄 믿습니다. 이제까지는 좀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었다면, 이제는 우리가 좀 더 영적인 몸부림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방역의 상황은 지키지만, 방역으로 인해 신앙에 있어서 느슨해진 부분이 있다면 우리가 이제 다시 한 번 새로운 결단을 해야 될 시점입니다.
백정 박가가 이름도 없이 사람대접 받지 못한 천민으로 살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차별없이 전해졌던 복음의 역사를 선교사들을 통해 받았을 때 그 가문이 어렵고 힘든 여러 천민들과 일제 강점기에 어려움에 처한 민족을 구한 가정으로 쓰임을 받은 것을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코로나로 힘들다고 해도, 백정 박가의 시대보다는 좋습니다. 바울 사도가 사역했던 로마 식민지 시대보다는 훨씬 좋습니다.
결론) 오늘은 일제에서 해방된 76주년 광복절이지만, 우리를 복음으로 죄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동역자로 삼아주신 복음의 역사가 저와 여러분을 죄에서, 율법에서 자유케 하심으로 참된 자유자로 살게 하신 은혜를 되새기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코로나 앞에 멈쳐 있는 것 같지만, 이 시간을 통해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온전히 경험하며, 참 자유 가운데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차별없는 이 복음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예수님의 섬김을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이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