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327일 주일 설교 요한복음 14:5-6, “정답입니까?”

 

1. 얼마전에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학문의 자유를 갈망하며 탈북한 천재 수학자 '이학성’(최민식)이라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는 자신의 신분과 사연을 숨긴 채 상위 1%의 영재들이 모인 자사고의 경비원으로 살아갑니다.

어느 날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 뒤 수학을 가르쳐 달라 조르는 수학을 포기한 고등학생 한지우’(김동휘)을 만나면서 전개되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중반부에 탈북 천재 수학자 이학성이 수학 문제를 내고, 한지우라는 고등학생이 문제를 풉니다. 그런데 문제를 풀고 풀어도 답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통해 탈북수학자 이학성은 의미있는 이야기를 합니다.

북한에서는 수학을 잘 하면 그것이 바로 무기를 만드는 현장으로 활용이 되어 사람을 죽이는데 사용이 되고, 남한에서는 학생들이 수학을 잘 풀어서 그것으로 좋은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을 얻는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수학은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 중요한데 사람들은 정답에만 모든 것을 집중한다고...., 그냥 수학도 풀어가는 그 과정이 즐겁고 기쁨이 되는데, 사람들이 왜 그것을 모르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2. 영화의 이야기이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삶과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정답을 구하는 인생을 갈망하고, 그것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삶의 현장에서 정답을 간절하게 찾고 있지 않습니까?

잘 사는 것정답인줄 알고 잘 살려고 힘쓰고 있지 않습니까?

건강하게 사는 것이 정답 인 줄 알고 건강하게 살려고 힘쓰고 있지 않습니까?

행복하게 사는 것이 정답인 줄 알고 행복하게 살려고 힘쓰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잘 살고, 건강하게 사는 것, 행복하게 사는 것이 정답이라고 누가 이야기했습니까? 이런 삶은 상대적입니다. 상황에 따라 잘 살고, 건강하게 살고, 행복하게 사는 것의 기준이 달라집니다.

() 좁은 집에 늘 가족들이 정신없이 시끄럽게 살면서 이리저리 부딪치고 사는 사람에게는 넓은 집에 여유있게 분위기 내면서 조용히 사는 사람이 행복한 것 같아 보이고, 반대로 넓은 집에 멋진 인테리어와 가구를 가졌어도 여러 가지 이유로 함께 할 가족없이 혼자 지내는 사람들은 가족들이 벅적지글한 삶이 행복해 보일 것입니다.

() 하루 종일 무거운 짐을 배달하고, 차 도로에서 나오는 매연을 다 맡아가며 시간안에 물건을 배달하는 사람은,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서 TV 보면서 세월아 내월아 하면서 보내는 사람이 좋아 보일 것입니다. 반면 지금 병상에 누워서 움직일 수도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은 창 밖에서 활기차게 움직이며 힘을 쓰는 사람들이 부러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우리가 말하는 정답은 상황과 환경에 따라서 정답이 될 수도 있고, 정답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살 수 있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정답만을 추구합니다. 나와 다른 답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도 견디지를 못합니다. 나에게는 정답이 아니어도, 상대방에게는 때로는 그것이 정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정답에 대해서 먼저 잘 생각을 해야 합니다.

3. 오늘 우리가 읽은 요 14장을 보면 예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정답을 요구합니다. 오늘 읽은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도마가 질문을 합니다.

14:1-4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의 거처, ‘에 대한 이야기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였습니다. 지금 예수님과 제자들은 사실 없이 이리저리를 옮겨다니며 이동중입니다. 그것도 개인이 아니고 집단이 이렇게 움직입니다. 집이 좋은 것은 집에는 먹을 수 있는 음식과 조리기구, 의복과 덮고 잘 이불, 등등이 다 구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집이 없이 예수님과 동행하는 제자들에게는 가장 불편한 것이 집이고, 가장 필요한 것이 집이였습니다.

 

특히 로마의 지배에 있던 이스라엘은 로마에게 무리된 세금을 내거나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속에 거주하는 집이 아니라 눈치없이, 우리 가족과 자녀들이 마음 편하게 머물 집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시기였습니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집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고,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우리의 인생의 전체를 집을 구하는 것이 정답인 줄 알고 살아 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목표가 좋은 집을 구하는 것으로 정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집을 구하기 위해서 참으로 많은 노력도 하고, 치열하게 살아갑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을 아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가장 관심사였던 이 부분을 직접적으로 설명해 주십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라고 하시면서 가장 핵심된 내용을 제자들에게 알려 주십니다.

 

4. 그런데 5절에 이어지는 도마의 질문을 보면 왠지 제대로 알아 듣지 못한 것 같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라고 예수님이 말씀을 하셨지만, 제자들은 무슨 소리인지 잘 못 알아 들었고, 이에 도마가 질문을 합니다. 14: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라고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주님 어디로 가야 우리가 거할 곳이 많이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습니까? 라고 질문하는 도마의 모습을 우리는 우리들의 삶에서 익숙하게 경험했던 모습이 아닙니까?

지금, 현재 우리도 그 길을 찾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길이 내 길이 맞나?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거야? 내가 이렇게 가도 되는거야? 라는 질문을 우리는 종종하게 됩니다. 특히 뭔가 일이 계획한 대로 잘 안되면 우리는 불안해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길이 맞는지를 확인하고 다시 주변을 기웃 거립니다. “, 이 길이 아닌 것 같은데...”,

그래서 이사람 저사람에게 길을 물어 봅니다. 답이라고 생각되는 길들을 이런 방법, 저런 방법들을 동원해서 찾아봅니다

 

5. 우리 주위에 점 집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 점 집들의 특징은 이렇게 길을 제대로 몰라서 그 길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약한 마음을 파고 들어서 길을 알려 주려고 하는게 핵심입니다. 사람들은 길을 찾고, 정답을 찾으려고 하는데, 어느 상황에 다다르면 정말 햇갈리고, 모르겠고, 불안하니까, 이런 점집들을 찾아 다닙니다.

좀 나약한 사람만 점집을 찾아가겠습니까? 우리의 사회는 우리가 길을 찾으려고 하는 심리, 정답을 찾으려는 심리를 이용해서 그 정답을 제시해 주는 것을 상품화해서 매일 매일 우리의 삶에 자리를 잡고 찾아옵니다.

노후의 길이 잘 보이지 않으면 은퇴 후 연금이라든지, 보험을 들으라고 합니다.

어디가 아프면, 그 아픈 것을 해결하기 위한 약이라든지 건강식품이 답이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주변에 찾아옵니다.

실제로 이 관점에서 우리의 삶을 한 번 보십시오. 우리가 고민하는 것, 답을 찾고 싶어하는 것에 정답입니다라고 찾아오는 수 많은 것들이 우리의 삶에 넘치고 넘쳐 흘러 갑니다.

불과 몇 십년전만해도 먹고 살기 힘들어서 먹고 사는게 정답이라고 외쳤지만, 지금은 건강을 위해 살을 빼는게 답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을 빼기 위해 노력을 합니까? 우리가 살을 빼기 위해 답이 아니라고 했던 그 한 끼의 식사가 지금 해결되지 않아 전쟁터 속에서 기약없이 죽어가는 우크라이나의 현장 이야기를 들으면 참 아이러니 합니다. 지난 38일에 우크라이나 국경 근처 루마니아 지역에 실사 조사팀을 방송 기자단들과 함께 보냈습니다. 우크라이나 4,500만명 가운데 300만명이 지금 자국을 탈출해서 난민으로 300만명 정도가 주변 국가로 피난을 왔는데, 저희도 처음에는 이들을 도와야 될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 이들도 힘들지만, 지금 우크라이나 국경 안에서 피난도 못가고, 전기와 식료품이 떨어지고, 외부로도 미사일 공격을 당할까봐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 4,200만명이 더 위험하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절박한 전쟁의 위험속에 이들에게는 밥 한끼가 정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이렇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선교계에도 지난 동계 올림픽 기간에 전쟁 예보를 하고, 선교사를 철수해야 한다고 외교부에서 연락이 와서 그냥 대비책으로 하는 일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큰 전쟁이 일어날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지난번 사랑의 교회에서 열린 우크라이나를 위한 기도회에 우크라이나 대사 분이 참석하셨습니다. 그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러시아를 중심으로 큰 화약고가 있는데, 하나는 동쪽에 우크라이나이고, 반대편은 서쪽에 남과북이 대치하는 대한민국이라고 했습니다. 극단적인 일들이 매일 매일 일어나는 현시대의 여러 현상들이 더욱 위험하게 움직여지고 있습니다. 강대국이나, 강력한 전쟁 무기가 정답이 아니였고, 일어난 일로 인해 수 없이 많은 질문들과 더불어 정답을 찾아야 하는 일들이 우리의 삶에 산재해 있습니다.

 

6. 당시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제자들이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크라이나 전쟁과는 다르겠지만, 별로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구약 성경을 보더라도 수 없이 많이 일어났던 여러 제국들의 흥망성쇠를 통해 이스라엘이 얼마나 무력하게 지내는 모습을 너무 많이 보지 않았습니까? 특히 당시 세계 최강국 로마의 영향력속에 이스라엘은 너무나 작아보였고, 그들이 오랫동안 갈망했던 그들이 생각한 하나님의 정답을 갈망하는 삶이 얼마나 간절했겠습니까? 구약 전통속에 다져졌던 역사들과 로마의 법과는 얼마나 많은 차이가 있었겠습니까?

 

7. 이런 가운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큰 관심을 가지고 다가 온 것은 예수님이 오랫동안 생각하던 이스라엘의 정답, 메시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께 열광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도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가까이하면 오랫동안 갈망하던 그 정답을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을 보면 제자들의 모습이 안타깝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그들의 앞에 정답이 되시는 예수님이 계신데, 그들에게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분명한 정답을 알려 주셨는데, 제자들은 아직도 진정한 답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까지 해 주셨는데, 제자들은 아직 이해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시 한 번 분명하게 그들에게 정답을 말씀해 주십니다.

14:5에 도마가 물었던 그 길, 그 정답은 바로 요 14:6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분명하게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생각한 어떤 지도를 통해 찾아 가야 할 길이 아니라, 지금 도마 앞에 서 계신 예수님이 참된 길이고, 예수님이 참된 정답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길이 아니라 길이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처방전이 아니라 치료자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어떤 방법이 아니라 해결자이신 예수님십니다.

 

정답이신 예수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앞에 놓고, 자꾸 다른 것을 찾습니다.

정답이 아닌 것을 정답으로 생각하고, 거기에 우리의 삶을 다 투자합니다.

우리는 분명한 정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분명하게 붙잡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과 약속의 말씀을 분명하게 붙잡아야 합니다.

 

이번 사순절 기간이 이 관계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매우 중요한 시간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과 우리와 어떻게 지내셨고, 우리를 위해서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에 가장 정확하고 분명한 정답이시라는 것을 고백하는 시간이 되어져야 될 줄로 믿습니다.

 

8. 그런데 우리가 살면서 꼭 기억해야 될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정답이 내 정답과 때로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생각한 정답과 다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 길이 맞는지, 아닌지를 고민하기도 하고, 의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놀랍고, 크신 계획은 우리가 감히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의 우리 인생을 향한 정답은 우리를 좌절시키거나 낙담하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은 내가 생각한 정답과 다른 삶이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은 나에게 가장 필요로 하고, 분명한 계획을 위해 내가 감히 생각하거나, 꿈꾸지 못했던 일들이지만, 나의 삶을 통해 이루십니다.

지나온 우리 인생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계획해서, 정답이라고 생각해서 계획했던 일들이 어느 정도나 잘 맞아서 진행이 되었습니까?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섬세하게 우리의 인생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십니까?

그러기에 우리가 해야 되는 일은 지금 어딘가를 주님과 같이 가는 중에 있다면, 그 길을 보거나 환경을 보고 상황을 보고, 왜 이런 길로 가지, 왜 이렇게 험하지...라는 생각을 하지 말고, 내 앞에 나를 이끌어 주시며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시는 예수님만을 분명하게 바라보고 따르시기를 바랍니다.

그 길이 때로는 우리가 넘긴 힘든 웅덩이와 장애물로 뒤덮에 있어도, 나를 안아주시고, 내 길의 장애물을 피하거나 없애 주실 주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그 분의 손만 꽉 붙잡고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왜 그래야 되냐하면, 우리 주님은 나의 손을 꽉 붙들고 가장 정확하고 분명한 길로, 정답의 삶으로 인도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9. 저는 요즘 참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수학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지만, 저는 정말 수학을 못했습니다. 제게 학교 다닐 때 왜 수학을 해야 하는지, 분명한 동기부여를 하고, 의식을 알려 주었다면, 그리고 대학 진학이나 삶에서 수학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이해가 되도록 설명해 주었다면, 저는 지금 상당히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고등학교 때도 수학을 못해서 저는 공부를 아주 못하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수학을 잘 하는 사람은 저와는 다른 사람처럼 생각이 되었습니다. 당시 수학을 너무 못해서 제가 경험한 수치심과 절망은 제안에 아주 깊은 트라우마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참 하나님의 역사는 신기합니다.

 

제가 지금 사역을 하면서 만나는 몇 분들이 계십니다.

한 분은 목사님이신데,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국비장학생으로 미국 UC 버클리에 가서 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경희대에서 교수로 수학을 가르치셨는데, 그 분은 공부가 제일 쉽다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목회자가 되어서 수원에서 목회를 하고 계시는데, 청년들만 700여명이 모입니다. 청년이 교회이고, 교회가 선교이고, 선교가 청년이라고 할 정도로 귀한 사역을 하시는데, 지금 이 분과 우크라이나 사역을 함께 준비하고 일하고 있습니다. 수원에서 사역하시는 분이 신길동에 맛집 있다고 저를 데리고 식사를 대접해 주셨는데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또 한 분은 우크라이나 선교사이십니다. 이분의 한국에서 공부한 상황은 모르지만, 이 분도 미국 UC 버클리에서 수학을 전공해서 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고려대학교에서 교수로 지내시다가 뒤늦게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이 분은 수학적 개념으로 성경을 연구하여 특별한 책도 내셨는데, 저와 방송 촬영을 준비 중입니다.

이 분들과 한국 선교사 자녀의 수학교육과 대안학교의 수학교육에 대한 방송 촬영을 준비 중입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양 중에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고, 사자들이 어린양과 뛰논다고 했는데 수학을 정말 못했던 제가 수학 천재들과 일할 수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 분들을 만나면서, 수학을 그렇게 잘하고, 최고 대학 나왔으면 그냥 교수를 하던지, 학자가 되는게 낳을텐데, 왜 하나님이 그들을 목회자로, 선교사로 부르셨는지 저도 궁금증이 생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은 때로는 우리가 감히 모르죠, 하나님 만이 아시죠?

 

적용)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의 정답을 가지고 상대방들에게 기준점으로 적용해서는 안됩니다. 사람들과 살다보면 정말 이해가 안되는 사람이 많고, 니하고더 다른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내가 가진 기준과 정답으로 그들에게 적용하면 안됩니다. 지금 정답이 아닌 것 같아 보여도, 하나님이 분명한 정답이시기에 그 사람을 빚어가시고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나아갸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지금 공사중인 사람도 있고, 망가졌다가 다시 만들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은 되게 잘 나가는 사람 같은데, 그 사람도 나중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길과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잘 따르게 될 때, 하나님이 계획하신 정답이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정답이 아니면서, 상대방을 우리의 부족한 답으로 판단하지 말고, 헤아리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냥 서로 부족하고, 연약해서, 주님이 붙들어 주지 않으면 안 될 사람으로 측은히 여기며,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도 우리를 참 많이 기다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10.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은 우리 인간의 기준에서는 정답이 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로마 사람들은 자신들이 기대했던 정답이 예수님이 아니였기에 철저하게 짋밟고 넘어뜨리고 무너 뜨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정답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온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유일한 정답이였습니다. 그러기에 자신의 아들이셨지만, 십자가에서 절망속에, 고통속에 죽는 것을 묵인하셨습니다. 그래야 온 인류의 죄 문제에 대한 정답이 되시기 때문이였습니다.

결론) 오늘 저와 여러분은 정답이 아닌데 정답이 아닌 것을 붙잡기 위해 고달픈 삶을 살고 계시지 않습니까? 혹은 정답에 목말라 있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시 한 번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정답같은 것, 정답이 아닌 것에 우리의 귀중한 인생을 허비하지 말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을 분명히 붙잡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2)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 문제, 북한 핵, 정치와 경제, 코로나의 위기....정답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생각한 곳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정답은 우리에게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면서 우리를 끝없이 사랑하시는 예수님이 정답이고, 참된 답입니다. 정답이 되시 주님 앞에 저와 여러분이 다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을 가장 분명하게 인도하실 그 분께 한 걸음씩 한걸음씩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결단기도) 다같이 일어서서 말씀을 기억하며, 각자의 기도로 결단하기를, 가슴에 손을 얹고 1분간 조용히 결단의 기도를 드립니다.