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919, 사사기 17:1-13, 하나님이 복 주시는 가정 (동영상보기 - https://youtu.be/UKxS4uFOSaY)

 

각 가정마다 가훈이 있습니다. 이 가훈은 가정이 추구하는 방향이나, 어렵고 힘든 상황속에 가정이 이겨나갈 핵심 교훈이나, 방향을 가훈으로 정합니다. 뼈대 있는 집안은 대대로 이어오기도 하고, 가정이 처한 상황과 환경에 따라 새롭게 정하기도 합니다. 추석을 앞두고 가족들이 함께 모일텐데, 모였을 때, 우리 가족의 가훈은 무엇인지 한 번 이야기를 나누어 보시면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갈 것입니다.

 

1. 에브라임 산지 미가,

. 어머니의 은 천백을 훔침. 성경에는 이 일천 일백에 대한 단위가 표시 되지는 않음. 이와 비슷한 숫자는 사사기 16:5에 삼손과 들릴라 이야기가 나올 때 삼손을 넘겨 주고 받았던 들릴라의 돈을 이야기 할 때도 같은 숫자인 은 일천 일백이 언급이 됩니다. 목숨을 걸고 삼손을 넘긴 값이고, 요즘으로 말하면 현상금과 같은 성격이라면, 같은 숫자인 일천일백은 적지 않은 금액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런데 아들인 미가는 참 이름이 좋았습니다. “여호와와 같으신 이가 누구냐라는 아주 은혜로운 이름이였습니다. 아마 어머니는 이 이름대로 미가가 자라도록 양육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 사사기를 보면 그 이름 값을 못하는 일로 미가는 소개가 됩니다.

17:2을 보면 그의 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께서 은 천백을 잃어버리셨으므로 저주하시고 내 귀에도 말씀하셨더니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가졌나이다 하니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어머니의 은 천백을 훔쳤습니다.

고대 사회에 금고나 재물을 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한 가족이면 대충 어디에 뭐가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는 상황이였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적지 않은 재산을 훔쳤습니다. 그리고 적지 않은 돈이기에 그 어머니는 잃어버린 은에 대해서 훔쳐간 사람들 저주했습니다.

미가는 이 당시만 해도 돌이킬 기회가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저주가 무서웠기에 돌이키고, 잘못을 구하고 회개를 했습니다.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미가의 어머니는 자녀의 명백한 죄와 잘못된 행동을 징계하거나 나무라지 않고, 은근슬쩍 넘어갑니다. 오히려 미가를 돈을 찾아 온 것으로 둔갑을 시킵니다. 아들이 정직하게 돈을 훔쳤다고 한 것을 용기 있고, 정직하다고 부추켰습니다. 자기 입으로 뱉은 저주가 자기 자녀에게 임할까봐 살짝 덮었습니다. 혼내야 할 때, 징계해야 할 때, 바르게 알아 듣고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분명하게 가르쳤어야 되는데, 그것을 덮었습니다.

 

() 우리 주위에도 간혹 이런 일들이 있습니다. 숙명여고 답안 유출 사고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학교 교무부장으로 현직 교사였던 아버지가 답안지를 유출하고, 쌍둥이 자녀들이 그 답안지로 시험을 본 것이 적발이 되어서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 있었습니다. 공부를 정말 못했든지, 아니면 공부를 어느 정도 했는데 더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부모의 욕심이 들어간 것인지는 모르지만, 현직 교사로서, 아버지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을 했습니다.

 

() 최근에 시즌 3까지 종영한 펜트하우스, 스카이 캐슬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가상의 이야기겠지만 부모들의 지나친 욕심과 과잉보호가 오히려 자녀들을 더 어그러지게 만든다는 내용을 가진 내용인데, 놀라운 것은 그와 비슷한 일이 우리의 현상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례들이 간혹 발견이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놀랍니다.

2. 미가의 어머니는 이처럼 잘못된 과잉보호로 아들 미가의 인생이 어그러지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미가의 어머니는 과잉보호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과대포장까지 합니다. 아들의 잘못을 덮으려고, 그것을 미화했습니다. 아들이 정직하게 고백하고 돌려 받은 은이니 이것으로 신상을 만들자고 하며, 한 걸음 더 잘못된 길로 나아갑니다.

17:2-3을 보면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미가가 은 천백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매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가 내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기 위해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이 은을 네게 도로 주리라라고 과대포장과 미화를 합니다.

 

여호와와 같으신 이가 누구냐라고 이름 지어지며, 하나님의 영광을 돌려야 했던 미가는 어머니의 과잉보호와 과대포장으로 이제는 우상을 가지고 사는 인생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어머니가 돌이킬 기회를 점점 더 멀어지게 합니다.

이런 일들이 이 모녀를 점점 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했습니다.

미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완전히 주변 사람들에게 도둑놈으로, 그것도 어머니의 것을 훔친 천벌을 받을 사람이였는데, 어머니가 자신의 죄를 덮어 준 것이 얼마나 고마웠겠습니까? 어머니가 이렇게 하니, 하나님이 보이겠습니까? 어머니가 더 크게 보이겠습니까? 그 깊으신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하고, 그 어머니가 주신 우상이 얼마나 귀중해 보였겠습니까? 미가의 어머니는 정말 물려주지 말아야 할 것을 자녀에게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쥐어주고, 하나님을 따르고 예배하는 삶을 가르치고 보여 주었어야 하는데, 미가에게 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저주가 되는 것을 쥐어 주었습니다. 어머니의 인간적인 사랑으로....

 

() 오늘날 우리의 삶에도 이런 일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자녀들에게 정말 쥐어 주어야 할 것을 쥐어 주지 아니하고, 쥐어 주지 말아야 할 것을 쥐어 줌으로 오히려 우리의 자녀들이 어그러지고, 잘못가고, 엉뚱하게 가는 것을 보고 있지 않습니다. 간혹 어르신 들이 자녀들에게 유산을 잘못 물려주어서, 오히려 그것이 그 자녀를 더 망치는 이야기를 우리 주위에서 적지 않게 봅니다. 미가의 어머니는 쥐어 주지 말아야 할 것을 미가의 손에 들려 주었습니다.

 

3. 아무래도 어머니가 귀하게 물려 준 신상을 잘 보관하기 위한 곳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나중에는 신당, 신을 모시는 집과 같은 곳이 생겨 버립니다. 17:4 “미가가 그 은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었으므로 어머니가 그 은 이백을 가져다 은장색에게 주어 한 신상을 새기고 한 신상을 부어 만들었더니 그 신상이 미가의 집에 있더라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죄성이 어떻습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깊어집니다. 우상이 있고, 이 우상을 모신 신당이 있다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씩 더해 집니다. 17:5을 보면 그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그가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라고 합니다.

 

. 에봇 - 대제사장의 옷, 세마포 겉옷 위에 걸치는 소매 없는 조끼 모양의 윗옷으로, 제사장들이 직무를 수행할 때 입었던 의복 곧 성의(聖衣, 39:2-21)를 말합니다. 허리띠를 묶어서 착용했는데, 에봇은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정교하게 짜서 만들었습니다. 에봇 받침으로는 청색의 긴 옷이 준비되었는데, 머리가 들어갈 구멍을 내고 옷단에 금방울과 수놓은 청색, 자색, 홍색 석류를 번갈아 달았습니다. 이러한 설명을 들으면 이 에봇은 당시의 상황으로서는 평범한 옷이 아니고, 만들려면 꽤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 옷이였습니다.

 

. 드라빔 가정에 세워 놓은 우상으로, 가정의 수호신이나 점치는 일에 사용된 우상으로, 일정한 형태로 정해진 것이 없이 사람이나 짐승 모양을 하기도 하였고, 크기 또한 일정하지 않아 휴대할 수 있을 만큼 작은 것에서부터(31:17-50) 사람의 키만큼 큰 것도 있었다고 합니다.(삼상 19:16). 메소보다미아에서는 드라빔이 집안에 다산과 풍요를 가져다 주고 부친의 드라빔을 소유한 자는 재산을 상속받는 풍습도 있었다고 합니다. 가나안 사람들의 대중적인 우상이 되어 이스라엘 역사에서도 자주 발견되는데(21:21; 3:4; 10:2), 요시야 왕은 이를 엄히 금지시켰고(왕하 23:24), 성경에서는 단순히 우상’(삼상 19:13-16)으로도 번역이 될 때 드라빔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우상에, 신당에, 에봇에 드라빔에 점점 더 깊어집니다. 잘못된 종교심이 더욱 커집니다. ! 이제 다음이 뭐겠습니까?

17:5을 보면 한 아들을 세워 그의 제사장으로 삼았더라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제사장은 사람이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 이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정해 주신 기준이 있었는데, 이것을 철저하게 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아들 중에 하나를 이 일을 감당하게 하려고 합니다.

어찌보면 얼마나 종교적이고, 열심입니까? 하나님을 섬기려고 정말 많은 투자를 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미가의 행동은 종교적인 것 같지만, 철저히 자기 개인의 욕심에서 자기 가정에 복을 받기 위해서 진행을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기가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고 이렇게 합니다. 이렇게 자기 가족, 자기에게만 하나님의 복이 임하도록 하는 것을 우리는 기복신앙이라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의 행동에 대해서 성경은 결론을 지어서 한마디로 분명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17: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임의로 신당을 만들고 제사장을 세우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이 되기에 이에 대해서 성경의 표현은 자기 소견대로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실려 있지 않고, 씁쓸해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4. 오늘의 우리의 삶과 가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요즘의 세상이 사사기의 시대와 유사한 점은 없습니까?

적용) 설정 문화- 스마트폰 시대, 모든 것을 자기에게 맞게 설정하는 것이 대세,

핸드폰도 제 음성을 인식 시켜 놓으면 제가 원하고, 시키는대로 진행이 됩니다.

얼마전 출근 길에 잠이 좀 일찍 깨어서 화장실에서 면도를 하고 있는데, 알람이 울렸습니다. 제가 “OK 구글 알람꺼죠!” 라고 했더니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이 빅스비 알람꺼죠” (하이 빅스비라고 설정하면 다 응답해 줌)라고 했는데,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보 알람 좀 꺼죠라고 했는데, 그 다음 어떻게 되었을까요?

시계에도 제 인체 정보가 다 설정이 되어서, 제 걸음걸이, 제가 자전거를 타면 자전거 거리를 재어 주고, 제가 설정한 혈압, 심박수에 맞춰서 제 삶에 맞춤으로 저와 함께 합니다.

이러한 개념이 텔레비전에도 들어가고, 이제 자동차에도 들어갑니다. 나에게 맞춤으로 모든 것이 만들어지고, 개발되고, 움직여지다 보니, 어느새 우리의 신앙에까지 이것이 파고 들어 옵니다.

특별히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자유롭게 대면 예배를 드리기 어렵고,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다보니, 이런 저런 일에 우리가 정해 놓치 않은 기준들이 필요한데, 어느새 내 마음대로 내가 편한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자리를 잡게 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을 맞춤으로 설정해서, 어느 순간 내 마음대로 신앙 설정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다보니, 신앙의 패턴과 봉사의 패턴이 변해 버립니다.

함께 신앙 생활하고, 공동체로서 해야 할 일들이 대부분인 교회 생활들이 점점 사라지고, 개인 중심적으로 바뀌다보니, 기준에 따라 정해진 원칙에 따르며, 함께 하던 신앙적 삶을 없어지고, 개인적 기준에 따라 맞춰진 신앙생활의 영역이 더욱 커졌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4차 산업 혁명, 인공지능을 말하는 사람들은 더욱 이 공백을 메우려고, 가상세계에서 공동체 만남을 만듭니다. 가상세계에서 회의도 하고, 나 대신 다른 아바타를 넣어서 움직이게 하는 초현실 가상세계라 불려지는 메타버스가 활발하게 발달을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학교를 못 간 아이들이 메타버스라는 가상 공간에서 제일 많이 방문한 곳이 학교이고, 이 학교에서 언어도 다르고, 국가도 다르지만, 새로운 가상세계에서 모여서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코로나로 대면 금지, 이야기 하지 말라고, 거리를 두어야 된다라고 하는 현실속에 살고 있습니다. 진짜 좋았던 시대를 대체하기 위해 이것저것 새롭게 이야기는 되어지지만 그러한 상황에 뚜렷한 기준이 없다보니, 그리고 시대가 개인의 상황에 맞춤으로 사는 시대이다보니, 사사기 시대처럼 우리의 소견대로살아가는 시대를 사는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됩니다. 개인의 필요에 맞게,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유익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지만, 신앙의 본질을 잊어 버리게 할 수도 있는 위험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5. 집에는 가훈이 있듯이 신앙에도 분명한 영적 가훈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처럼 혼탁한 이 시기, 한 번도 걸어보지 않은 길을 가는 이 시대를 우리는 더욱 깨어서 잘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걸어보지 않은 길을 갔기에 우리가 후손들에게는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안) 성경의 이러한 비슷한 상황을 이겨내는 대안으로 돌아보라”,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상황은 좀 다를수 있었지만, 인간의 상황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비슷한 상황과 환경에서 같은 패턴으로 반응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되돌아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잊을 것을 대비해서 성경 곳곳에서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념하는 절기를 지키도록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을 기억하고, 원래를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가운데, 영적인 기준을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 변함없이 서도록 우리를 훈련 시키시고, 인도하십니다.

각 가정마다, 하나님을 기억하고, 우리 가정의 영적 가훈, 영적인 지침을 잘 만들어 가야 합니다.

 

) 장신대 박상진 교수 가정 이야기, 61

어릴적 어머님의 지혜, 매 주일 아침, 소고기 무국

이렇게 자란 자녀들이 기독교계의 주요 리더십(장신대 기독교 교육학, 샘병원)

이들이 가정의 기준을 만들어 나감 가족 단기선교

- 1985년 설립된 7남매는 가족 선교회로 영파(靈波)선교회를 세웠습니다.

7남매 가족 50여명은 매년 설 연휴 때면 함께 단기선교를 떠났고 학교와 병원을 세웠습니다. 인도의 젖줄인 갠지즈 강 유역의 작은 섬에도 교회를 세웠고, 지금까지 2명의 선교사를 파송했고 최근엔 가정 단위로 선교 현장을 찾습니다.

가정의 영적인 기준을 잘 세워서 그 후손들도 함께 믿음을 키워 나갑니다.

 

미가의 가정과 대조가 됩니다.

하나님께 복 받는 가정의 기준은? 가정이 하나씩 하나씩 하나님 안에서 영적인 기준, 영적인 가훈을 세워 나가는 것입니다. 올바르고, 건강하게..., 그런데 미가의 가정은 건강하지 못한 기준으로, 자기 마음대로 영적인 기준을 세웠습니다. 이것이 결국, 제대로 된 복을 못 받는 모습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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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7:8에는 또 한 사람이 등장, 유다 가족에 속한 유다 베들레헴 한 청년이 에브라임 산지에서 발견 됨. 레위인 이동, 17:8 “거주할 곳을 찾고자.....” 일반적인 현상이 아님

이렇게 된 것에 대해서는 레위인 속한 지파의 백성들이 십일조를 바치게 되었으나, 아마, 사사기 당시의 상황은 그렇게 되지 않음. 생계형 도피로 해석하는 성경학자들이 많음. 어찌보면 안타깝지만, 레위인으로 사명을 저버린 사람. 이 사이클이 반복, 레위인들을 통한 영적 교통들이 사라짐.

- 미가 가정의 제사장으로 고용됨, 원래 이렇게 되면 안됨. 거절했었어야 됨. 그러나 타협, 하나님의 제사장이 아닌, 우상 숭배하는 제사장,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없음.

 

- 하나님의 사람. 미가는 자기 신당에 이미 자기 아들을 제사장으로 삼았으나, 전통적인 레위 지파 아론의 아들들로 제사장을 삼은 것에 비해 약점, 이제 이 레위인을 통해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고자 함. 하나님을 따르는 것 같았지만,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이 되어 버림.

예화) 하나님의 일인데, 자기의 사욕이나, 자신을 높이면 우리도 같은 결과를 가짐.

적용) 우리도 신앙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다른데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은 없는지, 큰 집에 사는 것, 명품, 학력, 지위, 경력, 뭔가를 드러내서 자기 신앙의 부족을 채우려는 어리석음.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자리, 영적인 예배의 자리는 채우지 않고, 다른 것으로 채우려하는 어리석음은 없었는지...

적용) 직분을 얻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직분을 받은대로 지키고 사는 삶이 중요.

적용) 신앙의 속은 비었는데, 미가의 가정처럼, 신앙의 겉은 그럴듯하게 포장한 삶을 사는 가정은 없습니까? 가정에서 신앙의 모습은 없고, 세속적이면서, 겉으로만 오랫동안 믿음의 자녀로 포장되어 있지는 않은지..

 

7. 17:13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미가가 지금까지 이렇게 잘못되게 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

이 이야기는 미가로부터, 하나님의 생각과는 너무나 다름, 기복신앙, 자기가 정하고, 하나님의 복을 기대, 복을 가로 챔, 하나님을 요술 램프로 규정,

- 기복신앙 - “복을 기원함을 목적으로 믿는 신앙. , 신앙 대상인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추구하는 것보다 자신의 형통과 소원 성취와 입신양명(立身揚名), 무병장수와 자손 번영 등을 최고의 목적으로 삼는 초보적이고 현세적(現世的)인 신앙 행태를 말한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은 보다도 을 주시는 하나님께 더욱 집중

그래서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에 더욱 집중, 이것을 따르기 위해서 최선

- 성경의 분명한 차이, 우리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심.

요한복음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결론

* 미가의 가정, 눈에 보이는 복들을 구하다보니, 어그러진 가정이 됨

* 복을 주시는 하나님께 집중해야 한다. 우리의 가정이 이 궤도를 잘 가고 있는지, 아니면 궤도 이탈을 했는지 확인해야 함. 이 확인을 어떻게 하느냐? 하나님은 분명한 방법을 알려 주셨음, 우리가 말씀 안에 바로 설 때, 주의 음성을 분명하게 들을 때, 말씀을 즐겨 들을 때 확인이 가능

* 내 생각대로 대충 설정하면 안됨, 말씀에 따라, 말씀을 전하는 자와 좋은 만남과 교제 필요

 

마지막 예화) 아버지 학교, 공부하라고 하지 말고, 공부해라...

예배 드리라고 하지 말고, 예배를 드려라

성경 보라고 하지 말고, 성경을 보고, 성경대로 살아라...

믿음을 가지라고 이야기 하지 말고, 믿음대로 살기

추석을 맞이하여 함께 모일 우리의 가정의 믿음의 가훈은 무엇입니까?

오늘 미가의 가정을 보면서 우리에게 주시는 깨달음이 무엇입니까?

미가 어머니 한 사람의 자녀에 대한 과잉보호와 과대포장으로 만들어진 어그러진 시점이 미가와 그의 아들, 대대로 이어지는 모습속에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없습니까? 그대로 두고 방치 할 것인지, 아니면, 돌이켜서 제대로 된 하나님의 영적 기준을 잡고 나아갈 지를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돌아보며, 주 앞에 더욱 강한 영적인 무장을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